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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발표하면서 두발 자유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에게도 신체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생활지도가 어려워지고 학습에도 방해가 된다"는 반대론이 맞서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실제 학교 현장에서 들려오는 청소년과 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볼 예정입니다. 또 이 사안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 대안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27일 오후 1시 강남역 인근 카페에서 열린 학생인권 좌담을 위해 모인 경기도 학생들.
 27일 오후 1시 강남역 인근 카페에서 열린 학생인권 좌담을 위해 모인 경기도 학생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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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아침마다 헤어 아이론('고데기')으로 머리를 펴고 생활지도부(혹은 학생부) 교사가 지나갈 때마다 목을 죽 길게 빼거나 교복 속으로 머리를 감췄다. 정문 두발검사를 피해 아침 7시까지 등교를 한다. 보건실로 도망가거나 아예 결석을 하기도 한다.

교사들은 염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헤집는다. 10여 명의 교사들이 전교생의 머리카락을 감당할 수는 없는 일. 감시의 권한을 일부 학생에게 부여했다. 학생부장은 선도부장을 쪼고 선도부장은 선도부원을 쪼아댄다. "넌 왜 10명밖에 안 잡니?"

머리카락을 둘러싼 학생과 교사의 전쟁은 이렇게 치열했다. 이게 다 '학생 생활지도와 면학 분위기를 위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역설적인 것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겐 두발 규제가 느슨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학원에 다니느라 미용실에 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 면제 이유다. 시험 기간에도 단속은 줄어들었다.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학부모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진짜 공부를 방해하는 것이 두발인지 두발 단속인지 헷갈린다.

전경 같은 선도부... 학생들 편 가르는 권력

27일 오후 1시 서울 강남역 인근 한 카페에 모인 청소년들은 "두발 규정 자체도 문제지만, 적용도 교사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고 지적했다. 좌담 참가자는 고등학생인 거부기, 하우, 태성(이상 별칭), 중학생인 김명진. 이들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만들 때 학생참여기획단으로 활동했던 청소년들이다.

조례 초안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는 강경했다. 지금도 '안습'('안구에 습기 차다'의 준말, '눈물 난다·안타깝다'는 뜻)인데 이것조차 수정하는 꼴은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처벌 규정도 없어서 학교장에게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가장 큰 한계로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조례 초안 발표 이후에도 경기도의 학교 현장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교사들은 조례안이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었고, 학생들도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발 단속은 싫어하지만 이것을 인권침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고,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친구를 '좌파'나 '빨갱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그래도 해법은 직접 나서는 것밖에 없다. 학생들이 내린 결론이다. 이들은 학생참여기획단을 기반으로 지역별 학생모임을 만들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일단 '학생인권조례 통과'가 당면과제지만, 오는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0번 후보를 내거나 공약을 요구하는 등의 선거 전략도 고민 중이다. 이미 오프라인 모임도 한 번 했다. 100명만 모여서 집회를 한다면 학교 현장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이들은 기대를 보였다.

이날 좌담은 약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됐으며, 정리 과정에서 되도록 학생들의 입말을 그대로 살렸다.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학교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며, 대부분 이름을 별칭으로 대신했다. 또한 참가자 중 대안학교 재학 중인 거부기의 사례는 중학교 때의 일이다. 다음은 좌담 내용 요약.

경기도교육청이 시도교육청으로는 전국 최초로 추진하는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지난 17일 발표되었다. 사진은 11월 20일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과정을 도민들에게 보고하는 김상곤 교육감.
 경기도교육청이 시도교육청으로는 전국 최초로 추진하는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지난 17일 발표되었다. 사진은 11월 20일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과정을 도민들에게 보고하는 김상곤 교육감.
ⓒ 경기도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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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발 단속 때문에 이런 것까지 해봤다',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
김명진 "(등교 검사를 피해서) 선도부 나오기 전에 아침 7시 반에 학교에 들어간다. (하우 "고등학교는 7시까지 가야 한다.") 생활지도부(교사)가 단속 돌면 보건실로 내려간다. 가끔씩 선생님 한 명에 선도부원 2명씩 붙여서 세게 단속하는데, 한 반에 1~2명은 아예 결석한다.

선도부가 선생님보다 심하게 잡는다. 애들도 처음부터 친구들을 잡는 게 아니라 선생님 추천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는데, 조직에 물든다. 전경과 비슷하다. 권력을 갖게 되면 애들이 바뀐다. 웃으면서 즐긴다(모두들 "우~ 너무 싫어"). 못 잡으면 '왜 10명밖에 안 잡냐'고 학생부장이나 선도부장이 쪼고, 애들한테도 욕먹고…. 남학생이 여학생 치마길이 잡는 것도 참 말이 안 된다. 선도부의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하우 "매일 아침마다 '고데기'로 파마머리 펴기도 하고. 완전 곱슬 브로콜리 머리라서 자기도 스트레스 받는데 선생님이 지저분하다고 만날 뭐라 그런다."

거부기 "그런 애들은 아예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 하라고 하더라. 자연 갈색인데 '학주'(학생주임 교사)가 머리 다 헤집는다. 머리뿌리는 검은색인지 아닌지 본다고. 애들이 (어깨 위 길이로 보이려고) 목 높이 빼고 교복 칼라 뒤에 머리카락 넣는다. 머리 흩뜨려서 묶기도 한다. 단속은 개학 때가 피크다. 방학 동안 머리 기르고 염색하고 파마했는데, 첫날은 봐주고 경고만 하면서 3일 동안 빡세게 잡는다. 웃긴 게 또 시험기간에는 안 잡는다. 공부하는 데 스트레스 준다고 학부모가 싫어한다."

태성 "우리 학교는 머리 짧다고 소문이 다 나있어서 각오를 하고 들어온다. 미용실 갈 돈 아끼느라 친구들끼리 함께 '바리깡' 사서 서로 깎아준다."

규정보다 센 단속... "머리카락은 빨리 자라니까"

- 머리 길이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나.
하우 "우리는 모른다. 학교에서 정해서 통보만 하니까."

태성 "단속도 일관성이 없고 주관적이다. 지네 마음에 안 들면 다 '빠꾸'다."

김명진 "규정은 '앞머리 눈썹 위까지, 옆머리는 귀 안 덮을 정도, 뒷머리는 와이셔츠까지'인데 걸리면 훨씬 짧게 자른다. 학생부장은 '반삭'(반 삭발)하거나 밀라고 한다. 머리가 빨리 자란다는 거다."

하우 "규정은 20㎝인데, 학생부장이 지금 통과해도 한 달 뒤면 걸릴 거라면서 15㎝부터 잡는다. 그러고선 더 짧게 12㎝로 잘라오라고 한다."

거부기 "선생 기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전날 싸웠다거나 하면 단속하는 것 같고. 차별도 심하다. 노는 애들은 '빡세게' 잡고 수업 끝나고 남으라고 해서 미용실에 데려가는데, 공부 잘하는 애들은 학원 가느라 머리 자를 시간 없었을 거라면서 다음에 자르라고 한다."

- 두발 자유화가 이뤄지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거나 청소년 탈선을 막기 어렵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규제가 풀리면 학생들 머리도 상품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우 "정말 공부에 집중이 잘되면 나도 깎겠다(웃음). 사회 선생님이 '두발 규제를 하면 성매매업소에서 구분이 잘되기 때문에 청소년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그러더라.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은 소중하고 돈으로 가치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고 성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명진 "술담배가 잘못이라고 가르치려면 전문 상담교사나 보건교사가 신체 변화를 알려줘야 하는데, 강당에 애들 모아놓고 빽빽 소리만 지른다."

거부기 "상품화는 정말 비판해야 한다. 그렇지만 규제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빈부격차 드러난다고 학교에 명품구두나 가방을 못 들고 오게 하는데, 눈 가리고 아웅이다. (학생들이) 서로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까발리는 게 맞다."

하우 "어른들도 연예인 따라서 '누구누구 백' 같은 가방 산다. 청소년들만 문제가 아니다."

- 교권이 무너진다고 걱정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태성 "교권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학생 때리고 통제하는 게 교권이 아니다."

거부기 "선생님들도 인권침해 당한다. 잡무가 너무 많아서 수업이 어렵다거나."

하우 "자기가 존중받으려면 먼저 학생들을 존중해야 한다. 학생 때리는 권리가 교권이라면, 그걸 왜 지켜줘야 하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 지금도 '안습'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올라온 두발 검사 사진. 단속에 걸린 학생들이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올라온 두발 검사 사진. 단속에 걸린 학생들이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다.
ⓒ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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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참여기획단으로서 조례의 과정과 내용을 평가한다면?
거부기 "직접 회의에 참여할 수도 없고, 우리 의견은 그냥 '참고자료'일 뿐 얼마나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존재를 아는지도 의문스럽다. 오프라인 활동도 우리가 알아서 잡았다."

하우 "적어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는 학생과 교장을 똑같은 인간으로 동등한 위치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안됐다."

거부기 "당하는 사람은 우리니까, 우리 얘기를 들어야 한다."

김명진 "조례안 내용도 수박 겉핥기다. 처벌 규정이 없어서 교장이 안 지켜도 된다. 결국 학교에서 또 싸우고 선생과 법적 소송해야 한다."

- 조례안이 도의회 거치면서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것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모두 "안 된다. 지금 것도 '안습'이다."

김명진 "수정하면 '원칙적으로 체벌 금지', 이런 식으로 될 거다. 그러면 만날 '예외'라면서 원칙 어기고 체벌할 거다."

거부기 "수정되는 것보다 오히려 학생들이 들고일어나서 조례를 통과시키는 게 의미 있다."

- 조례안 발표 이후 학교에서 달라진 게 있나. 교사들이 긴장한다거나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진다거나.
김명진 "(다들 고개를 흔드는 가운데) 학생부장에게 돌려서 물어봤더니 '왜 그딴 놈 뽑아서 귀찮게 만드냐'고 (김상곤) 교육감 욕하더라."

하우 "선생님들은 통과 안 될 거라고 한다."

태성 "학생들이 동요한다고 선생님들이 그런 얘기 잘 안 알려준다."

김명진 "사실 지금도 도교육청에서 '체벌 및 두발단속 금지' 공문이 내려온다. 우리 학교에도 8월·10월에 계속 왔지만 그대로 쓰레기통에 갔다."

- 이런 활동 하면 주변 반응은 어떤가. 학생 당사자들은 이 문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나.
태성 "반 친구들이 진짜 머리 기를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본다. 그렇지만 입시 교육에 찌들어있어서 (조례를) 만들어봤자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김명진 "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긴 하다. 물어보니까 선도부도 좋아하더라. 그렇지만 두발이나 복장이 '인권침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적다."

거부기 "학생인권운동에서 가장 오래 했던 주제가 두발인데, 제대로 된 게 없어서 힘 빠지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이슈가 되면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

하우 "'우리 학교만 규제 풀어주면 공부 못하는 애들이 들어와서 피해 준다'고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 학교는 학생회 애들이 보수적이다. 내가 두발 문제를 얘기했더니 학생부장에게 일렀다. 그래서 담임이 학생부장 만나서 '얘 되게 착실하고 공부 잘한다'고 날 두둔했다고 한다. 그것도 기분 나쁜 게 공부 못하는 애들에 대해선 어떻게 말하는 것인가."

태성 "'좌파'나 '빨갱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자기들이 교육받나? 교육감도 우리가 직접 뽑자"

-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태성 "학생들끼리 단체 만드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학생참여기획단이 400명이 넘는데 이를 기반으로 지역조직을 만들 생각이다. 얼마 전 오프라인 모임을 했고 앞으로도 또 모임이 있다. 몇몇 학생회 친구들과도 얘기를 하고 청소년단체와도 얘기를 해서 학생자치연합을 만들까 한다. 경기남부는 수원, 경기북부는 의정부를 중심으로 해서. 1차 목적은 조례를 통과시키는 것이고."

김명진 "오프라인으로 200~300명(다들 "100명만 모여도 돼") 모여서 집회를 연다면, 큰 쇼크를 입을 것이다."

거부기 "1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때그때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철에는 교육감 선거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기호 0번으로 (상징적인) 후보를 내는 운동도 해볼 수 있고. 우리가 직접 교육감 뽑았으면 좋겠다. 교육을 지들이 받나, 내가 받지."

2007년 청소년 행동의 날, 입시문제와 두발 규제, 비정규직 문제를 비판하고 있는 학생들.
 2007년 청소년 행동의 날, 입시문제와 두발 규제, 비정규직 문제를 비판하고 있는 학생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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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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