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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점의 육류 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쇠고기. 미국 육류의 안전 관리는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주무기관인 농무부에는 리콜을 강제할 법적 권한조차 없다.
 미국 상점의 육류 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쇠고기. 미국 육류의 안전 관리는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주무기관인 농무부에는 리콜을 강제할 법적 권한조차 없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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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를 인정했다. 정부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하면서 미국이 '동물사료 규제 강화 조치'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정부가 '완화'를 '강화'로 오해한 채 서명을 했다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정부가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하고 나선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어교육 강화가 필요한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 고위 관리들이었다. 국민들은 정부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영문 자료들을 찾아내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 정도 능력은 '몰입교육'이 아니라 기존의 영어교육만 제대로 받아도 갖출 수 있다.

정부는 자신들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본질'에는 별 차이가 없기에, 예정대로 쇠고기 전면 개방을 강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는 하나다. 협상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든,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미국 쇠고기는 정말 안전할까? 사람들마다,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한국인은 물론, 미국인들조차 서로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한 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장 객관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 "미국 소비자들이 육류업계 신뢰성 문제 삼고 있다"

미국 정부는 '안전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미국 정부가 주요 수출국에 '우리 쇠고기는 매우 위험하다'는 답변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어떨까? 비록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정부 당국의 비교적 솔직한 속내를 보여줄 것이다.

2008년 1월 8일, 의회조사국(CR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의 국내법 분과와 자원, 과학, 산업 분과의 전문가들은 미국 내에서 증가하고 있는 육류 리콜에 대한 보고서를 미 의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 쇠고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보고서 내용을 정리해서 전하면 '괴담 유포'가 될 수 있으므로, 문서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도록 하자.

"최근 몇 달간 미 농무부(USDA)의 식품안전검사국(FSIS)은 미국 내에서 다수 발생했던 육류 및 가금류의 리콜 실태를 조사했다. 리콜 대상을 보면 병원성대장균(E. coli 0157:H7)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쇠고기, 살모넬라균 감염이 의심되는 쇠고기와 가금류, 그리고 보툴리스 독소가 든 육류 통조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리콜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은 국내 육류업계의 신뢰성을 문제 삼고 있으며, 미 농무부의 관리 능력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보고서가 말하듯, 미국 의회조사국 전문가들은 자국에서 유통되는 육류를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국내 육류업계의 신뢰성을 문제 삼고 있으며, 미 농무부의 관리 능력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9월, 병원성 대장균에 감염된 분쇄육을 먹은 미국인이 집단 식중독 증세를 보였다. 그러나 육류 제품의 리콜을 '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기관인 농무부는 3주 가까이를 질질 끌다가 뒤늦게야 결론을 내렸다. 이미 26명의 환자가 발생한 뒤였다. 육류의 유통 기간을 고려할 때, 문제가 된 고기의 상당 부분은 가정과 식당, 그리고 학교 급식소의 요리재료로 소비된 지 오래였다.

2008년 1월 의회에 보고된 육류 리콜 관련 보고서. "미국 소비자들이 육류업계의 신뢰성을 문제 삼고 있으며, 미 농무부의 관리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2008년 1월 의회에 보고된 육류 리콜 관련 보고서. "미국 소비자들이 육류업계의 신뢰성을 문제 삼고 있으며, 미 농무부의 관리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 US Con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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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동안 20톤 트럭 7500대분 리콜... 계속 증가 추세

사실 미국 농무부는 리콜을 강제할 법적 권한도 없다. 위의 의회 보고서도 말하고 있듯, 업계에서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위원회를 연 후 자발적인 리콜을 '권유'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인들은 자국의 쇠고기를 안심하고 먹고 있는가? 미 의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미 농무부나 육류업계가 대장균이나 바이러스는 허술하게 관리하지만, 광우병만큼은 사력을 다해 집중 관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에 바로 드러나는 위생 문제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서, 비가시적이고 누적적 효과를 발휘하는 광우병에 잘 대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육류업계와 당국의 부실한 관리를 말해주듯, 지난 십여 년 동안 리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발생한 육류 리콜 횟수는 총 773건이었다. 이 때 수거된 육류는 총 3억 파운드로, 20톤 트럭으로 실으면 7500대에 달하는 분량이다. 올해에만도 10여 건의 리콜이 있었고, 이 가운데 절반은 쇠고기였다.     

육류 위생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 당국은 뒷짐을 진 듯 행동했다. 소비자들의 유일한 대책이라곤 집단 소송이라는 '미국적' 방식뿐이었다. 전문가들은 미 농무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미 농무부는 문제가 되는 육류의 리콜을 '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은 국민들의 건강 못지않게 농축산물의 유통과 소비를 권장해야 하는 임무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외 소비자를 대상으로 수출되는 쇠고기에 대해서 농무부가 져야 할 보건 의무는 없기 때문에, 관심은 오직 '마케팅'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1994년 1월부터 2007년 11월까지의 육류 리콜 상황을 표시한 그래프. 육류 리콜이 증가 추세임을 보여준다.
 1994년 1월부터 2007년 11월까지의 육류 리콜 상황을 표시한 그래프. 육류 리콜이 증가 추세임을 보여준다.
ⓒ US Con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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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만도 10여 건의 육류 리콜이 있었다. 그중 절반이 쇠고기였다.
 올해 들어서만도 10여 건의 육류 리콜이 있었다. 그중 절반이 쇠고기였다.
ⓒ US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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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월 미만이면 머리와 척추도 위험물질 아니다? 어이없는 한국 정부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동물사료 규제 '완화'를 '강화'로 이해한 상태에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결정했다. 문제점이 드러난 후에도 이상길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단장은 "30개월 미만 소의 뇌와 척수는 특정위험물질(SRM)이 아니기 때문에" 식용소의 사료로 써도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순간의 위기만 넘기려는 이런 식의 발언이 현재의 혼란을 낳았다는 사실을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특정위험물질'을 정의하는가? 지역에 따라 특정위험물질의 기준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국제수역사무국(OIE)은 유럽연합의 과학조정위원회(SSC) 기준에 따라 광우병 위험 물질을 구분하고 있다.

특정위험물질로 분류되는 대상은 정부가 30개월 이상의 소에서 제거하기로 한 부분 이외에 비장(spleen)·편도(tonsil), 그리고 십이지장(duodenum)에서 직장(rectum)에 달하는 내장 전체다. 비록 연령에 따라 광우병 위험 물질의 처리 기준이 달라지지만, 30개월 미만이라고 해서 뇌와 척추가 이 목록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모든 소의 연령과 관계없이 편도, 그리고 십이지장에서 직장에 이르는 내장 전체, 그리고 장간막(rectum)은 광우병 오염 물질로서 폐기되어야 한다. 12개월부터 30개월 미만까지는 뇌·눈·척수 모두 광우병 위험 물질로 분류된다.

결국 한국은 30개월 이상이든 미만이든 광우병 위험 물질을 수입하기로 서명한 것이며, 광우병 위험 물질 사료를 먹은 소를 수입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30개월 미만 소의 뇌와 척수는 특정위험물질이 아니다"는 기준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가?

유럽연합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구분. 유럽 과학조정위원회(SSC)의 특정위험물질 기준은 국제수역사무소(OIE)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30개월 이하의 소라도 뇌, 척수, 눈 등은 모두 광우병 위험 물질로 폐기 대상이다.
 유럽연합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구분. 유럽 과학조정위원회(SSC)의 특정위험물질 기준은 국제수역사무소(OIE)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30개월 이하의 소라도 뇌, 척수, 눈 등은 모두 광우병 위험 물질로 폐기 대상이다.
ⓒ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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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육회수공정-분쇄육도 재협상 필요

미국 쇠고기 리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흔히 햄버거 패티, 타코, 피자, 소시지, 가공햄 등의 재료로 사용되는 분쇄육(다진 고기)과 육회수공정(AMR)육이다. 이 고기들은 여러 마리 소의 다양한 부위를 섞어서 갈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세균, 바이러스, 독성에 오염될 위험이 높고, 문제가 된 이후에도 이력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

더 심각한 것은, 가공 과정의 문제로 인해 육회수공정이 광우병의 주요 통로로 지적되어 왔다는 점이다. 학계는 물론, 육류 가공 업계조차 육회수공정으로 생산한 제품의 1/3에서 절반 정도가 광우병 위험 물질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고기를 발라낸 여러 뼈들을 잘게 잘라 기계 속에 넣고 압축해서 고기를 짜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식품의약국이 발행한 연방관보에도 육회수공정으로 생산한 고기가 광우병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버드-터스키지의 연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음식을 통해 (광우병에) 감염되는 주된 이유는 소의 뇌와 척수를 직접 섭취하거나, 중추신경이 포함된 육회수공정육을 먹기 때문이다." (<연방관보 Federal Register> 2007. 1. 12)  

이런 위험성 때문에, 일본과 중국, 대만은 물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멕시코조차 육회수공정으로 생산된 고기와 분쇄육을 수입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위험한 고기들을 수입했는지 해명해야 한다. 분쇄육과 육회수공정육이 아니어도 한국의 수입 조건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지나치게 허술하다.

▲ 일본 : 척추를 제거한 20개월 미만의 쇠고기(2008년 4월 23일 기준)
▲ 중국(홍콩 기준) :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2007년 11월 30일 기준)
▲ 타이완 :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2008년 4월 3일 기준)

정부 일각에서는 '재협상'은 어렵더라도, 아시아의 다른 나라 수준으로 '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어떤 경우든, 중요한 것은 위험한 쇠고기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사전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발 부탁하건대, 요구 조건을 내세우기 전에 국민들과 미리 상의하라. '완화'를 '강화'로 해석하는 관리들이 밀실에서 하는 일을 국민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반대 여론에 놀란 이명박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나라가 국민들에게 위험한 고기를 먹이겠느냐'고 물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답을 듣고 싶지 않다면, 소의 연령 제한 문제와 더불어 분쇄육과 육회수공정육도 재협상 테이블에 올려 금지해야 한다. 재협상 여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복원'했다고 자랑하는 한미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계속해서 재협상을 거부한다면, 부시 대통령의 골프 카트 운전대와 국민 건강을 맞바꿨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이 수입하기로 한 육회수공정 쇠고기와 분쇄육은 바이러스와 세균에 의한 오염은 물론, 광우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7년 1월 미국 연방관보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를 인용해 '중추신경이 포함된 육회수공정 쇠고기를 섭취하는 것이 광우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이 수입하기로 한 육회수공정 쇠고기와 분쇄육은 바이러스와 세균에 의한 오염은 물론, 광우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7년 1월 미국 연방관보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를 인용해 '중추신경이 포함된 육회수공정 쇠고기를 섭취하는 것이 광우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 F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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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쇠고기,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육류 리콜, #재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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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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