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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나서면 분위기 더 안 좋아져."

 

9일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한 관계자의 말이다. 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초에 불을 밝히고 한참 분위기가 '업' 되던 순간이었다. 이 관계자는 이날 행사 내내 중앙무대 앞이 아닌 뒤에서 할 일 없이 서성였다. 주어진 임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가 각종 집회나 시위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이 관계자는 "'운동권'이 나서면 이상하게 분위기가 다운돼서 이번에는 최대한 나서지 않기로 했다"며 웃었다.

 

이처럼 최근 열리고 있는 촛불문화제에서는 시민사회 및 운동단체의 '후퇴'가 뚜렷하다. 운동권이라 표현되는 인사들의 연설, 각종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의 참여를 알리는 깃발,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는 투쟁 구호도 사라졌다.   

 

"운동권이 나서면 분위기가 다운돼서..."

 

대신 최근 열리고 있는 촛불문화제에서 최고 인기를 끄는 건 바로 중·고교생들과 시민들이 자유롭게 무대에 올라 발언하는 이른바 '자유발언'이다. 자유발언에 나서는 사람들은 시민사회단체의 유명 인사들처럼 정연한 논리의 연설을 못하는데도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8박자 구호'와 같은 투쟁 구호 대신, "미친소 너나 먹어!" "미친소를 청와대로!" 등의 자유로운 외침을 선호한다. 또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민중가요 대신 가수 윤도현이 락으로 리메이크한 <아리랑> 등을 주로 부른다.

 

그렇다고 시민사회 및 운동단체 관계자들이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지 않는 건 아니다. 9일 청계천에서 열린 대규모 문화제는 150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인터넷 모임으로 등으로 구성된 '광우병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 주체로 열린 것이다. 즉, 깃발을 들고 전면에 나서지 않을 뿐 개별적으로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 문화제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린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참가자들이 함성을 외치고 있다.

그러면 집회·시위를 조직하고 이끄는 데 '선수급'인 이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자발적으로 분노하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에게 거부감과 부담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은 '안티 이명박'이라는 공통된 정서는 갖고 있지만 지지 정당과 정치적 지향성은 각각 다르다"며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전면에 나서면 오히려 반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 팀장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네티즌들이 먼저 이슈를 제기했고, 촛불문화제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개최했기 때문에 굳이 시민사회단체가 나설 필요가 없다"며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찰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언론 창구, 집회 무대나 조명 설치 등에서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인식 '다함께' 운영위원도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바라던 일이었다"며 "운동단체가 단체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건 그런 자발성을 최대한 존중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에는 '투사' 대신 '놀라운 소녀'들이

 

또 운동권의 딱딱한 방식 자체가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원인도 있다.

 

실제로 여중고생이 대규모로 참석했던 지난 3일 청계천 촛불문화제에서 운동단체 '다함께' 소속의 한 학생이 자유발언에 나섰다가 참석자들에게 야유를 받기도 했다. 당시 그 학생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한미 FTA를 추진했던 노무현 정부와도 관련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 3일 청계천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기 직전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와 광우병국민감시단은 종로 보신각 앞에서 '광우병 잡는 날 범국민캠페인'을 벌였다. 이날 행사에는 약 5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각 청계천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여중고생이 밀집해 있었다.

 

이날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는 허탈한 표정으로 "이제 우리는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종로경찰서 정보과의 한 관계자도 "'운동권'이 인터넷모임 운영자들보다 힘을 떨어진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한 여고생은 "운동권에 계신 분들은 말 잘 하고 논리적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말을 좀 쉽게 하고 너무 비장한 표정과 몸짓으로 활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결의 결사한 '투사'는 없어도, "사천만 민중의 영원한 애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지 않아도, 청계천은 지금 충분히 역동적이고 급진적이며, 즐거움으로 넘친다. 교복을입은 채 무대에 올라 "광우병 쇠고기 너나 먹어!"라고 외칠 줄 아는 '놀라운 소녀들'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이 없는 움직임... 오래 버틸 수 있을까

 

 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조직되지 않은 역동적 시민들의 움직임은 단기적이고 가변적이기 쉽다. 정부 측의 '역공'을 효율적이고 장기적으로 막아내는 데 역부족이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인터넷 모임들이 시민들의 역동성과 자발성의 '조직화'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백성균 '미친소닷넷' 운영자는 "인터넷 모임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시민사회단체 쪽과 함께 논의해서 운동을 이끌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도 "정부쪽의 공세에 맞서 운동 경험이 없는 시민들이 전략과 전술을 짜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과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 문제로 시민들은 스스로 분노를 표출하고 자발적 거부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시민들의 자발성은 시민사회단체와 운동권 인사들이 바라마지 않던 모습이다.

 

시민사회단체 쪽과 인터넷 운영자들은 "시민들의 자발를 어떤 성과로 연결시킬 지 고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발짝 뒤로 물러선 시민사회단체들은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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