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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2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 도화공원에서 성대골어린이도서관과 상도4동 주민자치위원 주최로 열린 '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박원명 어린이(왼쪽에서 두번째)가 자신의 축구화와 장난감 등 애장품을 가져와 내다 팔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 도화공원에서 성대골어린이도서관과 상도4동 주민자치위원 주최로 열린 '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박원명 어린이(왼쪽에서 두번째)가 자신의 축구화와 장난감 등 애장품을 가져와 내다 팔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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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 좀 깎아줘."
"너 얼마 있는데?"

"2000원."
"기다려봐. 장터 끝날 때쯤에 깎아 줄게. 그 전에 팔리면 난 몰라."

축구화 3000원, 씽씽카 4000원, 탱탱볼 100원 등. 원명이(9)는 중고 물건을 다 팔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물건을 사려는 친구들은 눈치 작전이 치열하다. 더 깎을 것인가, 말 것인가. 아홉 살 꼬마의 셈은 복잡하다. 다 팔고 돌아가야 점찍어둔 운동화를 살 수 있다. 돗자리를 털 때까지 어떻게든 아이들을 꾀야 한다. 

원명이는 장터가 열릴 때마다 이렇게 물건을 내놓는다. 애지중지하던 로봇도 낡아지자 장터에 내놓았다. 원명이는 "처음에는 무조건 비싸게 불러야 해요. 그리고 점점 깎아가면서 애들 마음을 흔드는 거예요"라며 장사 수완을 자랑했다.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4동 도화공원에서 열린 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 상도 3, 4동을 중심으로 열린 이 행사에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의 운영위원들이 장터를 꾸렸다. 두 달에 한 번 마을 장터를 열던 것을 이번에는 '에너지 축제'로 승격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성대골마을의 에너지 절전운동 캠페인을 벌이기 위한 축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그건 아니죠"

어린이들이 천연 설탕으로 만든 솜사탕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어린이들이 천연 설탕으로 만든 솜사탕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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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나무판에 직접 그림을 그려 냄비 받침을 만드는 체험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나무판에 직접 그림을 그려 냄비 받침을 만드는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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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 마을 장터에 먹을거리가 빠질 수 없다. 부추전, 떡꼬치, 미숫가루, 어묵, 솜사탕, 팝콘. 아이들이 중심인 마을 장터라 솜사탕이 단연 인기였다. 천연 설탕을 기계에 넣으면 하얀 가루가 나온다. 여기에 젓가락을 넣어 빙빙 돌리면 솜사탕이 된다. 15분은 기다려야 하는데도 이날 솜사탕 가게 앞에는 항상 긴 줄이 이어졌다.

성대골어린이도서관 운영위원들을 중심으로 재능 기부 행사도 했다. 천연 재료로 립밤(립글로스), 모기 퇴치제를 만들고, 얇은 판자에 그림을 그려 나무 액자를 만들어 팔았다. 전을 부치고 미숫가루를 파는 일도 모두 마을 사람들이 맡았다. 대부분 자녀들이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의 회원으로 마을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받고 있다.

마을 장터에 처음 발걸음을 했다는 최성희(37)씨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했는데  이 정도로 풍성한 행사인지 몰랐다"며 "아이들을 성대골도서관에 보내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여유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희연(72)씨도 "상도동에 이렇게 큰 잔치가 얼마 만이냐. 시골 동네에서 잔치를 여는 것 같다"며 "서울 살이 40년  만에 처음 보는 마을잔치, 마을 축제"라고 치켜세웠다.

성대골어린이도서관 회원들과 상도 3, 4동 주민이 300여 명이나 모였기 때문이다.

폭염 한 달에 전기료 1만6000원 뿐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 도화공원에서 성대골어린이도서관과 상도4동 주민자치위원 주최로 열린 '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자전거발전기 페달을 밟으며 선풍기를 작동시키는 체험을 하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 도화공원에서 성대골어린이도서관과 상도4동 주민자치위원 주최로 열린 '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자전거발전기 페달을 밟으며 선풍기를 작동시키는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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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이 어린이들의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주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어린이들의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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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배시훈 어린이가 어머니와 함께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 손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배시훈 어린이가 어머니와 함께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 손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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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 나온 물건 중 4구 멀티탭이 눈길을 끌었다. 각 콘센트마다 온오프 버튼이 달려 있다. 멀티탭을 파는 노성숙(43)씨 가족은 성대골마을의 '절전왕'이다. 마을 50여 가구가 참여하는 에너지 절약 실천 상황판에서 1등을 달리고 있다. 전년도와 올해 같은 달을 비교해 전기세를 가장 절약한 가구가 '절전왕관 스티커'를 받는다. 노씨는 "아들 유찬이(9)가 상황판을 매달 체크하면서 집에 켜져 있는 불을 끈다"며 "18년 만에 폭염이던 올해도 한 달 전기료가 1만 6000원밖에 안 나왔다"고 자랑했다.

절전왕이라 멀티탭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노씨는 "멀티탭을 쓴다고 전기가 절약되느냐"는 질문에 "쓰지 않는 콘센트에 불이 들어오면 손이 가는 게 사람 마음이다"며 "벽에 꽂혀 있는 콘센트보다 손에 가까운 멀티탭을 쓰면 코드를 뽑기도 쉽다"고 말했다.

성대골마을은 지난 16일 서울시의 에너지 자립 시범마을로 선정됐다. 마을도서관, 마을학교에 기반한 절전 운동으로 에너지 진단과 단열 개선을 할 예정이다. 이미 서울시는 지난 5월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을 '서울 환경상 대상'에 선정했다. 가구당 20% 전기 절약을 목표로 온 가족이 에너지지킴으로 멀티탭을 사용해 대기전력을 차단하는 등 '성대골절전소'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김소영(43) 성대골어린이도서관 관장은 "이번 겨울은 난방비 없이 벽난로나 태양열 온풍기로 버텨볼 것"이라며 "안 되면 내복에 파카라도 입을 것"이라고 각오를 보였다. 김 관장은 "앞으로 겨울이 오기 전까지 워크숍을 열어 그 방안을 만들 것"이라며 "마을 주변의 음식점, 커피숍, 약국 등도 '착한 가게'로 등록하는 등 절전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자립 마을답게 이날 장터에는 이색 자전거가 설치됐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전기를 생산하는 자전거 발전기다. 발전기로 믹서기를 돌리고 선풍기를 움직인다. 믹서기를 돌리려면 250kw의 전력이 들어간다. 아이들은 믹서기가 멈추지 않게 하려고 열심히 페달을 돌린다.

자기가 밟은 자전거로 선풍기 바람을 맞은 희진이(10)는 "전기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운동하고 전기도 만들고 일석이조네요"라고 웃었다. 네모난 상자에 은색 호일을 싼 태양열 조리기로 계란을 삶으려 했지만 흐린 날씨 탓에 삶은 계란은 구경할 수 없었다.

불은 끄고 별을 켜자, 그리고 원전을 하나 줄이자

'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환경 주제로 한 단편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환경 주제로 한 단편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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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돌아가면서 자전거발전기 페달을 밟아, 생산한 전력으로 스피커를 작동시켜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제1회 성대골 에너지 축제-불을 끄고 별을 켜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돌아가면서 자전거발전기 페달을 밟아, 생산한 전력으로 스피커를 작동시켜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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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마을학교→에너지 자립마을

이날 장터는 영화 상영으로 마무리됐다. 단순히 인기 영화를 단체관람하는 '불법상영'이 아니다. 환경재단의 환경영상자료원인 '그린 아카이브'에서 추천받은 단편 6편과 장편 1편을 상영했다.

물론 영화 관람에도 절전운동이 빠지지 않았다. 자전거 발전기를 돌려 스피커의 전력으로 썼다. 그러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발전기를 돌렸지만 필요한 250kw의 전력을 유지하지 못해 영화 내내 소리가 뚝뚝 끊겼다. 좌충우돌이지만 영화 상영 내내 불만은 나오지 않았다.

영화를 상영하는 도중 공원 내 가로등이 모두 꺼졌다. '불을 끄는 대신 별을 보자'는 에너지 축제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흐린 날씨에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서로 웃으며 어둠의 시간을 보냈다. 김소영 관장은 "각 가정에서 매달 10~12%의 에너지를 아끼면 원전 하나를 줄일 수 있다"며 "마을 사람 100명이면 100개의 절전소가 돼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대골마을은 도서관에서 시작해 마을학교로, 이제 에너지 자립마을로 이행하고 있다. 김소영 관장의 말대로 이번 겨울이 중요한 시기다. 난방 없이 한겨울을 보낼 도서관, 그리고 학교. 다시 따스한 봄이 왔을 때, 마을의 모습이 기대된다.


태그:#성대골마을, #에너지축제, #에너지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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