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시민기자는 찰나의 순간 가운데서 영원을 바라보고프며, 화불단행과 소포모어 징크스를 경계하는 비평가입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면서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을 추구합니다. [편집자말]
 <어쌔신>은 제목 그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하지만 존경 받는 인사로 역사 속에서 회자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거나 암살 미수에 그친 암살범의 이야기를 그리는 뮤지컬이다.

<어쌔신>은 제목 그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하지만 존경 받는 인사로 역사 속에서 회자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거나 암살 미수에 그친 암살범의 이야기를 그리는 뮤지컬이다. ⓒ 샘컴퍼니


예나 지금이나 왕 또는 국가 지도자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암살자의 마수를 경계해야만 한다. 한 예로, 중국의 서태후는 한 가지 음식을 절대로 세 숟가락 이상 먹는 일이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가 음식에 독을 타서 암살을 기도할지 모르니, 제아무리 맛난 음식이라 하더라도 두 번 밖에는 먹지 못하는 게 중국 지도자의 팔자였다.

그렇다면 건국한 지 이백여 년 밖에 되지 않는 나라, 미국의 지도자는? 그 어떤 다른 나라 지도자보다 목숨 내어놓을 각오를 하고 국정 운영을 해야 한다. 총기 자율화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나라 지도자에 비해 암살범의 총에 맞아 비명횡사할 비율이 높아서다.

<어쌔신>은 제목 그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하지만 존경 받는 인사로 역사 속에서 회자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거나 암살 미수에 그친 암살범의 이야기를 그리는 뮤지컬이다. 역사의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그 가운데서도 대통령 암살범이라는 안티 히어로를 묘사하는 뮤지컬이다.

미국 역사에 정통하지 않아서인지, 3년 전 필자가 이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는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오스왈드,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존 부스, 자신이 흠모하는 배우이던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받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한 존 힝클리, 이들 세 명 이외에는 나머지 여섯 명의 암살범 혹은 암살미수범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암살미수범 가운데 여성이 두 명이나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쌔신>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에,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해야 하는 뮤지컬이다. 이들 암살미수범, 혹은 암살범은 하나같이 총기를 사용한다. 그렇기에 '어떻게' 미국 대통령을 암살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이들의 손에 미국 대통령이 저격당했다는 '결과'가 있기에 이들 암살범이 '왜' 대통령을 쏘았는가, 왜 쏘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을 더듬어보는 뮤지컬이라서 그렇다.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과 영화 <26년> 가운데에는 공통점이 있다. 레바논 전쟁의 참상, 혹은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의 잔혹한 실상을 실사로 처리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의 기법으로 처리하되 실사 못잖은 충격으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마찬가지로 <어쌔신>은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를 배우의 연기 대신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대체한다.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유혈이 낭자한 암살 장면은 임팩트 넘치는 연출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어쌔신>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에,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암살범이 '왜' 대통령을 쏘았는가, 왜 쏘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을 더듬어보는 뮤지컬이다.

<어쌔신>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에,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암살범이 '왜' 대통령을 쏘았는가, 왜 쏘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을 더듬어보는 뮤지컬이다. ⓒ 샘컴퍼니


"어이가 없어! 내가 널 찍었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암살범이 미국 대통령을 저격하게 되는 암살 동기는 천차만별이다.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미국 남부인의 정서를 대변하고 링컨에게 총을 겨눈 존 부스, <택시 드라이버>의 히로인 조디 포스터에게 환심을 사고자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하는 존 힝클리, 잘난 사람을 보면 배가 아파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총을 겨눈 쥬세피 장가라 등 암살범의 사연은 아홉 사람 모두 제각각이다.

남북전쟁에서 북부인에게 진 남부인의 한 맺힌 정서를 대변하는 존 부스의 사연을 제외하면 여덟 명의 암살범의 사연은 개인적인 사연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들 소외된 자, 마이너리티의 사연 가운데에는 가슴 한 쪽이 쓸쓸한 이야기도 있다.

유리병을 만드는 공장에서 용광로의 문이 열릴 때엔 숨을 쉬면 안 된다. 이 때 만일 숨을 쉬면 용광로의 열기로 말미암아 폐는 숯처럼 까맣게 타들어간다. 갓 구워진 병 두 개가 살짝이라도 닿기라도 하는 날에는 두 병의 열기 때문에 산산조각 나고 만다.

암살범 레온 촐고츠의 몸 한가운데 난 흉터들은 뜨거운 유리 파편이 몸에 박혀 생긴 생채기들이다. 한데 이렇게 고생하고 받는 돈이라고는 고작 당시 돈으로 6센트에 불과하다. 위험한 일을 하고도 정당한 노임을 받지 못하는 울분이 누적되어 사회적 반항으로 이어졌다는 걸 알 수 있는 서글픈 사연이다.

만일 그 누군가가 이들 암살범에게 온정의 손을 내밀었다면, 따뜻한 시선으로 대해 주었다면 대통령 저격과 같은 우발적이고도 공격적인 행동은 자제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처연함이 이들의 저격 이면에 자리한다.

 설사 실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뽑은 대통령 후보의 국정 운영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아예 정치에 실망하고 내가 바라지 않던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는 걸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결단을 촉구하는 뮤지컬이 <어쌔신>이다.

설사 실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뽑은 대통령 후보의 국정 운영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아예 정치에 실망하고 내가 바라지 않던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는 걸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결단을 촉구하는 뮤지컬이 <어쌔신>이다. ⓒ 샘컴퍼니


하나 더, <어쌔신>은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공연하는 뮤지컬이다. 암살미수범 새뮤엘 비크는 자신이 닉슨을 찍었다는 사실에 분개하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거 알아? 넌 대통령으로 정말 큰일을 저질렀어. 세상을 다 망쳐놓았으니까! 난 정말 어이가 없어. 내가 널 찍었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그래, 나는 내 소중한 한 표를 너에게 바쳤어."

비크는 자신이 행사한 표로 당선된 닉슨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자 자신이 뽑은 대통령을 원망한다. 그리고는 자기가 잘못 뽑은 대통령 닉슨을 직접 해결하고자 대통령 암살에 나서다가 실패하는 인물이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행사하는 한 표가 앞으로의 5년을 좌우하는 중요한 타이밍에 놓여있는 시기다. 그나마 비크는 자신이 뽑은 대통령에 대한 한탄을 했다. 만일 19일에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바라지 않던 대통령이 뽑혀 한탄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어쌔신>은 이런 관점으로 보면 투표 독려하는 뮤지컬이기도 하다.

설사 실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뽑은 대통령 후보의 국정 운영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아예 정치에 실망하고 투표하지 않다가 내가 바라지 않던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는 걸 바라볼 것인가.

어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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