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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찾아간 이우학교 모습. 인터넷쇼핑몰 화면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크리스마스 행사에 단체로 맞출 목도리를 고르는 중이다.
 21일 찾아간 이우학교 모습. 인터넷쇼핑몰 화면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크리스마스 행사에 단체로 맞출 목도리를 고르는 중이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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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찰랑 긴 머리가 드물지 않다. 갈색으로 염색하거나 웨이브 파마를 한 여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단발머리 학생을 다시 보니 남학생이다. 스포츠머리를 한 남학생은 한 명도 없다. 21일 오후 찾아간 성남시 분당구 '이우학교' 교실 모습이다. 이 학교는 지난 2003년 대안학교로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두발과 복장에 대해 아무런 규제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학생들 차림새가 특별히 요란한 것은 아니다. 울긋불긋 총천연색이나 사자머리 웨이브를 기대했다면 좀 실망할 것이다. 간혹 머리를 기묘한 모양으로 삭발하거나 튀는 색으로 염색하는 학생도 있지만, 이들이 '날라리'는 아니다. 독특한 머리 모양을 좋아하는 성인들이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우학교 이수광 교사는 "머리 길이는 공부에 변수가 안 된다"고 전하면서 "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삶이 있는 곳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삶이 즐거운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짧은 머리가 더 신경 쓰여요"

현재 일반 학교 중에서는 두발 단속이 없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일부 머리 길이가 자유로운 경우는 있지만,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에서 보장한 것처럼 파마·염색까지 자유로운 학교는 특성화학교나 대안학교뿐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안을 발표하자 지난 21일 대한민국교원조합·자유교원조합·한국교원조합 등은 "교사들의 지도 권한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역시 지난 18일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보수적 학부모·교원단체의 주장과 달리, 아무런 두발 단속도 하지 않는 이우학교는 지난 6년간 별 혼란 없이 굴러갔다. "학생들 머리 때문에 지도가 어렵다"는 교사는 한명도 없었다. 생활지도는 어떻게 할까? 간단하다. 그런 것 안 한다.

이 학교에서 머리 모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또래 문화와 각자의 취향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튀는 모양을 시도하면서 자유를 만끽하던 학생들은 차츰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낸다. 이 때문에 '너무 양아치 같은 머리'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대부분의 친구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수준의 스타일을 찾지만, 용감한 일부 학생들은 좀더 튄다. 어떤 길이와 색깔이든 결국 자신의 결정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지금은 이번 시즌의 주제에 맞춰 검은색으로 염색했지만 오수은(고2) 양은 그동안 분홍색, 노란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깔로 머리를 물들여왔다. 그는 입학하고 한 6개월 정도는 자신을 놀던 애로 오해하는 친구들이 많아 마음고생을 했다. 학교 바깥의 시선은 더 차가웠다. "너는 머리가 대체 왜 그러냐"고 묻는 친척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차츰 튀는 색깔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점차 염색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오 양은 "저를 만나면서 염색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는 친구들을 보면 뿌듯하다, 사소하지만 저만의 중요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우학교 홈페이지에도 당연히 자유로운 두발과 복장의 학생들 사진이 걸려있다.
 이우학교 홈페이지에도 당연히 자유로운 두발과 복장의 학생들 사진이 걸려있다.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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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머리모양에 신경을 쓰다보면 공부에 방해되지는 않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염색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기 때문에 학습 효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인권동아리 회장 전한(고2) 군은 일반 중학교에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서 "앞머리가 눈을 가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긴 머리가 공부에 지장을 줄 게 뭐 있냐, 오히려 짧은 머리가 더 방해된다"고 말했다. 머리 길이가 짧다고 학생들이 스타일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제한된 길이와 색깔로 개성을 표현한다.

게다가 멋을 부리지 않는 학생들도 학주(학생주임 교사)에게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틈틈이 머리 길이를 확인해야 한다. 정 군 역시 중학교 때는 두발 검사에 걸려 머리를 잘려본 적도 있고 맞아본 적도 있다. 두발의 자유를 얻은 지금 그의 머리는 길지도 짧지도 않다. 대신 귀걸이로 멋을 줬다.

머리가 길면 술집에 마음대로 들어간다?

두발 자유를 반대하는 학부모나 교사들은 "머리가 길면 신분을 속이고 술집에 들락거리거나 19금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두발 규제를 풀면 원조교제가 늘어난다"고 주장하는 교사도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의 반론은 "머리 길이가 아닌 의식 개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머리가 짧은 학생들도 신분증 검사 없이 술 담배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선 '애들이 가도 되는 술집'에 대한 정보가 오간다.

이우학교에서는 생활지도가 학생들의 삶을 과도하게 통제해 성장의 걸림돌이 된다고 본다. 대신 학생복지를 중시한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교육받도록 적극 조력하는 학습복지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생활복지가 그것이다.

이우학교 브로셔에 나타난 학생들의 수업모습.
 이우학교 브로셔에 나타난 학생들의 수업모습.
ⓒ 이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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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학교처럼 학급당 학생수가 20명 이하인 대안학교라면 몰라도 일반학교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공립학교에서도 9년 근무하면서 학생부 일도 해본 이수광 교사는 "조건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학급당 학생수가 12~13명인 소규모 지역 학교들도 두발을 단속하지 않냐는 것이다.

오히려 매일 같이 정문에서 머리 길이를 점검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를 과중하게 만든다. 이 학교 학생들은 "두발 단속할 시간에 선생님들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두발 자유가 갑자기 전면 시행될 경우, 초기에는 일선 학교의 혼란과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이수광 교사는 "그 때 아이들과 토론하면서 자율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라면서 "스스로 책임질 기회를 주면 학생들은 어른들이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공동체의 규범을 만든다"고 전했다.


태그:#학생인권조례, #두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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