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요즈음 공연, 혹은 영화에서 유행하는 경향 가운데 하나는 '비틀기'다.

원전을 고스란히 영상이나 무대로 올리는 게 아니라 원작을 비틂으로 원작과는 다른 재해석을 만들어내는 게다. <블랙 메리 포핀스>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복의 대명사이던 보모 '메리'가, 왜 뮤지컬에서는 '블랙'이라는 어두운 느낌의 형용사와 맞닿아야 하는가. 이는 원작을 재해석하는 '비틀기' 때문이다.

밝고 경쾌한 뮤지컬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달라도 한참이나 다르다'. <메리 포핀스> 속 원작의 '밝음'은 뮤지컬에서는 '어두움'으로 바뀐다. '밝음'은 보모 메리와 함께 하던 행복한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에만 스쳐 지나갈 뿐, 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음산하다.

<블랙 메리 포핀스>는 그라첸 슈워츠 박사의 저택에서 일어난 끔찍한 화재 속에서 살아남은 네 명의 아이들이 12년 후 어른이 되어 진실을 찾는 이야기다. 집에 불을 지른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데 살아남은 남매는 그 끔찍한 화재를 그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왜 보모 메리는 자신이 전신화상을 입어가면서까지 불 속에 갇힌 네 아이를 구하려 했을까? 수첩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진 걸까?

 <블랙 메리 포핀스>의 한 장면

<블랙 메리 포핀스>의 한 장면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블랙 메리 포핀스>는 <이터널 선샤인>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놓이는 뮤지컬이다. <이터널 선샤인> 속 사랑했던 두 남녀는 이별을 맞이한다. 헌데 여자는 이별 후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리는 작업에 착수한다.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기억을 아련한 추억으로 남겨두길 바라지 않고, 연인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뇌리 가운데서 영원히 지워버리길 바란다.

하지만 <블랙 메리 포핀스>는 정반대다. 지금은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화재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기를 바란다. 잊혀진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대가로 지금 내가 알고 있던 게 바뀐다 할지라도 말이다. 한 쪽은 기억을 잊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다른 한 쪽은 잊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

또한 <블랙 메리 포핀스>는 영화 <매트릭스>를 닮았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 앞에서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내민다. 그리고는 둘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 네오가 진짜 현실을 아는 것을 바라지 않으면 파란 약을 삼키고 진실을 모른 채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맘 편하게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빨간 약을 먹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빨간 약은 네오로 하여금 진실을 알게끔 해준다. 진실을 알면 지금 네오가 누리는 행복은 더 이상 보장받을 수 없다. 네오가 진실 앞에 다가서면 네오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은 가짜로 판명 난다. 그럼에도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한다. 그 후에야 네오는 여태 자신이 있던 곳은 진짜 세상이 아니라 프로그램 안에 갇혀 살았다는 걸 알게 된다.

<블랙 메리 포핀스>의 남매도 <매트릭스> 속 네오의 입장과 마찬가지다. 12년 전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남매는 앞으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만일 잊혀진 기억이 되살아났을 때 그 기억이 좋지 않은 기억인지라 지금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하면 굳이 그 날의 기억을 되살려야 할까?

그럼에도 이들 남매는 그 날의 진실에 다가가길 원한다. 화재 당시의 기억을 모르고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음에도 말이다. 과거의 잊혀진 진실을 알게 됨으로 현실이 위태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남매는 진실 앞에 한 발짝씩 나아가길 원한다. 네오처럼 말이다.

 <블랙 메리 포핀스>의 한 장면

<블랙 메리 포핀스>의 한 장면 ⓒ 아시아브릿지컨텐츠


<블랙 메리 포핀스>는 스릴러 장르를 추구한다. 스릴러를 묘사함에 있어 각 장면마다 스릴러의 성격이 바뀐다. 12년 전 화재의 진실을 규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처럼 '추리 스릴러'에 가깝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겪는 막내 요나스의 불안정한 심리를 다룸에 있어서는 '심리 스릴러'와 맞닿는다. 스릴러라는 하나의 장르 안에서 '추리 스릴러'와 '심리 스릴러'라는 두 종류의 스릴러를 감상할 수 있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묘사함에 있어서는 모골이 송연해지고, 잊혀진 과거를 추리함에 있어서는 초연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신파적인 결말을 답습하지 않은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블랙메리포핀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