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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바람이 드세다. 요즈음 맥주 전문점이든 소주 전문점이든 음식 전문점이든 어디에 들어가더라도 막걸리를 팔지 않는 집은 거의 없다. 여기에 막걸리 병도 예쁜 유리병으로 바뀌고 있고, 상표도 많이 세련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막걸리 맛도 예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고, 혓바닥을 토독토독 치는 톡 쏘는 감칠맛도 아주 깊다.

    

지구촌 술 시장에서 와인까지 말아먹은 막걸리 바람을 타고 울산으로 간다. 울산은 나그네가 사업에 쫄딱 망했을 때 '소낙비 피하는 셈' 치고 몇 년 동안 언론사 생활을 하면서 막걸리를 한 끼 밥으로 삼아 엄청 마신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도 무슨 일이 있어 울산으로 갈 때마다 마치 고향을 찾아가는 것처럼 가슴이 마구 설렌다.  

 

울산에 가면 울산지역 막걸리시장 90%를 차지하며 가까운 양산과 경주까지 누비는 울산 태화루막걸리가 있다. 나그네가 예전에 울산에 살 때 마셨던 막걸리는 '태화강'이었지만 지금은 이름이 '태화루'로 바뀌었다. 태화루막걸리는 쌀과 개량 누룩을 주원료로 삼아 천연암반수로 빚는다.

 

이 막걸리는 혓바닥을 토독토독 쏘는 달큼한 신맛이 호수처럼 깊고, 뒷맛이 마치 사이다로 입을 헹궈낸 것처럼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알콜도수는 5.5도이며, 유통기한은 7일. '살아 있는 술'이라는 덧글이 붙어있는 태화루막걸리는 조금만 마셔도 취기는 빨리 오르지만 크게 취하지 않는다. 특히 아주 약하게 살짝 감도는 달큼한 뒷맛이 너무 깨끗하고 좋아 울산 농민들이 중참 때 논두렁에 둘러앉아 서로 주고받는 농민술이자 울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시민술이기도 하다.

 

 

태화루막걸리, 2009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 공식 건배주

 

울산탁주공동제조장에서 빚는 태화루막걸리는 '2009년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 공식 건배주'로도 뽑혔다. '자연 발효를 통한 미생물 마법'으로 태어나는 태화루막걸리가 '옹기'와 '발효음식'을 소재로 한 엑스포 콘셉트와도 참 잘 어울린다는 것. 이로써 울산탁주공동제조장(북구 효문동, 1969년 설립)은 막걸리 빚기 40년 만에 태화루막걸리로 태어나 옹기엑스포 홍보상표를 이마에 붙이면서 본격적인 수출길까지 활짝 열렸다.

 

울산탁주공동제조장에서는 전통기법에다 첨단설비로 태화루막걸리를 매일 1000상장(1상장 20병)을 빚고 있다. 이 막걸리는 울산에서 열리는 외국인 환영리셉션 및 엑스포 여러 공식행사와 부대행사 자리에서도 건배주로 나오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2009년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 행사에 앞서 '태화루막걸리는 울산에서 제조 유통되고 있는 전통발효주로서 옹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웰빙술'이라며 '서민의 술, 막걸리가 국제행사의 공식 건배주로 처음 선정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울산탁주공동제조장 김홍수(64) 대표는 '외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한다면 첫맛이 보다 부드러운 막걸리를 개발해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기대에 못 미쳤다'며 '4~5번째 실험을 마치면 원하는 맛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김 대표는 '막걸리를 빚는 일에 35년을 몸담았지만 그 많은 노하우가 머리속에만 있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며 '이제라도 자료를 모아 막걸리 기념관을 만들어보고 싶은 게 작은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자연 발효를 통한 미생물 마법으로 태어나는 울산 태화루막걸리. 울산은 한때 공해를 마구 내뿜는 산업도시라는 낙인이 찍혀 울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도 수돗물을 그냥 마시거나 막걸리 마시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지금 울산은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다. 울산은 2009년 세계옹기문화엑스포를 열면서 이제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선진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울산 태화루막걸리가 세계옹기문화엑스포 공식 건배주가 되면서 수출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도 지난 40여 년 동안 외길을 걸으며 울산막걸리 빚기에 모든 삶을 발효시킨 장인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허리띠 풀어놓고 막걸리 마시기에 딱 좋은 목로주점

 

"경호야! 오늘 울산으로 내려간다. 저녁 7시쯤 울산고속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이니까 병일이한테 연락해라. 원호 형은 내가 따로 연락하마."

"울산예? 울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 고향 창원으로 내려가는 김에 울산에 잠시 들러 오랫동안 못 봤던 벗들을 만나 울산막걸리나 한 잔 마시게."

 

"좋지요. 그럼 제가 울산에서 막걸리 제일 유명한 집을 하나 예약해 놓겠습니다."

"집에서 담근 막걸리 말고, 울산사람들이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울산을 대표하는 막걸리 있잖아. 그걸 파는 집이어야 해, 알겠지?"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서울-울산행 고속버스가 울산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고속버스에서 내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자 저만치 부산에서 막형을 보기 위해 올라온 언론계 후배 노병일이 손을 번쩍 들며 싱겁게 웃는다.

 

"늦었으니 택시를 타고 가자구. 빨리 안 온다고 전화가 빗발을 쳐."

"저한테도 전화가 몇 번씩이나 왔어예. 근데, 서울이 어디 한두 길입미꺼."

"아,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별 수 있어. 차가 달리는 거지 어디 사람이 급하다고 마구 달리는 게 아니잖아? 글구, 도로가 자꾸 막히는 걸 운전기사가 아무리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해도 어떡하겠어."

 

"글쎄 말입니다."

 

"히야! 오랜만에 울산에 왔더니 이거 야경뿐만 아니라 삐쭉뾰쭉 솟아오른 빌딩들이 서울 뺨치는구먼."

"얼마 만에 울산에 오시는 데예?"

"한 10년 됐죠."

 

"그러니까 그렇지예. 아, 요즈음 같은 세상이야 1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10년씩이나 됐으니 울산이 10번도 더 바뀔 수밖에예."

"저어기 좀 세워주세요."

 

울산 달동사거리에서 공업탑 쪽으로 10m쯤 걸어가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울산 태화루막걸리를 전문으로 팔고 있는그야말로 정말 정겹게 보이는 아담한 목로주점이 하나 있다.

 

이 목로주점이 울산에서 살고 있는 글쟁이 후배 최경호(49)가 울산에서 태화루막걸리를 허리띠 풀어놓고 마시기에도 좋고, 안주가 전주막걸리 집 못지않게 푸짐하고 맛깔스럽게 나온다고 침을 튀겨가며 추켜세우는 막걸리 집이다.

 

 

서녘하늘을 곱게 물들이던 연분홍빛 봄 노을에 물든 사람들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늦은 봄날 저녁 7시. 택시에서 노병일과 함께 내려 이 집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얼굴에 불그스레한 봄 노을빛이 물든 최경호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꾸뻑 인사를 하며 손을 내민다.

 

벌써 막걸리 빈 병이 열 병 남짓 한 귀퉁이에 두 줄로 나란히 쌓여 있는 그 술자리에는 이 집 주모인 듯한 60대 들머리께 나이로 보이는 아낙네와 나그네가 처음 보는 40대 끝자락 나이로 보이는 남자 한 명도 같이 앉아 있다. 이들 얼굴에도 아까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를 스칠 때 보았던 서녘하늘을 곱게 물들이던 그 연분홍빛 봄 노을이 지고 있다.  

     

"아따! 형님, 서울이 멀긴 머네예. 형님이 울산으로 내려오신다기에 저는 아까 저녁 5시부터 이 집에서 이렇게 대기하고 있었다 아입미꺼."

"대기는 무슨?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니까 내 핑계 대고 미리 나와 막걸리 마시고 있었던 게지. 근데, 이 두 분은 누구신가?"

 

"이쪽 누님은 제가 사랑하는 이 집 주모고예, 저쪽에 앉아 있는 친구는 제가 울산에서 가장 아끼는 후배 아입미꺼."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다섯 평 남짓한 이 집 유리창 쪽에 붙은 탁자 위에는 찌그러진 노오란 양은주전자에서 약간 엎질러진 막걸리와 노오란 양은잔에 울산 시내를 희미하게 가리고 있는 밤안개빛 막걸리가 가득 따라져 있다. 여기저기 먹다 남은 갖가지 안주도 어지럽게 널려 있다. 콩나물국, 부추전, 두부김치, 전어회, 생오이, 초장, 김치, 시금치나물, 생양파 송송 썬 것, 치커리, 풋고추, 된장, 양념간장 등......

 

"어휴! 술상을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형님! 이거 싹 다 치우고 새로 차려달라고 하께예."

"아니, 됐어. 막걸리는 원래 이렇게 대충대충 마셔야 제 맛이 나는 거야. 여기 막걸리잔이나 두 개 더 달라 그래."

"누님! 여기 막걸리 주전자에 담아 안주하고 저쪽에 새로 차려주이소. 형님이 사진 찍어야 하니까. 콩나물국은 따라 나오지예?"

 

 

"부드러우면서도 시큼달큼한 게 자꾸만 입이 당기지예"

 

"야, 이 술이 자연 발효를 통한 미생물 마법으로 태어난다는 그 울산 태화루막걸리야? 한 잔 어서 부어봐, 어디 맛 좀 보게. 예전에 내가 울산에 있을 때 매일 마셨던 그 태화강막걸리보다 맛이 얼마나 더 좋나 한번 마셔 보자구."  

"태화루막걸리 이거 사람 환장하도록 맛이 기찹미더. 예전에 맥주 마시던 울산사람들 대부분이 요새는 맥주 안 먹고 다들 막걸리만 찾습니더. 옛날 태화강막걸리는 좀 독한 편이었지만 태화루막걸리 이거는 부드러우면서도 시큼달큼한 게 자꾸만 입이 당기지예."

 

그때 주모가 부추전 한 접시와 세숫대야만 한 스텐대접에 식힌 콩나물국을 가득 담아 막걸리 잔 옆에 놓는다. 가을 전어가 아닌 싱싱한 봄 전어회와 부추전도 눈에 띤다. 콩나물국 몇 수저 떠서 입을 깨끗하게 헹군 뒤 태화루막걸리 한 모금 입에 물고 혀를 뱅뱅 돌려가며 맛을 본다.

 

"아따! 형님. 누가 막걸리 마니아 아니랄까봐서 그럽니까? 어서 쭈욱 한 잔 드시고 아우한테도 퍼떡 한 잔 주이소."

"맛이 엄청 많이 달라졌네. 예전 태화강막걸리는 토 쏘는 신맛이 아주 강하고 좀 세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막걸리는 톡 쏘는 신맛이 아주 부드럽고 단맛이 살짝 스치는 게 맛이  꽤 좋구먼."

 

"그렇지예? 그라이 저희들이 아까 5시부터 지금까지 열 병 넘게 마시고 있어도 기분 좋게 알딸딸하기만 하지, 확 취해버리지는 않지 않습니꺼."

"그래? 요즈음 막걸리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전국 막걸리 맛이 거의 비슷해졌어."

"형님! 그래도 울산에 왔으면 울산막걸리가 최고라고 한 말씀 남겨 주셔야지예. 안 그러면 저희 울산사람들 정말 서운하게 생각합니더."

"그래, 알았어, 알았어."

 

울산 태화루막걸리는 사이다처럼 토톡토톡 혓바닥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신맛에 몰래 하는 짝사랑처럼 깊은 감칠맛이 자꾸만 입을 당기게 만든다. 태화루막걸리는 마시면 마실수록 마치 첫사랑 그 여자와 눈빛을 마주치며 한 잔에 빨대를 같이 꽂아 달콤하게 빨아먹었던 그 쥬스처럼 새로운 추억을 가슴 깊숙이 화두처럼 새긴다.

 

그때가 마침 봄나물이 맛이 좋은 때여서 그런지 태화루막걸리를 마시면서 가끔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파릇한 취나물도 참 향긋하다. 여기에 후배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막걸리 잔에서 느껴지는 속정과 가끔 달콤한 눈빛을 마주치는 주모 속정까지 더해져 울산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보내는 봄밤은 더없이 달달했다. 


태그:#태화루막걸리,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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