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0년 2월 22일로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올해로 열살이 되었다. 첫 울음을 터뜨릴 때 상근기자 4명이 70여명으로, 시민기자 727명이 6만 6천여명으로 늘었다. 열살 동안 상근 기사는 스무 배, 시민기자는 약 100배가 늘어난 것이다. '기록으로 보는 오마이뉴스 10년'을 보니 기사수가 42만8천여개이다. 정말 놀라운 성장이다. 우리 언론 역사상 열살 만에 이렇게 성장한 언론사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마이뉴스>가 기존 언론들이 철저히 기자 중심의 기사를 생산하여 일방통행식 보도를 했다면 <오마이뉴스>는 독자라고 할 수 있는 시민들이 직접 기사를 작성하고 생산했다는 점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이 모토는 언론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켜 다른 언론사들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마이뉴스>가 10주년을 생일 잔치를 치를 수 있는 것은 정론직필의 언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 상근기자들과 함께 6만 8천여명의 시민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도 이들 시민기자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고 있기에 10주년 기념 특집으로 시민기자들을 대상으로 그 동안 시민기자 활동과 <오마이뉴스>에 바라는 것들이 무엇인지 인터뷰를 했다.

 

'따르릉'

"여보세요. 김동수입니다."

 

-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입니다.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인 것 알고 계시지요. 10주년 기념으로 그동안 시민기자로 활동한 몇몇 분들을 선정하여 시민기자로서 활동과 <오마이뉴스>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터뷰를 하고자 합니다.

"다른 훌륭한 시민기자들도 많은데…."

 

- 기사를 열심히 쓰시는 분들을 선정했으니 부탁드린다. 그동안 쓴 기사를 보니 약 3년 동안 1300여개를 썼는데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기사를 썼다.

"2007년 6월 8일 '3년 동안 매주 진주서 수원까지 기차를 탔다'는 기사가 첫 기사였는데 기억하기로는 '철도와 함께 하는 여행' 공모 기사였습니다. 학교 수원에 있었고, 집이 경남 진주에 있었습니다. 아마 길이를 더하면 지구 몇 바퀴는 돌았을 것입니다. 이후 기차를 타 본 일이 없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무엇인지?

"2007년 8월 5일 쓴 '하루 300개 담배꽁초, 보기도 싫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때 공공근로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담배꽁초가 많았습니다. 주워도 주워도 담배꽁초를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그런지 몰라도 나중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요즘도 길을 가다가 담배꽁초를 보면 줍는 습관이 있습니다."

 

- 다른 기사는 없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기간 중 '북파공작원 추모는 되고 노무현은 안 되나?'라는 기사로 오름 기사였습니다. 북파공작원들에게는 서울광장을 내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객들에게는 내주지 않는 서울시청에 대해 누리꾼들 반응을 올렸는데 그렇게 큰 반응을 보일지는 몰랐습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다 그렇지만 나 역시 눈물이 메말라 있는 사람입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이 토요일이고, 다음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예배 시간 중 찬송가를 부르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찬송을 부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 기사를 보면 막둥이가 등장하는 내용이 많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다지만, 막둥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립니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 한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들어갈 때는 한글을 몰라도 상관없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다들 한글을 다 읽을 줄 알고 갑니다. 나는 한 해 늦게 입학시키려고 했지만 아내가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또래 아이들보다 많이 늦습니다. 키도 작습니다. 잠 잘 때 가슴에 안고 잡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이번 <오마이뉴스> 1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막둥이를 데려 가기로 했습니다. 봄방학 기간 중 형과 누나는 전북 무주로 3박 4일 캠프를 가는데 막둥이는 가지 않습니다. 막둥이 마음을 달래는 뜻에서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오마이뉴스>가 간다고 하자 막둥이는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좋아하더군요. 그리고 머리카락이 길다면서 머리카락까지 잘랐다. 머리카락을 다 자르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형아, 누나. 나 아빠하고 <오마이뉴스>간다. 오늘(토요일) 서울가는 차표도 샀다. 엄마가 머리카락도 잘랐다."

"우리 막둥이 <오마이뉴스>에 간다고 하늘을 나르는 기분이구나."

"정말 좋아요. 아빠 <오마이뉴스> 찾아갈 수 있어요."

"아빠도 잘 모르겠다."
"아빠는 잘 찾아갈 수 있을거예요."

 

인터뷰가 이어졌다.

 

-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쓴 후 변한 것은 무엇인가?

"먼저 사람들이 많이 알아봅니다. 그동안 몰랐는데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를 봤다고 합니다. 옆집 아주머니로부터 아이들이 자주가는 병원 간호사, 그리고 시민단체 운동가까지. 그 분들이 내 기사를 읽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내 생활을 잘 알고 있으니까? 거짓말을 쓸 수 없습니다. 기사의 생명은 사실과 진실보도인데 '사는 이야기' 같은 기사에서 꾸몄다가는 금방 들통 나버립니다. <오마이뉴스> 때문에 라디오 인터뷰와 텔레비전까지 출연했고, 동화 원작자까지 되었지요."

 

- 라디오 인터뷰와 텔레비전 출연, 동화 원작자까지 되었다니 <오마이뉴스>가 사람을 엄청나게 키워주었군요(웃음)

"네 맞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는데 <오마이뉴스>에 하루라도 기사를 쓰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느낌마저 듭니다. 참 이상하지요. 사실 기사 내용은 아직 수준 이하입니다. 3년을 썼는데도 생나무 기사가 정식 기사보다 더 많을 정도이니까요. 그래도 '기록으로 보는 오마이뉴스 10년'을 보니까. 최다기사 시민기자에서 기사 1235개로 17위입니다. 6만 8천여명 시민기자 중 17위이면 대단한 것 아닌가요. 최다조회로는 30위, 미디어 부분에는 '추성훈 풍자보다 정치인 풍자가 보고 싶다'로 6위에 올랐습니다. 말하고니 자랑이 되어버렸습니다."

 

- <오마이뉴스>가 10주년이 지나 앞으로 10년을 향해 나아갈 것인데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처음 사랑을 버리지 말라, 처음에 하던 일을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도 10년 전 창간할 때 그 마음을 가슴에 새기면서 앞으로 10년을 헤쳐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마이뉴스>는 10년 전과는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인터넷 언론으로서 영향력만으로 보면 '기득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첫 사랑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기득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개혁이 필요합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권력비판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향한 비판이 함께 가지 않으면 '언론권력'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언론권력이 주는 폐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습니다."

 

- '언론권력'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같습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는 보수세력으로부터 '좌파언론'이라고 비판을 받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오마이뉴스> 자부심이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독자와 시민기자들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진보 언론은 선명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다양성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부들어 밀어붙이기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미디어법, 4대강 사업 따위입니다. <오마이뉴스>도 4대강 사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4대강 사업을 반대합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이 '절대악'이냐고 물을 때 100% 동의하기는 힘듭니다. 이럴 때 언론이라면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학자와 기자, 정치인들과 치열한 논쟁을 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오마이뉴스>에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기사만 아니라 찬성하는 기사까지 올라와 치열한 논쟁을 통하여 마지막에는 4대강 사업이 왜 추진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보여줄 때 언론으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봅니다.

 

-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방향으로 갈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인터뷰에 응해주어 고맙다.

"<오마이뉴스>가 언론으로서 자기 사명에 충실하기 바란다. 그리고 20주년에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마이뉴스>가 잉걸 기사 1000개 이상을 쓰면 명예의 숲 오름상을 주는데 2009년 8월에 1000개를 썼다. 오름상에 올랐다고 <오마이뉴스>가 초청장을 보내주었다.

 

덧붙이는 글 |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응모


태그:#오마이뉴스, #10주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