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 9일 오전 11시 58분]

위풍당당 대한민국 선수단 입장  지구촌 최대 스포츠축제가 될 제30회 런던하계올림픽이 7월 28일 영국 런던 북동부 리밸리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개막식에서 태극기를 든 핸드볼 대표팀 윤경신 선수를 선두로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205개 나라에서 1만6천 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26개 종목에서 총 302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룬다.

▲ 위풍당당 대한민국 선수단 입장 지구촌 최대 스포츠축제가 될 제30회 런던하계올림픽이 7월 28일 영국 런던 북동부 리밸리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개막식에서 태극기를 든 핸드볼 대표팀 윤경신 선수를 선두로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205개 나라에서 1만6천 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26개 종목에서 총 302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룬다. ⓒ 연합뉴스


검정색 정장케이스를 열자 곱게 접힌 화이트 팬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하체 비만'인 사람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색깔. 몸에 붙는 디자인인지 만져보니 신축성도 있다. '과연 내가 이걸 입어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런던에서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는 올림픽 선수단이 개막식 때 입었던 단복을 직접 입어보려고 7일 오후 3시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의류업체 '빈폴(Bean Pole)' 디자인실을 찾았다. 건물 로비부터 올림픽 선수단복을 입고 찍은 '소녀시대'의 대형 화보가 걸려 있었다.

직접 입어본 여성 선수단복은 몸에 착 붙으면서 색감도 선명했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옷은 예뻤지만 남색 재킷에 흰색 페도라(챙이 있는 모자), 흰색 구두와 빨간 스카프까지 갖추자 어색함이 온몸에 흘렀다. 평상시에 입어본 적이 없는 구성을 몸에 걸치니 '코스프레(의상 연기)'하는 기분이었다.

런던 올림픽 대표단복, 옷 안에 한국 담았네

 올림픽 단복의 구성은 빨간색, 네이비, 흰색을 통해 태극마크를 연상시킨다.

올림픽 단복의 구성은 빨간색, 네이비, 흰색을 통해 태극마크를 연상시킨다. ⓒ 김동환


한국 올림픽 대표선수단복에 세간의 관심이 쏟아진 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이 옷을 이번 런던올림픽 '베스트 단복' 중 하나로 꼽으면서부터다. 의외였다. 선수들에게 무슨 옷을 입혔길래 외국 기자가 한국에서 만든 옷을 멋지다고 평가했을까?

단복 디자인을 맡았던 김수정 빈폴 멘즈(Bean Pole Man's) 디자인실장은 "한국과 함께 베스트로 선정된 자메이카 옷을 보면 특유의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감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한국 단복도 한국을 상징하는 콘셉트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김 실장의 설명대로 이번 한국 단복은 '1948년 런던올림픽의 재발견'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참가했던 최초의 올림픽을 기념한다는 취지다. 그래서 당시 선수단이 입었던 더블브레스트 재킷에서 모양을 가져오고 전체적인 색깔 구성은 태극기의 상징색인 빨강, 파랑, 하양을 사용했다. 재킷은 군청색, 바지는 흰색이다.

여기에 1948년 런던올림픽 참가를 기념하며 임원들에게 수여됐던 '참가장'을 본딴 장식을 재킷 오른쪽 가슴에 부착했으며 왼쪽 가슴 주머니에는 붉은색 행커치프(손수건 모양의 장식 천)을 넣었다. 남자는 재킷 안에 하늘색 셔츠와 빨강-파랑이 섞인 스트라이프(줄무늬) 넥타이를, 여자는 군청색 줄무늬가 들어간 흰색 니트 티셔츠를 입는다. 흰색 페도라와 흰색 옥스퍼드 구두는 개최국인 영국의 감성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열심히 단복 콘셉트 설명을 듣고는 있었지만 아까부터 김 실장 뒤쪽 옷걸이에 걸려있는 단복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빈폴 사이트에서는 올림픽 단복을 남녀 30벌씩 한정판으로 판매하고 있다. '올림픽 단복 풀세트' 가격은 무려 120만 원.

평소 명품 의류는 입어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겁날 정도의 가격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운동으로 몸매가 다져진 대표팀 선수들이나 모델들이 입었을 때는 세련되어 보였지만, 나 같은 통통하고 다리 짧은 일반인이 입으면 과연 어떻게 보일까. 나는 호기심 반 걱정 반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걱정이었다.

옷은 예쁜데... 왜 난 어색한 걸까?

 올림픽 단복 체험에 나선 기자가 '정신줄'을 놓은 듯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벌써 악플이 두렵다.

올림픽 단복 체험에 나선 기자가 '정신줄'을 놓은 듯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벌써 악플이 두렵다. ⓒ 김동환


옷 입는 법을 들은 뒤 우선 바지와 니트 티셔츠부터 입었다. 이번 단복 디자인에 영감을 준 1948년 런던 올림픽 단복은 원래 군청색 재킷에 회색 바지였다. 그런데 여름 시즌에는 자칫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색 조합이라 흰색 바지로 변경했다고 한다. 시원해 보이기는 하지만 나처럼 '하체 비만'인 사람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색깔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대표팀 선수들 사이에서도 디자인에 비슷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처음 선수들이 화이트 팬츠를 보고 '어, 이걸 어떻게 입어요'라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평생 운동에만 매진해온 선수들이 유행에 맞춰 발목에서 짧게 잘리면서 몸에 딱 맞는 라인 바지를 어색해 했다는 얘기다. 김 실장은 "선수들이 평소 재킷이나 양복을 잘 입지 않다보니 처음에는 많이들 부담스러워했다"고 덧붙였다.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다. 나는 잘 하는 운동도 없는데 어색했다.

재킷을 걸치는데 옷 안감에 뭐라고 자잘한 글자들이 보였다. SNS를 통해 모집한 4천여 개의 응원 메시지를 안감용 옷감에 인쇄한 다음 적당히 잘라서 옷을 만들었다는 게 김 실장 설명이다. 안감에는 한국인이 보낸 응원 메시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랍계로 추정되는 '핫산 모하메드(Hassan Muhammad)'가 쓴 "이거 번역해 줄 수 있나요?(anyone please translate for me?)"라는 메시지도 끼어 있었다.

 런던올림픽 단복 안감에 핫산 모하메드의 메시지가 끼어들어가 있다.

런던올림픽 단복 안감에 핫산 모하메드의 메시지가 끼어들어가 있다. ⓒ 김동환


여성용 재킷은 1948년 런던올림픽 단복과 같은 더블브레스트 재킷이었지만 남성용 재킷은 모양이 달랐다. 상체 근육이 발달한 선수들 때문이었다. 김 실장은 "남자 선수들도 원래는 '더블'로 디자인했는데 운동선수 체형상 '더블 재킷'을 입기에는 무리가 있는 사람이 많아서 '싱글'(한 줄짜리 단추)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페도라와 스카프까지 다 갖춰입고 거울 앞에 섰다. 어색한 내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가장 처음 느낀 것은 무엇보다 서울의 폭염 속에서 입을 만한 옷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니트에 재킷까지 걸치니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인데도 몸에서 점점 열이 올랐다.

디자이너들 역시 처음부터 이 점을 고민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선수들 역시 '이 더운 옷을 어떻게 입느냐'는 얘기를 많이 했지만 천만다행으로 개막식 날 런던 날씨가 예상보다 많이 쌀쌀했다"고 말했다. 변덕스러운 런던 날씨가 아니었다면,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개막식에서부터 '구슬땀'을 흘릴 뻔 했다.

선수들 만족도 높아... 올림픽 티셔츠도 덩달아 인기

이번에 제작된 단복의 특징은 450벌 모두가 대표팀 선수들의 몸에 맞게 하나하나 치수를 재어 제작된 '맞춤복'이라는 것이다. 김수정 실장은 "옷 '패턴'을 담당하는 직원 열 명 정도가 거의 두 달 동안 선수촌과 지방의 전지훈련까지 따라가며 선수들 치수를 쟀다"고 설명했다.

각각의 단복에는 선수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그대로 담겼다. 운동 때문에 한쪽 다리가 더 긴 선수, 한쪽 어깨가 낮은 선수의 신체적 특징들이 반영됐다. 흰색 옥스퍼드 구두도 모두 맞춤이었다.

김 실장은 "운동선수들이라 신발 사이즈가 300mm가 넘어가는 분들도 많아서 하는 수없이 구두도 일일이 따로 제작했다"고 털어놨다. 빈폴에서는 옷을 맞추고 제작하는 몇 달 새 체중감량 등으로 체형이 변한 선수를 위해 현장 수선을 할 수 있는 봉제 담당을 개막식 현장에 파견하기도 했다.

공들여 만든 '맞춤옷'이다보니 선수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처음에는 양복이며 맞춤옷을 부담스러워했던 선수들도 입다보니 '내 몸이 이렇게 보일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이 들어서 좋아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예년과 달리 소장하길 원하는 선수들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올림픽 선수들은 폐막식 이후 외국 선수들과 단복을 교환하기도 하는데 올해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는 선수도 있었다는 게 김 실장 설명이다.

심혈을 기울인 올림픽 단복이 화제로 떠오르면서 대한체육회 후원 차원에서 옷을 제작한 빈폴도 쏠쏠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에 따른 의류업계 불황 속에서도 빈폴 매장은 전년 동기 대비 10%가량 매출이 늘었다.

심문보 제일모직 홍보팀장은 "매장마다 단복을 전시해 놓았는데 그걸 구경하던 손님들이 그대로 매장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올림픽을 겨냥해 출시한 '올림픽 테마 티셔츠'는 일반 티셔츠보다 두 배 정도 더 잘 팔린다고 한다.

심 팀장은 "한국에서 특정 기성복 브랜드가 올림픽 단복을 후원해 화제가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4년 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여러 의류 브랜드가 서로 단복 디자인을 맡겠다고 치열한 '장외 올림픽'을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신한슬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입니다.
런던올림픽 단복 체험 올림픽단복 응원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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