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퍼 <루퍼>는 시간 여행이라는 컨셉을 담기는 하지만 ‘자기 소멸’에 관한 영화이자 ‘자살의 아이러니’로 가득한 영화다. 그런데 미래로부터 전송된 암살 대상이 루퍼 자기 자신이라면 선뜻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겠는가? ⓒ (주)유니코리아문예투자
사람들은 지가의 앞날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토록 점집을 찾거나 타롯 카드를 찾는 지도 모른다. 한데 만일 자기가 언제 죽을지를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죽기 전까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까, 아니면 '인생 뭐 있어' 하는 태도로 생의 마지막까지 허랑방탕하게 살다 갈까.
<루퍼>는 시간 여행이 소재지만 '자기 소멸'에 관한 영화이자 '자살의 아이러니'로 가득한 영화다. 영화 속 루퍼는 요즘 시대로 말하면 '킬러'다. 없애야 할 대상이 미래로부터 전송되면, 루퍼는 암살 대상에게 산탄총 한 발 발사하고 시신을 소각로에 집어넣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미래로부터 전송된 암살 대상이 루퍼 자기 자신이라면 선뜻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겠는가? 미래에서 온 암살 대상이 자기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산탄총알을 선물했다가, 시신의 두건을 벗겨보니 미래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날로부터 루퍼는 자기가 언제 죽을지를 아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셈이다. 영화 <나비효과>의 감독판에 담긴 비극적인 결말이 자연스레 겹치는, 자기가 자기를 죽여야 하는 자기 살해의 아이러니, 혹은 자기 소멸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가 <루퍼>다.
더불어 <루퍼>는 <터미네이터> 혹은 <악마의 씨>와도 궤를 같이 한다. 미래에서 온 조(브루스 윌리스)가 과거로 날아와 어린 시절의 레인메이커를 잡으려 드는 건 미래의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만일 어린 시절의 레인메이커를 제거한다면, 미래에서 만날 조의 아내는 레인메이커의 부하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할 일도 없다.
▲ 루퍼 <루퍼>는 <터미네이터> 혹은 <악마의 씨>와도 궤를 같이 한다. 미래에서 온 조(브루스 윌리스)가 과거로 날아와 어린 시절의 레인메이커를 잡으려 드는 건 미래의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만일 어린 시절의 레인메이커를 제거한다면, 미래에서 만날 조의 아내는 레인메이커의 부하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할 일도 없다. ⓒ (주)유니코리아문예투자
어린 아이인 레인메이커를 미래의 조가 잡으려 든다는 건 <터미네이터>의 살인기계 T-101, 혹은 T-1000이 어린 존 코너 혹은 존 코너의 엄마가 될 사라 코너를 없애려 드는 스토리라인과 궤를 같이 한다. 사라 코너 혹은 어린 존 코너를 살인기계가 없애준다면 미래의 세상에서 인간 저항군은 우두머리 없는 오합지졸이 될 테고, 그렇다면 기계는 인간 저항군을 싹쓸이하기가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다시 <루퍼>로 돌아와서 살펴보자. 현재의 루퍼들이 미래에서 전송되는 루퍼 자기 자신을 살해하도록 만드는 아이러니의 장본인은 레인메이커다. 레인메이커 한 사람만 사라지면 루퍼들이 시한부 인생을 살 필요도 없을 테니 미래의 조가 필사적으로 어린 아이인 레인메이커를 제거하려 든다는 건 루퍼 자신들의 시한부적 인생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공포영화의 시점으로 레인메이커를 바라보면 어린 아이인 레인메이커는 <악마의 씨>와 오버랩할 수 있다. <악마의 씨>에서 로즈마리의 배속에 있는 아이는 축복을 받아야 할 고귀한 생명이 아니다. 남편의 그릇된 악마와의 계약에 의해 잉태된 저주받은 생명이다. 악마의 씨앗을 태중에 품는 셈이다.
<루퍼>의 어린 레인메이커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어린 생명이겠지만 미래 세계라는 전지적 관점에서 볼 때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이기도 하다. 레인메이커가 다스리는 세상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루퍼를 하나씩 과거로 전송함으로 피의 숙청을 단행하는 공포정치의 세상, 디스토피아이기 때문이다.
▲ 루퍼 잘못된 미래를 수정하기 위해서라면 과거로 돌아와 어린 시절의 레인메이커를 뒤쫓아야 하는 어린 아이의 학살을 감행해야만 하는, 미래의 조가 벌이는 비정함은 <터미네이터> 그리고 <악마의 씨>와 궤를 같이 한다. ⓒ (주)유니코리아문예투자
잘못된 미래를 수정하기 위해서라면 과거로 돌아와 어린 시절의 레인메이커를 뒤쫓아야 하는 어린 아이의 학살을 감행해야만 하는, 미래의 조가 벌이는 비정함은 <터미네이터> 그리고 <악마의 씨>와 궤를 같이 한다.
자기가 자기를 죽여야 하는 아이러니를 더 이상 루퍼들이 겪지 않으려면, 미래의 조가 유아 살해라는 오명을 겪으면서도 감당해야 한다는 걸 <루퍼>는 묘사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과거의 자신이 죽이는 자살의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유아를 살해해야만 하는 SF의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영화가 <루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