지난 26일 방송된 < MBC 다큐스페셜 > '감독 봉준호' 편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송된 < MBC 다큐스페셜 > '감독 봉준호' 편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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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에서 관찰력이 기민한 관객이었다면 캐릭터의 옷 밑단이 살짝 너덜너덜해진 것을 눈여겨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의상을 담당한 코디네이터의 불찰일까? 아무리 설국열차 안에서 재생산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모든 공산품을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는 설국열차의 한계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로, 설국열차 안에서 오랜 시간 의복을 착용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밑단을 일부러 살짝 너덜너덜하게 만든 봉준호 감독의 세심한 장치다.

이는 <살인의 추억>에서 화성 연쇄살인의 배경인 1980년대의 정서를 살리기 위해 봉준호 감독이 형사 수첩으로 당시의 농협 마크가 찍힌 다이어리를 고집한 이유와도 궤를 같이 한다. 소품 하나에서도 시대적 정서를 환기하도록 디테일을 살린 덕에,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는 대사를 통하지 않고서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영화의 정서를 받아들이고 체화할 수 있다. 이런 점이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따라다니게 만든 요인 아니던가.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붙게 만든 요인 중 다른 하나는 그의 꼼꼼한 메모 덕이다. 끊임없이 문자를 날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휴대폰에 메모를 하고 이 아이디어를 영상에 반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이 이토록 꼼꼼한 디테일을 자랑하면서도 의외의 '허당' 기가 있음은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유려하지 못한 장면, 이를테면 캐릭터가 논두렁에서 구르거나 혹은 한강의 괴물이 균형을 잃고 굴러 떨어지는 등의 '삑사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품에는 꼼꼼하지만 영상적인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또 현실은 영화 편집처럼 항상 매끄럽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삽입한 우리 삶의 '구멍'을 봉준호 특유의 삑사리 편집을 통해 반영하고 있었다.

영화 잘 만드는 감독?…더불어 나아갈 줄 아는 감독

 < MBC 다큐스페셜 > '감독 봉준호'편에서 인터뷰 중인 배우 송강호.

< MBC 다큐스페셜 > '감독 봉준호'편에서 인터뷰 중인 배우 송강호. ⓒ MBC


지난 26일 방송된 < MBC 다큐 스페셜 > '감독 봉준호' 편은 그가 영화를 잘 만드는 것 이전에 더불어 나아갈 줄 아는 감독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천편일률적인 조연 연기에 신물이 나서 연기 생활을 접을까 고민했다는 배우 변희봉이 연기에서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봉준호다. 감독 고유의 장인 정신을 살리면서도 배우의 고유함을 살릴 줄 아는 감독인 셈이다. 

이러한 봉준호의 성향은 송강호에게도 적용된다. 송강호는 무명 배우일 당시를 회상하며 오디션에 떨어졌으면 떨어졌다고 통보를 해 주지 않던 영화사의 태도에 서운함을 느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한데 봉준호 감독은 비록 오디션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다음 작업에 함께 하면 좋겠다는 장문의 삐삐 녹음을 통해 그의 마음을 녹였다고 한다.

이는 아무리 현장에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스태프의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 주는 봉준호의 태도를 통해서도 감지된다. 사람을 우선시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제일로 중요한 것임을 봉 감독은 보여주고 있었다.

봉준호는 완벽을 위해 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감독이다. 그런데 완벽을 향해 달려가노라면 주위 배우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제임스 카메론과 작업을 같이 했던 한 배우가 넌더리를 치고 다시는 그와 작업을 같이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사건처럼 봉준호 역시 자신의 작품을 걸작으로 승화하기 위한 욕심이 많은 감독임에 분명하다. 한 장면을 찍고 또 찍고를 30여 번을 반복하니 말이다.

그런데 같은 장면을 반복하는 봉 감독의 주문이 예사롭지 않다. "다 좋았는데 2%가 부족해" 혹은 "다 좋았는데 여기를 좀 더 보완하면 어떨까"하는 식으로 배우를 기분 좋게 만든 다음에 다시 찍을 것을 주문하는 식으로 말이다.

사람을 먼저 존중한 다음에 자신의 장인 정신을 챙기는 것이지, 자신의 작품을 배우보다 먼저 놓는 법이 없는 그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는 짚고 있었다. 명품 감독 이전에 주위 사람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작품 위에 배우가 있으면 있었지 배우 위에 작품이 있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봉준호 감독이다.

봉준호 감독을 조망함에 있어 그의 프로 정신을 세심하게 탐구하기보다, 그가 얼마나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관계중심적인 감독인지, 사람을 우선하고 배우와 스태프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그만의 장인 정신을 추구할 줄 아는지를 부각할 줄 아는 다큐멘터리의 기획 의도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봉준호 MBC 다큐스페셜 송강호 설국열차 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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