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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로비스트>가 되어 돌아왔다. 방송 이전부터 총 120억 원의 제작비와 동시간대 MBC에서 방송되는 <태왕사신기>와 비교되며 화제를 몰고 왔던 드라마가 드디어 뚜껑을 연 것이다.

 

시작은 현재, 인질로 잡혀 있던 해리(송일국 분)와 마리아(장진영 분)를 돈과 교환하는 장면이었다. 키르키즈스탄에서 촬영했다는 이 장면은 정말로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있는 듯 웅장했고 색채 역시 예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빗발치는 총알을 한 발도 맞지 않고 피해서 잘 달리는 해리의 모습은 "무슨 람보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에 몰입시키기보다 조금 우스울 정도였다. 폭탄을 맞아도 잘 달리고, 총까지 쏘던 해리는 결국은 가슴에 총알을 맞는다.

 

많은 돈을 투자했을 총격신은 다소 실망감을 안겨 주었지만 이어진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잔잔한 미소와 눈물을 머금게 할 정도로 좋았다. 소영(마리아)의 아버지인 성지루의 연기도 좋았지만 아역들의 연기도 그 못지 않았다. 특히 남자 아이들과도 싸우고, 미국에 건너 와 외국 아이들과도 싸우고, 버스 운전사에게 아버지의 일자리까지 부탁하는 소영은 당차다 못해 당돌하기까지 한 마리아와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시골 마을의 노란 개나리와 파란 하늘, 푸른 바다 등 선명한 색감도 마음에 들었다. 마을에 내려온 무장공비를 잡기 위해 총격을 하는 장면은 무채색으로 표현하고, 소영과 주호(해리)의 장면은 컬러풀한 화면으로 분할하여 연출한 것도 돋보였다.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한 이후의 이야기 전개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뭐든지 넘치면 좋지 않은 법인데,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해 길어진 신들이 오히려 지루함을 주었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해리가 마리아에게 총을 겨눈 장면도 그랬고, 끝내 쏘지 못하고 동생을 찾아가 달려간 장면 역시 그랬다. 버스 운행 독점권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는 마리아의 모습도 밝은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에는 좋았지만 그 분량이 많지 않았나 싶다.

 

마리아의 언니인 에바(유선 분)와 태혁(한재석 분)이 멜로 라인을 형성하는 것 또한 극에 있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늘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히려 에바가 태혁을 위해, 조국 한국을 위해 스파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부분에 더 투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탓에 4회까지 진행된 지금도 아직 주인공들은 로비스트가 되지 않았다.

 

영상 측면에서는 간간이 나온 미국의 이국적인 풍경들이 멋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지, 뮤직비디오가 아니지 않는가. 해외 로케이션을 한 의미는 멋진 화면을 담아내기 위해서겠지만, 그 멋진 화면이란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함이 아닐까. 제작비를 그런 곳에 투자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조연배우에 투자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잠깐 지나가는 장면이긴 해도 몇몇 외국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는 <서프라이즈>의 재연배우의 그것에 비해 훨씬 부족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제 에바가 죽고 그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마리아는 한국에 왔다가 역시 한국에 온 해리와 마주칠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운명을 타고 났으니까, 또한 운명적으로 로비스트가 될 것이다.

 

운명. 운명은 그 단어만으로도 무언가 사람을 가라앉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총으로 아버지를 잃은 마리아와 총으로 여동생을 구한 해리가 로비스트가 된다는 아이러니함 역시 운명이란 말 아래 놓인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말로 속되게 말해 '때우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주인공들은 너무 자주 스치고, 너무 쉽게 우연적으로 만난다. 한두 번의 우연은 아, 정말 운명이란 저런 거구나 하겠지만 너무 잦은 우연은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역시나 드라마일 뿐이라는 한탄이 나오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우연은 계속될 테지만 그것이 운명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의 필연성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로비스트>의 '100인의 로비스트'?


드라마와는 별개로 나는 SBS의 <로비스트> 공식 홈페이지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100인의 로비스트' 때문이었다. '100인의 로비스트'란 <로비스트>를 애청하고 온라인 활동을 통하여 다양한 미션 수행을 진행하는 온라인 서포터즈를 이르는 말이란다. 말이 좋아 서포터즈지, 속칭 '알바'인 셈이다. 신청을 통해 뽑힌 이들은 개인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드라마를 홍보하는 등의 미션을 수행하는 데 활동이 우수한 회원에겐 경품까지 제공한다고 한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에 그 드라마를 홍보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흔히 '드라마 폐인'이라는 것은 시청률에 상관없이 그 드라마를 사랑하고 드라마가 끝나도 그 애정이 식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무언가를 바라서는 더 더욱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 드라마의 팬이 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좀 황당하기도 하고, 내가 본 로비스트에 대한 긍정적인 누군가의 글이 혹시 100인의 로비스트의 글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불쾌하기도 했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하얀거탑>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한 의사의 야망과 질주, 그리고 종말을 보여주면서 또한 의학계의 이면과 인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비스트> 또한 주인공들이 로비스트가 된 이후에 펼쳐질 국제 정치, 무기 암거래, 권력암투 등이 기존의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던 흥미진진함을 선사할 수 있을 거라 기대된다. 

 

'로비스트'라는 흥미 있고 매력적인 직업세계를 다루고, 한미관계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현재와 미래를 언급하고, 거대해지는 중국과 보수 우익화 하는 일본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왜 해군과 공군의 힘이 필요한지 실제로 한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인식에서 이런 이슈들을 환기 시켜주고 독도 및 우리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 비전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는 제작진의 거대한 기획의도가 부디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티뷰기자단


태그:#로비스트, #송일국, #장진영, #한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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