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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지난 6월초 서울성모병원에서 노친의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의사로부터 어머니 여생이 6개월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폐와 갑상선에 암이 진행 중인데, 원발성 암세포가 아니고 2001년의 대장암에서 전이된 것이라고 했다.

종양내과로 입원한 다음 암의 성격을 좀더 확실히 규명하고 거기에 맞는 치료를 할 것인지, 86세 고령을 감안하여 완화의학과로 입원해서 통증 조절 치료로 여생을 마치게 할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참으로 난감했다.

폐암과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시던 지난 6월초의 모습. 개신교 신자인 윤주향씨가 기타를 치며 부르는 가톨릭 성가를 들으며, 병상에서도 기도를 많이 하셨다.
▲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 입원실 폐암과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시던 지난 6월초의 모습. 개신교 신자인 윤주향씨가 기타를 치며 부르는 가톨릭 성가를 들으며, 병상에서도 기도를 많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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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계속하다가 결국 완화의학과를 선택했다. 노인의 암세포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검사부터 노인에겐 가혹한 고문이 되리라는 생각, 규명을 한다면 필경 항암 치료 아니면 수술일 텐데 그것을 노인이 견디어내지 못하리라는 생각, 고통을 감소시키는 가운데서 여생을 보내시게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나으리라는 생각으로 그리 결정하였지만, 마음 무겁고 괴로운 일이었다.

노모께서 열흘 가까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나는 말기 암 환자들이 여럿 이승을 떠나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에 따른 심고도 컸다. 젊은 시절 베트남 전장에서 무수히 접했던 젊은 주검들을 뜬금없이 떠올려보기도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대하는 죽음들은, 인생 자체가 막판에까지 치열하고도 처절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실감시켜 주는 듯했다.

다행히 노친은 일단 퇴원을 할 수 있었다. 한 보따리의 약이 따라왔다. 노친의 몸 안에 자리잡은, 이미 폐부에 많은 양의 물이 생기도록 진행을 한 암세포들을 공격하는 약들은 물론 아니었다. 신경을 마비시켜 고통을 감소시키는, 또 거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작용을 돕는 약들이었다. 무릇 약이라는 것이 본래 '양날의 칼' 같은 것이므로, 당연히 반작용의 축적을 감수해야 할 것이었다.

나는 노친께 시간에 맞춰 약을 챙겨 드리면서, 또 약이 많아 잡숫는 것도 힘들어하시는 노친을 보면서, 노친이 암세포의 진행보다도 지속적인 약물 복용으로 말미암아 결국엔 약의 독에 의해 돌아가시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식이요법과 함께, 마늘을 살짝 볶고 어지간히 찧은 다음 참기름에 버무려서 양 발바닥에 붙여 드리는 일을 매일밤 계속했다. 투명 테이프와 랩이 필요했다.
▲ 대체의학 식이요법과 함께, 마늘을 살짝 볶고 어지간히 찧은 다음 참기름에 버무려서 양 발바닥에 붙여 드리는 일을 매일밤 계속했다. 투명 테이프와 랩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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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친은 음식을 잘 드셨다. 그게 다분히 매일 아침 식후에 드시는 '식욕촉진제' 덕분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일단 노친이 음식을 잘 드시는 것을 반기며 좋은 징조로 여겼다. 왕성한 식욕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음식 공급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잘 잡숫는 것만큼 몸에 기운이 생기기를 기대하며, 노친께서 잡숫고 싶어하는 음식을 고루 사드리기로 했다. 나는 옛날부터 무슨 모임이나 행사 관계로 처음 가보는 음식점에서 색다른 음식을 맛보게 되면 그 집을 잘 기억해 놓았다가 훗날 꼭 가족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즐기기도 했는데, 노친께서 병환을 겪으시게 되면서 외식을 좀더 자주 하는 셈이 되었다.

노친을 모시고 비교적 자주 외식을 하면서, 아무리 노친께서 즐기시는 맛있는 음식이더라도 밖에서 먹는 음식이 노인 건강에 그리 좋은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우려 속에서도, 노친의 여생이 6개월 정도라고 했던 의사의 말을 상기하면서, 말년에 드시고 싶은 음식만이라도 실컷 잡숫게 해드리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2>

그러다가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님 서거 이후로 외식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가 우리 집에 색다른 전기를 가져다 준 까닭이었다.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 서거 후 '미사예물'을 준비하여 그분의 영혼을 위한 위령미사부터 봉헌한 다음 그분에 관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과거 그분에 관한 글을 몇 개 써서 지역신문을 비롯한 종이매체에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글들 중에서 세 개를 골라 그분의 서거와 관련하는 오늘의 심회를 곁들여 <오마이뉴스>에 연달아 올렸다. 그 세 개의 글들 중에서 하나는 포털 '네이버'의 메인 화면에도 오르고 해서 실로 많은 이들이 내 글을 읽었다.

대체의학 실행 이후 수면 시간이 대폭 줄고 활동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머니는 손수 바늘귀에 실을 꿰어 바느질도 하셨다. 지난 9월 20일의 모습이다.
▲ 노친의 바느질 모습 대체의학 실행 이후 수면 시간이 대폭 줄고 활동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머니는 손수 바늘귀에 실을 꿰어 바느질도 하셨다. 지난 9월 20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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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8월 23일(일요일) 중국 복건성에서 사신다는 최영주라는 여성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얘기는 8월 23일의 내 '생활일기' 중의 해당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중국에서 사시는 최영주라는 여성분에게서 전화가 옴. <오마이뉴스>에서 내 글을 읽고 크게 감동 받고 너무 고마운 나머지 "이런 분은 오래 사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다 함. 내 건강을 물어 당뇨와 통풍 등 성인병들을 안고 신장 치료 중임을 말하니 의사인 중국인 남편과 상의하여 웅담을 활용한 약을 9월 15일 일시 귀국할 때 가져와 선물하겠다는 말을 함. 그런 다음 오마이뉴스에서 내 글을 여러 개 읽은 나머지 어머니의 건강 문제를 알게 되어 다시 전화함. 그리고 밤에 장문의 메일을 보내고 또 전화를 함. 그 메일을 마누라에게도 읽어보게 함. 마누라는 프린트를 함. 최영주씨가 알려준 대로 어머니의 암세포 퇴치와 함께 우리 부부의 건강도 생각해서 대체의학 방법을 실행해 보기로 함. 매우 고마운 마음.

나는 우선 아내와 의논을 했다. 최영주씨와의 통화 내용을 상세히 말해주고 그분의 메일을 함께 면밀히 읽고 나서 우선 식이요법부터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께도 중국 최영주씨로부터 감사 전화를 받게 된 동기와 여러 번의 통화 내용을 자세히 설명 드리고, 프린트한 메일을 읽어 드리기도 했다.

아내는 아침 일찍 최영주씨의 메일 중에서 식이요법 내용을 뽑아 정리한 다음 큰 글씨로 프린트를 하여 그 식단표를 주방 냉장고 문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오전에 함께 시장에 가서 여러 가지 식료품들을 비교적 많이 구입해 왔다. 방학인 덕분에 아내는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날(24일/월) 점심부터 어머니를 위주로 우리 부부도 함께 식이요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사는 둘째 딸이 9월초 친정을 방문했을 때 주일(6일) 아침미사를 지내고 나서 대성당 제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둘째 딸(오른족에서 두 번째)은 어머니 생전의 마지막 모습을 본다는 마음으로 서둘러 친정 방문을 했는데,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 태안성당 제대 앞에서 미국에서 사는 둘째 딸이 9월초 친정을 방문했을 때 주일(6일) 아침미사를 지내고 나서 대성당 제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둘째 딸(오른족에서 두 번째)은 어머니 생전의 마지막 모습을 본다는 마음으로 서둘러 친정 방문을 했는데,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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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여기에 우리 집에서 매일 실행하고 있는 식이요법(식단) 내용을 소개해 본다.

<물 섭취>
기상 후 물(알칼리 수, 육각수) 1∼2잔. 식사 한 시간 전에 마시고, 식후 100분 안에는 마시지 않음. 하루 여덟 잔 정도는 마시는 것이 바람직함.

<식사>
아침 / 마늘 서너 통, 감자 두세 개, 양파 한 개, 당근 작은 것 한 개를 잘게 썰어 찹쌀로 죽을 끓임. 간장에 파나 부추를 잘게 썰어 듬뿍 넣고 참기름을 친 양념장을 곁들여 먹음. 시거나 쓴 음식을 주로 먹음.
간식 / 토마토 반 개. 바나나 한 개.

점심 / 잡곡밥, 된장국(청국장), 푸른 채소, 등 푸른 생선, 시고 쓴 음식.
간식 / 옥수수나 고구마 조금. 흑마늘 한 통. 호두 하나.

저녁 / 감자밥이나 무밥. 저염 간장에 마늘이나 부추나 생강즙을 넣고, 고춧가루 조금과 참기름을 섞은 양념장을 곁들여 먹음. 마늘을 살짝 볶거나 익혀서 먹음. 시고 쓴 음식 위주.
간식 / 생감자와 양배추와 사과를 갈아서 한 잔. 흑마늘 한 통. 호두 하나.

<기타>
마늘 3∼4통과 양파 3개를 끓여서 아침저녁으로 한 컵씩 마심. 물이 3분의 1 정도로 줄어들 때까지 끓임.

9월 25일(금) 오후 서산시 해미면의 '해미무명순교자성지' 담당 백성수 시몬 신부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여 기도와 '봉성체'를 행해 주셨다. 천주교의 '봉성체'란 사제가 성당의 감실 밖으로 성체를 모시고 가서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으로 하여금 받아 모시게 함을 이름이다. 백성수 신부님은 1993년부터 5년 동안 태안성당 제10대 주임으로 계셨던 분이다.
▲ 환자 봉성체 9월 25일(금) 오후 서산시 해미면의 '해미무명순교자성지' 담당 백성수 시몬 신부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여 기도와 '봉성체'를 행해 주셨다. 천주교의 '봉성체'란 사제가 성당의 감실 밖으로 성체를 모시고 가서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으로 하여금 받아 모시게 함을 이름이다. 백성수 신부님은 1993년부터 5년 동안 태안성당 제10대 주임으로 계셨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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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하고, 무척 정성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적이 힘들긴 하지만 우리 부부는 기꺼이 이런 식의 식생활을 해나가기로 했다. 우선은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서이지만 계제에 우리 부부의 건강도 챙기는 일이었다. 어머니께만 그런 식사를 드리면 노인께서 자신은 환자라는 위축감과 소외감 같은 것을 가질 수도 있으므로 가족이 함께 같은 식사를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온 가족이 같은 식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형 집에 와서 하는 동생은 다행히 감자밥이나 무밥을 좋아했다. 하지만 고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에는 집에 오는 큰 아이와 데리고 살고 있는 작은 아이, 두 조카 녀석들은 그런 음식을 싫어했다. 그러므로 아내는 노상 두 가지로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이런 식이요법을 권유해준 최영주씨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라고 한 히포크라테스의 말도 소개해 주었다. "사람의 몸은 물과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과 흙을 잘 먹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사람이 모체에서 생겨나 자라는 자궁 속의 양수는 알칼리 수이고 육각수이기 때문에 알칼리 수와 육각수를 많이 마셔야 한다"는 말도 했고, "흙 속에서 생장하는 것들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특히 마늘의 효능을 강조했다. "몸에서 마늘 냄새가 날 정도로 일상적으로 많이 먹어야 하고, 웅담이 아무리 좋은 약재라도 마늘이 인체에 많이 들어간 상태에서 웅담이 들어가야 제대로 효능이 발휘된다"는 말도 했다. "몸의 독소를 빼내는 작용으로는 지구상에서 마늘과 웅담을 능가하는 식품은 없다"는 말도 했고, "해독작용이 원활히 이루어지면, 순환작용이 좋아지고, 순환작용이 좋아지면 면역력이 증강되어 그것으로 암세포를 이기게 된다"는 말을 강조했다.

지난 9월 26일(토) 진흥파트 구역 신자들의 갈매못성지(충남 보령시 오천면 명보리) 순례행사에 어머니도 기꺼이 참여하셨다. 그리고 부축을 받기야 했지만 갈매못성지 대성당의 가파른 언덕길을 무난히 올라가셨다.
▲ 갈매못 성지순례 지난 9월 26일(토) 진흥파트 구역 신자들의 갈매못성지(충남 보령시 오천면 명보리) 순례행사에 어머니도 기꺼이 참여하셨다. 그리고 부축을 받기야 했지만 갈매못성지 대성당의 가파른 언덕길을 무난히 올라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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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주 여사는 남편이 의사라고 했다. 복건성의 대만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병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중국에서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같이 공부하는 의과대학들이 많다고 했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함께 공부한 남편이 특히 대체의학에 능통해서 식이요법을 주로 시행하는 대체의학으로 말기 암 환자들을 소생시키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최영주씨는 "남편 주 욥(73) 박사가 가수 주현미씨의 작은아버지"라는 말도 해주었다. 자신은 53세로 주 욥 박사의 세 번째 부인이라는 말도…. 자신도 자궁암과 십이지장 궤양,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았고, 일본에까지 가서 자궁암 치료를 했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니 집에 가서 임종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당시 일본에서 병원을 하던 주 욥 박사에게로 가서 완치가 된 후 주 욥 박사의 부인이 되었노라고 했다. 그래서 주 욥 박사가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인 아내를 가리켜 "완전히 소각장으로 가게 된 폐품을 주워서 고쳐 가지고 데리고 산다"는 우스개 말을 곧잘 한다고 했다.

주 욥 박사의 아내가 되어 16년 동안 살면서 대체의학의 실체를 어깨너머로 배우게 되어 내게도 권유를 해주게 되었다는 최영주씨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하느님께 감사했다. 최영주씨께는 물론이고, 가수 주현미씨의 작은아버지라는 주 욥 박사께도, 그리고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도 진심으로 감사했다. 어쩌면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별세하시면서, 생전에 그 분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던 내게 보답의 선물을 해주신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즐겁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우리 부부는 대체의학으로 노친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최영주씨가 권하는 것은 다했다. 마늘을 살짝 볶아서 어느 정도 찧은 다음 참기름에 버무려서 밤에 주무시기 전에 양 발바닥 가운데 부위에 붙여드리고 투명 테이프와 랩으로 싸 드리는 일을 매일 계속했다. 우리 부부도 그렇게 했다. 열흘 가까이 하니 발바닥에 크게 물집이 생기더니 종래에는 껍질이 벗겨졌다. 한 이틀 통증이 있었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혈액 속의 독소들이 빠져나온 것이라고 했다. 껍질이 벗겨진 다음 현재 또다시 시행을 하고 있다.

야산에 가서 깨끗하고 진한 황토를 퍼다가 대야에 가득 담아 어머니 방안에 놓아드리는 일도 했다. 환기를 돕고, TV 등에서 방출되는 전자파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자연 마늘 소비가 가장 많아진 것은 물론이다. 양파, 감자, 당근, 부추, 고구마, 호두 등등의 소비도 많아졌지만, 단연 마늘이 으뜸으로 대접을 받는다. 흑마늘을 구하기 위해 서해대교의 행담도를 갖다 오는 수고도 했다. 서산에도 흑마늘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모른 나머지 행담도에까지 가서 흑마늘즙을 사왔는데, 지난 10일 우리 집을 방문한 최영주씨로부터 집에서 흑마늘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흑마늘은 보통 마늘보다 20배의 약효를 지닌다는 말도 들었고….

안양에서 사는 맏딸과 안산에서 사는 셋째 딸이 김치를 담가주기 위해 9월 26일 또 한번 친정을 찾았다. 어머니는 낮에 보령시 오천면 갈매못성지를 갔다 와서 피곤할 텐데도 늦은밤까지 고추 다듬는 일을 함께 했다.
▲ 고추 다듬기 안양에서 사는 맏딸과 안산에서 사는 셋째 딸이 김치를 담가주기 위해 9월 26일 또 한번 친정을 찾았다. 어머니는 낮에 보령시 오천면 갈매못성지를 갔다 와서 피곤할 텐데도 늦은밤까지 고추 다듬는 일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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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일시 귀국했던 최영주씨는 태안에까지 와서 우리 집도 방문해 주었다. 어머니를 보고 많이 좋아진 상태임을 확인하고는 웅담을 선물해 주었다. 우리 부부도 함께 먹으라고 무려 세 통이나 건네주고 갔는데, 그냥 받기만 해서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다.

처음 한 통은 세 식구가 함께 복용하다가 두 번째 통은 어머니와 아내에게만 공급하고, 마지막 세 번째 통은 어머니께만 드리고 있다. 웅담의 효능을 몸으로 확인하게 되어서 다음에는 제값을 치르고 웅담을 구입할 생각이다(그러기 위해 또다시 100만원이 훌렁 넘은 오마이뉴스 고료 중 100만원의 지급을 청구해놓고 있다).

어머니의 변화되는 상태를 눈으로 확연히 느끼고 있다. 우선 수면 시간이 대폭 줄었다. 전에는 식사시간 외로는 하루 종일 주무시기만 했다. 보따리 싸는 꿈도 꾸고, 잠에서 깨어나면 "방금 누가 우리 집엘 왔는데 그 사람 어디에 있느냐"는 말도 하시곤 했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여생이 6개월 정도라는 서울성모병원 의사의 말이 실감되는 듯했다. 하지만 식이요법을 시행하면서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었다.

수면 시간이 대폭 줄어드니 집안에서나마 몸을 움직이는 일도 많아지고 이것저것 참견하시는 일도 많아졌다. 거실 청소와 앞뒤 베란다 청소, 화분 정리, 세탁물 처리 등을 하시는 노친을 보며(무리하면 좋지 않겠지만, 적당한 운동은 필요하겠기에 참견하지 않으며), 노친께서 두 군데의 암세포들을 잘 이겨나가실 것 같은 희망을 안는다.

지난 9월 23일 노친을 모시고 서울성모병원에 갔다. 그동안은 거의 한 달 간격으로 나 혼자 가서 완화의학과 염창환 교수께 어머니 상태를 말씀드리고 처방 약을 받아오곤 했는데, 어머니 몸의 좀더 확실한 상태가 궁금하여 직접 모시고 간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 모니터로 엑스레이 판독 사진을 본 염 교수는 깜짝 놀랐다. "폐부에 물이 하나도 없어요. 폐가 깨끗해지고 있어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을 줄이자고 했다.

지난 10일은 어머니의 86회 생신이었다. 전날(9일/금) 낮에 성당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그리고 할머니들과 어머니의 대녀들을 음식점으로 초대하여 점심 대접을 했다. 두 가지 암을 이겨 가시는 어머니의 사기를 올려드리려는 일이었다. 모든 분께 어머니의 병환과 관련하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어머니께 박수 선물을 안겨 드렸다.
▲ 86회 생신 지난 10일은 어머니의 86회 생신이었다. 전날(9일/금) 낮에 성당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그리고 할머니들과 어머니의 대녀들을 음식점으로 초대하여 점심 대접을 했다. 두 가지 암을 이겨 가시는 어머니의 사기를 올려드리려는 일이었다. 모든 분께 어머니의 병환과 관련하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어머니께 박수 선물을 안겨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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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노친께 비로소 확실한 병명을 알려 드렸다. 노친께서 혹여 충격을 받을까 염려하여 암이라는 것을 감추어왔는데, 자신감을 갖고 병명을 알려 드리면서 "어머니는 지금 암을 잘 이겨나가고 있어요. 아주 멋지게, 꼭 암을 이기실 거예요!"라는 말씀을 드렸다.

우리 부부는 어머니께 계속 식이 치료를 해드리고 있다. 올해 86세 고령이시니 얼마를 더 사실지는 모르지만, 암으로 돌아가시게 하지는 않으려는 일념을 곧추세우고 있다. 내게 뜨거운 호의를 갖고 대체의학 활용법을 적극 알려주시는 분도 있는데, 그것을 외면한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최대한 대체의학을 활용한 다음에는, 노친께서 돌아가시게 되더라도 여한은 없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수고를 회피했다가 나중에 후회한다면 더욱 어리석고 또 한 가지 죄를 짓는 일일 터였다.

지금 우리 부부는 희망을 갖고 있다. 노친을 암으로 돌아가시게 하지는 않겠다는 일념이 성공을 거두게 되기를 기도한다. 노친께 매일 시간 맞춰 약을 챙겨 드리고, 사이사이 웅담과 홍삼액과 흑마늘즙을 드리고, 배변이 잘 되도록 변비약 외로 불가리스며 야쿠르트 등을 챙겨 드리며, 그것들을 자실 때마다 어김없이 성호를 긋는 노친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의 은총이 노친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곤 한다. 어느 모로는 어머니께나 우리 부부에게나 더욱 감사한 시간들이다.


태그:#대체의학, #식이요법, #암세포, #완화의학과, #김대중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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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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