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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쌀막걸리는 쌀과 밀가루를 섞은 것과 쌀로만 만든 막걸리 2가지를 빚고 있다
▲ 무등산쌀막걸리 무등산쌀막걸리는 쌀과 밀가루를 섞은 것과 쌀로만 만든 막걸리 2가지를 빚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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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바람이 드세다. 우리나라 막걸리가 한반도는 물론 지구촌 곳곳까지 너울을 거세게 일으키고 있다. '막 거른다' 해서 이름 붙은 막걸리는 담기는 잔에 따라 대포, 왕대포 등으로도 불린다. 그렇다면 광주 사람들이 '무등산을 무등 태운다'라며 가장 즐겨 마시는 막걸리는 무엇이며 어떤 맛이 날까.   

광주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가장 많이 팔리는 막걸리는 무등산쌀막걸리다. 이 막걸리는 톡 쏘는 신맛이 부드럽고 단맛이 살짝 감도는 게 뻑뻑하지 않고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막걸리도 마실수록 혀끝을 톡톡치는 신맛이 강해지면서 조금 세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 들머리께, 광주 양동시장에서 나그네가 마신 우윳빛 무등산쌀막걸리 병에는 '신선함이 살아 있는 광주 무등산탁주'라는 덧글이 붙어 있었다. 이 막걸리는 백미25%와 소맥분 65%, 전분당 10%에 아스파탐을 넣어 천연암반수로 빚는다. 알콜도수는 6도이며, 유통기한은 10일이다.

무등산쌀막걸리에 숨겨진 톡 쏘는 감칠맛을 내는 비밀은 물에 있다. 무등산쌀막걸리를 빚는 술도가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8000ℓ짜리 물통을 담은 트럭이 왕복 40㎞를 달려 장성에 닿아 지하 230m에서 퐁퐁 솟아나는 암반수를 뽑아온다. 광주무등산탁주 관계자가 '막걸리 맛의 8할은 물'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등산쌀막걸리는 밑술 만드는 데만 5일, 세 차례에 거친 담금(사입)만 8일로 막걸리 한 병을 만드는 데 보름이 걸린다
▲ 광주 양동시장 무등산쌀막걸리는 밑술 만드는 데만 5일, 세 차례에 거친 담금(사입)만 8일로 막걸리 한 병을 만드는 데 보름이 걸린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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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냄새가 너무 좋아 입안에 침이 고인다"

무등산쌀막걸리는 쌀과 밀가루를 섞은 것과 쌀로만 만든 막걸리 2가지를 빚고 있다. 무등산쌀막걸리는 고두밥에 곰팡이균을 뿌려 하루 정도 두면 발효된 쌀인 '누룩'이 만들어진다. 이 누룩에 효모와 물을 넣고 5일 동안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 뒤 세 차례에 걸쳐 '담금'에 들어가는 것이 무등산쌀막걸리가 지니고 있는 특징이다.

1단 담금은 밑술에 누룩과 물을 섞어 5일 동안 그대로 둔다. 2단 담금은 고두밥과 누룩, 물을 또다시 섞어 발효하는 과정으로 이틀이 걸린다. 3단 담금을 거쳐 숙성이 끝나면 건더기에서 신이 빚은 술방울이라 불리는 막걸리를 빚어낸다.

무등산쌀막걸리는 밑술 만드는 데만 5일, 세 차례에 거친 담금(사입)만 8일로 막걸리 한 병을 만드는 데 보름이 걸린다. 이 막걸리 맛이 다른 막걸리와 다르게 독특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통 일반 술도가 밑술 발효기간은 3일이다. 무등산쌀막걸리 관계자는 '효모는 온도에 따라 내뿜는 냄새가 다르다'며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하게 되면 맛이 부드럽고 향이 깊다'고 설명했다.

'5년 넘게 일했어도 막걸리 냄새가 좋아 입안에 침이 고인다'고 말하는 무등산쌀막걸리를 빚는 사람들. 40여 년 동안 이어진 장인정신으로 광주를 빛내고 있는 우리 전통술 무등산쌀막걸리. 나그네가 광주에 갈 때마다 꼭꼭 숨겨둔 애인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살포시 입술을 마주대는 술이 바로 무등산쌀막걸리다. 

‘5년 넘게 일했어도 막걸리 냄새가 좋아 입안에 침이 고인다’고 말하는 무등산쌀막걸리
▲ 무등산쌀막걸리 ‘5년 넘게 일했어도 막걸리 냄새가 좋아 입안에 침이 고인다’고 말하는 무등산쌀막걸리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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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쌀막걸리는 전라도 가시나처럼 부끄럼 많이 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 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신경림(1936~) 시인이 쓴 '파장'이라는 시다. 이 시를 읽으면 그 시장이 떠오른다. 막형이 막걸리기행을 하면서 광주막걸리를 맛보기 위해 들렀던 광주 양동시장 말이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란 구절이 마치 '못난 놈들은 막걸리만 봐도 흥겹다'로 읽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까닭은 무슨?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 막걸리가 못난 놈이든 잘난 놈이든 누구나 마실 수 있는 민족술이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그날 양동시장에서 신경림 시인 시 '파장'에 나오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다. 이발소 앞은 아니었지만 어물전 앞에서 참외를 깎아먹으며 광주 무등산쌀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야말로 첫 눈에 보기에도 '모두들 한결 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를 하기 보다는 서울에 간 자식 대학등록금 걱정, 대학 나온 자식 취직 걱정,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빚 얘기를 엿장수 가위 장단에 맞춰 발장단을 치곤했다.  

나그네가 무등산쌀막걸리를 맛보기 위해 들어간 집은 양동시장 들머리에 있는 '세계분식'이었다. 이 집은 말만 분식집이었지, 국수나 칼국수, 수제비보다는 돼지수육과 족발, 순대, 순대국 등을 무등산쌀막걸리와 함께 파는 밥집보다는 막걸리집이라 부르는 게 더 맞을 것만 같다.

나그네가 광주에 갈 때마다 꼭꼭 숨겨둔 애인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살포시 입술을 마주대는 술이 바로 무등산쌀막걸리다
▲ 무등산쌀막걸리 나그네가 광주에 갈 때마다 꼭꼭 숨겨둔 애인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살포시 입술을 마주대는 술이 바로 무등산쌀막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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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막걸리 맛을 보러 다녀요

"광주막걸리 두어 병 하고 족발이나 한 접시 주세요."
"순대국물은 서비스인데 드릴까요?"
"좋죠! 근데 무등산 막걸리병이 언제부터 이렇게 디자인도 세련되고 맛도 깔끔하게 바뀌었습니까?"

"한 4~5개월 됐지요. 요새 막걸리 바람이 하도 세게 부니까 막걸리 회사에서 병을 새롭게 만들고, 맛도 새롭게 싹 바꿨지요. 어떤 사람은 예전 무등산쌀막걸리가 더 맛이 좋았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새로 바뀐 이 무등산쌀막걸리가 뒷맛이 깔끔하고 감칠맛이 더 좋다고 그래요. 한번 드셔보세요."

"작년에 제가 광주에 와서 무등산막걸리를 마셨는데, 그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네요. 이번에 다시 오지 않고 예전 그 막걸리를 무등산막걸리라고 칭찬하는 글을 썼다면 큰 일 날 뻔 했네요."
"뭐 하시는 분인데요?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막걸리 맛을 보러 다니고 있지요."

이 집 주인은 시원시원한 성격에 마음까지 참 살갑다. 이 집 무등산쌀막걸리를 시키면 밑반찬으로 풋고추와 된장, 김치, 깎두기가 나온다. 족발을 시키면 새우젓과 순대국물은 그냥 따라 나온다. 족발 하나 들고 뜯으며, 무등산쌀막걸리를 한 모금 입에 넣고 한동안 혀로 살살 굴려 맛을 본다.

무등산쌀막걸리는 혀끝을 은근슬쩍 톡톡 쏘는 신맛이 아주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단맛이 살짝 배어나면서 뻑뻑하지 않아 부드럽게 잘도 넘어간다. 구수하고도 뒷맛이 깔끔한 순대국물을 안주 삼아 한 잔 쭈욱 들이키자 순식간에 술잔이 바닥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아사삭 씹히는 향긋한 맛이 좋은 풋고추를 집에서 만든 된장에 찍어 먹은 뒤 한 잔 그대로 비우자 풋고추와 된장이 막걸리와 어우러져 내는 향긋하고도 깔끔한 신맛이 차암 좋다. 하지만 이 막걸리도 마시면 마실수록 혀끝을 톡톡치는 신맛이 강해지면서 취기가 슬슬 올라온다.

이 막걸리도 마시면 마실수록 혀끝을 톡톡치는 신맛이 강해지면서 취기가 슬슬 올라온다
▲ 무등산쌀막걸리 이 막걸리도 마시면 마실수록 혀끝을 톡톡치는 신맛이 강해지면서 취기가 슬슬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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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서 막걸리 마실 때마다 떠오르는 시

"이 막걸리도 처음에는 전라도 가시내처럼 부끄럼을 많이 타면서 속마음을 좀처럼 열어주지 않더니, 자꾸 마시니까 은근히 감겨드네요. 스무 살 때 서로 펜팔친구가 되어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 광주 가시나처럼."

"전라도 가시내들은 처음에는 아무에게나 마음을 잘 열지 않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영원한 낭군으로 우러러 받들어 모시지요. 하긴 요즈음 전라도 가시내들은 그렇지도 않지만."

"전라도 가시내 하니까 시인 이용악이 쓴 '전라도 가시내'란 시가 떠오르네요. 전라도에서 막걸리 마실 때 이 시가 참 잘 어울리지요. 한번 읊어볼까요?"
"거, 아주 좋지요. 저도 한 잔 주실래요. 전라도 가시내란 시를 들으며 막걸리 한 잔 마시는 그 맛이 으뜸이지요."

알룩조개에 입 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밀고자 또는 약탈자)도 인전(이젠)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눈보라)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잠겨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기차)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 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눈보라)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태그:#무등산쌀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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