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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함성을 외치고 있다.
 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함성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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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여의도역을 더 많이 이용할 것 같다. 남부교육청 관내 33개 중학교 중 22개가 와 있는데 15번까지의 선생님들은 5번 출입구를 맡고, 여기는 백아무개·백아무개 장학사가 담당한다. 15번부터 끝번까지는 6번 출입구를 맡고, 여기는 심아무개·아무개 장학사가 담당한다. OO고부터 OO고까지는 3번 출입구를 맡고, 양아무개 장학사가 담당자다. 남부교육청 관내 나머지 고교는 4번 출입구, 정아무개·안아무개 장학사가 맡는다."

"상황이 발생하면 OO중학교 행정실로 바로 연락하라. 또한 근처에는 담당 장학사가 있을 것이니 상황보고가 즉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가 열리기 몇 시간 전인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윤중중학교 강당에서 하달된 '교사 지도지침' 내용 중 일부다.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활동 명령'을 내리고 있는 쪽은 다름 아닌 서울시 교육청. 강서·남부·동작교육청 관내 중·고등학교 교사 수백명을 긴급 소집한 자리였다. 이들 학교는 '촛불 문화제'가 열린 서울 여의도·청계광장과 인접한 위치에 있는 학교다.

<오마이뉴스>가 익명 제보자를 통해 입수한 녹취자료에 따르면 교육청 관계자와 장학사들이 일선 학교의 교사들에게 구체적인 지시 사항까지 언급돼 있는 '학생지도 지침'을 하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30분 분량의 이 녹취자료에는 서울시교육청의 '교사 동원 지시' 내용뿐만 아니라 이에 반발하는 일부 일선 교사들의 육성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한 교사는 "이처럼 일률적으로 군대의 분대장·소대장 마냥 지휘하는 경찰 협조 작전에 우리는 결코 동원될 수 없다"며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상황 바로바로 보고하고, 주위 사람이 의식 못 하게 행동하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0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0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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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에 따르면, '지침 하달'에 나선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학부모의 걱정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상급생들이 후배들한테 '집회 나가라'고 독려하기도 하고, 출처가 불분명한 문자메시지도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지 못하게끔 생활지도를 하고 있다"며 "나온 학생들을 빨리 귀가시키도록 하고 어디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바로바로 보고하고, 몇 명이나 귀가하는지 상황체크를 꼼꼼히 하자"고 말했다.

다른 교육청 담당자는 "(학생들에게) '집회 나가라, 나가지 말라'하는 활동이 아니라 집회에 가게 되면 학생들이 다칠 요소가 많기 때문에 안전문제에 중점을 둬서 지도하면 될 것"이라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적으로 판단하여 학생들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게 언론 등에 의해 보도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철역에 배치된 분들은 출구별로 나눠서 지도하면 되겠고, 일부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서 지도를 하면 되겠다"며 "주위 사람이 (교사가 나왔다는) 의식을 할 수 없도록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아무개 장학사도 "학생들한테 과격하게 말하는 것과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다르다"면서 "'너희들 불법집회 하는데 여기 왜 왔느냐,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는 식으로 다그치지 말고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럽게 해서 학생들에게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며 교육청 담당자의 말을 거들었다.

최 장학사는 "학생들은 특히 자신을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나와 있으면 일단 움찔하게 되고, '아, 내가 여기에 가는 게 옳은 것인가'를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들을 이 곳에 나오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원이 전경인가? 동원 명령에 절대 협조할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예정된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쇠고기 수입개방 집회와 관련된 설문지를 친구의 등에 올려 놓고 작성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예정된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쇠고기 수입개방 집회와 관련된 설문지를 친구의 등에 올려 놓고 작성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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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교육청의 일방적인 지시를 듣다 못한 OO고의 한 교사는 "교육청 측에 당장 오늘의 지시를 중단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 교사들은 박수소리로 그의 주장에 동조했다.

그는 "지금 교육청은 역사적인 사건을 저지르고 있다"며 "이처럼 노골적으로 교원의 독립성을 유린하고 정권의 필요시에 마음대로 동원하는 행태는 교원을 우습게 여기는 풍토를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학생들 안전 차원에서 '지도 협조문' 정도를 내리는 것은 받아들일 용의가 있으나 천편일률적으로 군대 소대장 지휘하듯 동원 명령을 내리는 것은 절대 협조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또 "학생과 교사의 교육적 관계를 위해 호소하는데 이것은 국민적인 불신과 학생들의 반발을 야기할 일"이라며 "전철 입구에 선생님이 서있는 거 보면 학생과 학부모가 어떻게 생각하겠나, 교원이 전경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주위에 있던 교사들도 "교사들이 정권의 꼭두각시인가", "학생들한테 광우병 소를 먹으라는 건가"라며 교육청의 지도 지침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교육청 관계자는 "애당초 말씀드렸듯이 많은 수의 학생들이 집회에 모이다 보니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이에 대해 교사들이 교육적으로 봐야 할 의무가 있다"며 "주위에 (전경과 같은) 그런 느낌을 주지 말고, 교원으로서 보호하고 지도하는 이미지가 되게  해달라"고 답하며 다급히 강당을 떠났다. 

한편 회의가 진행된 윤중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이광덕 교감은 "우리는 강당만 빌려주고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아 자세한 사항은 모른다"며 "교원을 동원한다는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으나 교육부에서 '학생 안전'에 대한 개념을 들어 지도지침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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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 문화제, #교육청 지도 지침, #광우병 쇠고기, #10대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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