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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발표하면서 두발 자유 문제가 다시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학생에게도 신체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생활지도가 어려워지고 학습에도 방해가 된다"는 반대론이 맞서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실제 학교 현장에서 들려오는 청소년과 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볼 예정입니다. 또 이 사안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 대안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22일 찾아간 부천공고의 한 교실. 학생들은 대부분 '반삭' 머리지만, 방학을 앞두고 단속을 피해 머리를 기르려고 시도하는 학생들도 종종 있었다.
 22일 찾아간 부천공고의 한 교실. 학생들은 대부분 '반삭' 머리지만, 방학을 앞두고 단속을 피해 머리를 기르려고 시도하는 학생들도 종종 있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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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스님 같은 '반삭' 머리, 정말 '쩔어요.' 쪽팔려요."
"지나가는 여자애들이 웃어요. 감옥에서 나왔냐고 해요."
"걸리면 X터지게 맞아서 엉덩이가 무지개색 돼요. 쌍욕도 들어요."
"기르고 싶으면 자퇴하래요. 그게 학생한테 할 말이에요?"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표한 학생인권조례 초안에서 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대목은 두발 자유화다. 22일 부천공고의 한 2학년 교실에서 만나본 학생들 역시 두발 단속에 대해 격렬하게 불만을 쏟아냈다.

이 학교의 단속 기준은 '앞머리 7㎝, 옆이나 뒷머리는 살이 보일 정도'. 두 달에 한 번 꼴로 검사를 하고 눈에 띄는 대로 수업시간 중에도 단속을 하는데, 교사가 만졌을 때 손가락 위로 머리가 삐져나오면 불합격이다. 아이들은 이를 '반삭'이라고 표현했다. '반 삭발'이라는 뜻이다.

단속은 자연스럽게 강제이발과 체벌로 이어진다. 처음 한두 번은 위협과 욕설만으로 끝나지만 여러 차례 걸린 학생은 '사랑의 매'를 맞는다. 저녁 7시 반까지 차가운 교실에 남아 있도록 벌을 받기도 한다.

올해 교직 6년차인 김진 교사는 "교사들도 폭력과 체벌에 무감각해진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생활지도 교사들도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두발 단속을 하는 것은 아니다. 관행대로 학교 지침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는 것뿐이다.

학생회가 두발 관련 설문 돌려도 징계감

올해 부천공고에서는 '두발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학생회가 당선됐고, 학교도 생활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학교 측은 '앞머리는 눈썹까지, 옆머리는 귓불까지, 뒷머리는 칼라에 닿지 않을 길이'로 규정을 바꿀 방침이고, 학생회는 '길이는 자유, 파마·염색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개정 과정에서 학생 의견 수렴은 쏙 빠져 있다. 최근 학생회가 새 규정에 대한 학내 설문을 실시했지만, 학교 측은 "징계감"이라면서 제재에 나섰다. 학생회 활동은 생활지도부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머리를 기르기 위해 설문지를 돌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설명이다.

이 학교는 실업계 고등학교라서 지역에서도 두발·복장 단속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불량 학생이 많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오히려 더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계 고등학교 중에도 단속이 '빡센' 경우는 많다.

수원의 한 인문계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기준이 150~180㎜고 한 달에 한 번씩 단속을 한다, 걸려서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자주 이발소에 가기 귀찮은 학생들은 아예 바리깡을 사서 직접 머리를 밀기도 한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사례에서도 두발 단속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게시판에 올라온 강제이발 사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게시판에 올라온 강제이발 사진.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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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음 졸업할 건데 그냥 거슬려도 좀 참아주고 냅두면 안 되나. 분명히 1.1㎝ 안 되는데 머리 길다고 더 자르라고…. 아예 삭발을 시키시지요. 머리 길다고 꼬집고 때리고, 집에 와서 보니까 살 까지고 멍들었더군요."
"전교 1178명 중 머리 안 자른 50명 정도인가를 구령대로 불러서 쉬는 시간마다 앉았다 일어났다 어깨동무를 10분 내내 시켰는데, 더 충격적인 건 구령대로 늦게 나온 2학년 형을 엎드리게 하더니 사람 키만한 몽둥이로 어른이 있는 힘껏 때렸음. ㅎㄷㄷ~ 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 돌아올까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다니 정말 세상이 왜 이런지. 에휴 ㅠ"
"저희 학교 규정은 귀밑 2㎝인데 학생부 선생님들이 약속을 전혀 안 지켜서 1학년 학생 100여 명이 두발 자유 시위를 했습니다. 2일째 되던 날 학생부 선생님 한 분이 (두발 자유 시위) 푯말을 집어던지며 학생 머리를 때렸습니다. 주도자인 제 친구는 1주일 사회봉사 다녀왔습니다. 월요일까지 머리 안 자르면 죽는다고 하더군요."

'범생'에게도 두발 단속은 인권침해

두발 자유를 위한 학생들의 조직적 저항 사례는 의외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속이 심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어차피 (보수적인 분위기를) 알고 들어왔고, 당하기 싫어서 자포자기한다"고 말했다.

대신 학생들은 방학 동안 파마나 염색을 해서 자유를 극대화하고, 학기 중에는 옆머리를 귀 뒤로 숨기고 생활지도부 교사들을 피해다니면서 소극적 저항을 한다. 그러나 두발 단속 등 규제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부천공고에서는 심지어 35명으로 시작한 반이 학기말에는 25명도 안 되는 경우도 있었고, 한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 역시 "1년에 10여 명은 학교를 그만둔다"고 전했다. 두발 단속을 하는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머리 기르고 싶으면 자퇴하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김진 교사는 "사실상 끝내 굴복하지 않는 아이들을 학교가 쫓아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올라온 두발 검사 사진. 단속에 걸린 학생들이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올라온 두발 검사 사진. 단속에 걸린 학생들이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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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그만둘 정도로 학생들에게 머리카락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왜 학생들은 두발 단속을 가장 심각한 인권 문제로 인식할까.

학생들은 "사실 한창 외모에 신경 쓸 나이 아니냐, 교복을 입기 때문에 개성을 표현할 방법은 머리뿐이다"고 말했다. 공부에 방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외고생들은 머리 길어도 공부만 잘하더라"는 답변으로 응수했다.

그러나 이들이 단속에 반발하는 것은 단순히 멋 때문만은 아니다. 두발 단속에 걸릴 일 없는 '범생이'도 두발 단속에는 반대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기분이 더럽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강제로 머리 잘리고 두들겨 맞을 때는 정말 학교 그만두고 싶어진다"면서 "어른들이 머리를 잘라라 말아라 간섭하는 것 자체가 싫다"고 말했다. 두발 규제는 머리 길이가 아닌 신체의 자유 문제라는 것이다.

아수나로 게시판에서 한 회원은 "자기 머리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인권을 논하겠냐"는 말로 두발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에게 머리카락은 "인권의 상징이자 자존심"이고, 이를 침해하는 것은 야만이다. 잘려나가는 것은 두발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다.


태그:#두발 단속,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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