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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여고에서 교사가 학생을 심하게 때리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져 과잉체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1분 남짓한 동영상은, 10여 명의 여학생들이 복도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앉았다 일어나는 체벌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체벌 도중 한 여학생이 앉지 않고 체벌을 거부하자 교사가 몽둥이로 엉덩이와 머리를 때리고, 이에 학생이 반항하자 종국에는 손으로 뺨·얼굴 등을 구타하기에 이른다. 결국 주변의 교사와 학생들이 만류하면서 동영상은 끝나는데, 보는 내내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해당 여학생이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한 글을 올렸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더 기가 차다.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온 여학생이 전날 보충수업에 빠진 학생들과 같이 벌을 받다가, 원래 있던 발목 통증 때문에 도저히 체벌을 견디지 못하고 사정을 설명했는데 교사가 몽둥이로 때렸다는 거다. 순간 '아씨…'라는 말을 입 밖으로 냈더니 손으로 사정없이 때렸다는데, 이 교사,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서슴없이 행사하던 사람이란다.

체벌 동영상보다 좀 더 놀라게 했던 건, '저런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하면서 스스로 학창 시절 무용담(?)을 늘어놓는 몇몇 댓글이었다.(사진은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의 체벌 모습.)
 체벌 동영상보다 좀 더 놀라게 했던 건, '저런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하면서 스스로 학창 시절 무용담(?)을 늘어놓는 몇몇 댓글이었다.(사진은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의 체벌 모습.)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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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을 짓 했으면 맞아야지'... 체벌에 무감각한 사회

어느 한 쪽의 말만 듣고 모든 상황을 단정하는 건 섣부른 짓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동영상 속 교사는 여학생의 머리와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손찌검까지 했다는 거다. 여학생의 뺨을 후려치는 그 순간, 이미 교사의 이성은 마비된 것처럼 보였다.

대체 그 여학생이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오고, 발목 통증 때문에 체벌을 거부한 게 그렇게까지 맞을 짓인가? 아니 그 이전에, 때리지 않고 다른 벌을 주는 건 생각할 여지가 없었던 걸까?

나는 이 동영상을 평소에 자주 들르는 한 입시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봤다. 역시나 게시물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댓글도 200여 개가 달렸다.

그런데 동영상보다 좀 더 나를 놀라게 했던 건 '저런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하면서 스스로 학창 시절 무용담(?)을 늘어놓는 몇몇 댓글이었다. 걔중엔 '여고라서 이 정도로 끝나지 남고 같았으면…'하는 식의 댓글도, '정확한 상황을 모르니 판단을 보류하겠다'는 댓글도 있었다. 내용은 다 제각각이었지만 담긴 뜻은 모두 같았다. '학생이 잘못했으면 선생님한테 맞을 수도 있다'는 의미,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지'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말이 종종 통용되곤 한다. 여기서 '맞을 짓'이란,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선생님 말씀을 안 듣거나 군대에서 상관의 지시에 불응하는 경우 등을 말한다.

즉, 특정한 공간에서 어떤 특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겐 다른 사람을 때릴 권한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에서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 그런데 그걸 누가 그들에게 주었을까?

체벌은 하나의 사회적 의식 문제다. 우리 사회는 교사의 체벌을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징벌의 의미가 담긴 교육적 목적에 의해 행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체벌에 관대하다. 그 연원에 대해 사람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유교사상의 지배를 받았던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곤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교사가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왔을 정도로 강력하고 폭압적인 교권을 가졌던 일제강점기, 그리고 학교의 군대화를 통해 '교사=상관', '학생=병사'라는 상명하복의 수직적 위계질서 의식을 고착화한 군사독재시절을 거쳐 근대화를 이룩하면서 교사의 권위에 굴종하고 폭력에 무감각해진 탓일 것이다.

체벌은 또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나라에서는 '학생이 잘못했으면 교사는 매를 들어서라도 학생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학생의 잘못이 무엇이건 간에 교사는 체벌을 통해 학생을 훈육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핀란드·프랑스·스웨덴 등 서구 국가들은 이미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 후자의 원칙을 제도화해 지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초중등교육법에 체벌 금지가 명시되어 있지만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라는 예외 조항이 있어, 사실상 체벌을 허용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시간 걸려도 대화와 학칙을 적용한 훈육 필요

여기 한 학생이 잘못을 저질렀다. 이때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는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깨닫게 한 다음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앞으로 그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을 막는 것이다. 여기서 교사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진다. 체벌을 통해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대화와 학칙을 적용해 훈육할 것인가.

당장 교사 처지에선 체벌이 좋다. 일단 쉽고 간편하다. 입 아프게 여러 말 할 필요도 없다. 매를 들어 때리거나 몸을 고달프게 하는 벌을 주면 그 뿐이다.

당하는 학생도 자신의 잘못을 빨리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신 안 하겠다'는 말도 술술 나온다. 잘못을 인지 및 반성케 하고, 재발을 억제하는 두 가지 목적을 체벌 하나로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파장 효과도 만점이다. 한 명이 체벌을 당하면 그걸 본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 분위기가 그대로 옮겨간다. 그만큼 시간이 절약된다. 수업하는 것 이외에도 할 일이 태산인 교사에게 체벌만큼 편리한(?) 훈육 방법도 드물다.

그런데 교육적 목적에서 보면 체벌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매를 맞는 학생이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 학생은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내뱉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매를 맞는 고통은 크지만 또한 빨리 사라진다. 당장의 고통 때문에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아도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학생, 게다가 그 찰나의 고통의 순간마저 빠르게 지나가고 나면 무엇이 남고, 무엇이 달라질까?

대화와 학칙을 적용한 훈육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잘못한 학생이 10명이라면 그 이유와 사연은 제각각 다를 터, 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과 마주보고 대화를 통해 어째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게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시키고 수긍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재발 방지를 위해, 저지른 잘못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절차에 따라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교내 봉사활동이든 무엇이든 간에 거기에 교사가 쏟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은 매를 들어 때리는 간단명료함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만큼 교육적 효과는 체벌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학생은 교사와 대화를 통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그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학칙을 통한 징계를 받는 순간에도 사고는 이어진다. 교내 청소, 학교비품 정리, 봉사활동 등의 육체적 활동은 잘못에 대한 징계이면서 동시에 충분한 반성의 시간이 된다.

동영상 속에서 교사가 휘두른 폭력에 당한 여학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온 잘못을 충분히 반성하고 '다신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을까? 그 대신, 육체적 고통과 함께 드는 수치심, 굴욕감에 교사에 대한 반발과 증오심만 싹트지 않았을까?

동영상 말미에 여학생이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온 게 그렇게 잘못된 거냐'며 내지른 절규는 그녀가 교사의 폭력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때리는 교사와 맞는 학생, 그 사이에 교육은 없다. '때려서라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은 폭력에 대한 맹신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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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체벌,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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