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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주식시장 안정을 위해 "간접투자 상품(펀드)이라도 사겠다"고 공언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런 탓에 'MB 펀드가 사실상 폐기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환율과 주가 폭락으로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아보겠다던 이 대통령의 '오버'가 오히려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가 폭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상장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인 연기금의 손실액이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은 폭락하는 주식시장에 쏟아부으면서, 정작 이 대통령은 펀드 구입 계획을 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펀드 가입 얘기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감한 상황"

 

<세계일보>는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공언'에 따라 청와대가 적극 검토해온 대통령 개인의 펀드 가입이 '불발'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대통령이 펀드에 가입할 경우 특정 상품 선전으로 이용돼 다른 금융상품에 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아 보류됐다"면서 "경제비서관실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반대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청와대 내에서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며 "또 다른 관계자는 '펀드 가입 얘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감한 상황'이라면서 사견임을 전제로 대통령이 특정 펀드에 가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금융위기가 불거지던 지난 9월 1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직자인) 나는 직접투자가 불가능하지만 간접투자 상품(펀드)이라도 사겠다"고 공언했다.

 

이와 관련 곽경수 청와대 춘추관장은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통령이) 펀드에 가입한다고 했는데, 어디에 가입할지 아직 결정이 안 됐다"며 "연말 전에 할 것 같은데, 정확한 것은 아니다"고 말해, <세계일보>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곽경수 춘추관장은 이어 "대통령이 해외 출장이니, 금융상황 점검이니, 상황이 바빠서, 정작 본인 일은 챙길 겨를이 없었다"며 "본인이 직접 (펀드에 가입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안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공언이 있은 지 두 달여가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 등으로 펀드 가입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재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에 펀드에 가입할 생각"이라고 밝힌 지 4일 만에 적립식 펀드에 가입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시 전 위원장은 서울의 한 시중은행 지점을 방문,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 매월 50만원씩 납입하는 절세형 적립식 국내 주식형펀드 2개에 가입했다.

 

"해당 금융기관에서 (이 대통령이 가입한) 펀드를 상품 선전에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설득력이 약하다. 청와대가 조용히 몇몇 상품을 선정해 가입하는 대신 상품명을 공개하지 않으면 된다. 청와대가 부작용을 우려해 상품명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은행이 이를 상품 선전에 이용할 리는 만무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중 8개 펀드에 분산 투자했으나 상품명이 밖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앞서 <한겨레>는 지난달 31일 "청와대가 '펀드를 사겠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공언'과 관련해 구체적인 실행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신문은 "청와대는 최근 정부가 장기 펀드에 세금 감면 혜택을 주겠다고 밝힌 것에 맞춰 이 대통령도 장기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며 "또한 국내 공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전했다.

 

당시 청와대로서는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계약 체결로 잠시나마 환율과 증시 상황이 호전됐기 때문에 '대통령 펀드 가입' 카드를 구사할 적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10월 30일) 이 대통령이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오찬에서 "주가가 올랐다고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며 "분명한 것은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MB 펀드' 가입했다면 투자금 3분의1 날렸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이 대통령의 개인 펀드 가입을 추진할 것처럼 보였던 청와대는 다시 오리무중이 됐다. 이후 환율과 주식시장이 다시 요동쳤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청와대로서는 이 대통령의 펀드 가입 이후 주가나 펀드 수익률이 떨어질 가능성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대통령이 언제 펀드에 가입하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이동관 대변인이 "적절한 타이밍에 할게요"라는 답변만 되풀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주식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자신감의 일환으로 펀드 가입 의사를 공언하기는 했지만, 청와대로서는 금융위기의 파장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 펀드'에 대한 결론을 선뜻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시장의 혼돈이 심화되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이 대통령의 펀드 가입 계획 자체가 유야무야되는 분위기다.

 

주식시장은 실물 요인만큼이나 심리적 영향이 크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대통령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공약도 거의 1년이 다 돼가도록 지켜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펀드에 가입하겠다는 약속도 자꾸 미뤄지면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을 어떻게 믿겠냐"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이 펀드 가입을 강행한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 대통령이 직접 가입한 펀드마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거나 성적이 신통치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은 '이명박 펀드'의 실패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펀드 가입 약속이 있은 지, 한달 만에 주가가 34.1%나 하락한 것. 만약 이 대통령의 말을 믿고 주식을 산 사람들이 있다면 한 달여 만에 투자자금의 3분의1을 날려버린 셈이 된다.

 

앞으로도 주가가 반등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 비상이 걸렸는데, 투자심리 안정을 이유로 "주식을 사야 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낙관론이 오히려 투자자들을 벼랑끝으로 내몰 수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대선을 앞두고도 "주가가 저평가된 것은 정권 때문"이라며 "정권이 교체되면 내년에 (주가지수) 3000을 돌파하고 임기 안에 5000까지도 갈 수 있다"고 말해, 지금까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연기금 2조6000억원 손실... 조중동 "경제 위기 책임자는 이 대통령"

 

이 대통령이 펀드 가입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사이, 가입자들의 노후 생계수단으로 안정성이 최우선시 되어야 할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폭락세가 이어진 주식시장에 집중적으로 유입됐다.

 

23일 증권전산 자료에 따르면, 연기금은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코스피지수가 1500선 아래로 떨어진 지난 9월 이후 지난 21일까지 올해 전체 순매수액의 64%인 5조7317억원어치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같은 기간 증권사들이 사들인 2조922억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특히 11월 20일 현재 코스피지수(1003)로 올해 연기금의 신규투자에 따른 평가손실률을 계산하면 29%, 평가손실액은 2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연기금이 주가를 떠받치려는 정부의 의도에 따라 거액의 손실까지 감수하면서 무리하게 주식 매입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주식시장에 이어 채권시장에도 연기금이 투입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조중동> 등 보수 언론까지 나서서 일제히 경제 위기의 책임자로 이명박 대통령을 정조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정부 정책은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한 채 상당부분 겉돌고 있다. 대통령이 위기 극복의 자신감만 보인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며 "자칫 잘못하면 대통령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MB노믹스의 고리타분함이 갈수록 더해진다"며 "대통령이 귀를 열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꼬집었고, <조선일보>는 "이 정권이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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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명박 대통령, #펀드 가입, #연기금,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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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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