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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의 호연이 돋보인 MBC 드라마 <이산>
 아역의 호연이 돋보인 MBC 드라마 <이산>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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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왕과 나>에서 김처선(오만석)은 사랑하는 연인 소화(구혜선)를 위해 목숨을 걸고 거세를 단행한다. 소화는 아동기에 처선의 가슴에 꽂힌 여인이다. 요컨대, <왕과 나>는 아동기에 사랑한 연인에 대한 마음이 처선을 내시가 되게 한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또한 성종(고주원)도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두었던 여인 소화 때문에 번민한다.

드라마 <이산>에서는 이산(이서진)과 송연(한지민)의 어린 시절의 사랑과 약속이 드라마 전개의 중요 얼개다. 어린 시절의 약속은 정조의 개혁 추진에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설정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은 기억의 회복과 만남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일생을 지배하는 구도는 어느새 한국 사극에서 하나의 정형화된 틀을 갖게 되었다. 이는 재미는 있는지 모르지만, 작품으로나 사회적으로 사극을 퇴행시키는 면이 있다.

프로이트의 논지를 계승한 정신분석가들은 유아기의 경험이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정신적 외상이 이후 일생의 무의식을 장악하면서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 물론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 현대 심리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프로이트파의 지적은 드라마 PD들에게도 정확하게 적용되는 모양새다. 특히 이병훈 PD의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유아적 사극의 코드는 바이러스라도 되는 모양인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의 초반 승기는 아역 연기에 있었다. 이 때문에 장금이 역의 조정은을 일약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대장금>에서 재미를 톡톡하게 본 이후, 이 PD는 시청률을 잡기 위해 매번 아역 연기와 유아적 설정을 통해 아동극을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이것이 12세 이하 어린이들도 즐겨 보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되었다.

<서동요>에서도 어김없이 아역 연기를 통해 승부수를 던졌으며 <이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극을 아동극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시대의 감수성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시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획일적인 작품의 양산에 있다. 사극들에서도 장사가 된다 싶으니 너도 나도 유아 사극을 만들어 버리니 차별성이 없어진다. 물론 베끼는 것이야 <이산>도 마찬가지인 듯 초반부 내시의 등장이 <왕과 나>와 닮았다. 이렇게 서로 상호 복제를 하니 시청률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무엇보다 비슷한 시청률이 나오는 상황은 아동의 유아 심리를 극대화하면서 현실도피를 조장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대장금>에서 성인이 된 장금이의 행동은 전형적인 아동의 행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더 이상 성인의 사고와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어린 시절의 기억만이 그녀의 머리를 지배한다.

또한 장금이의 한풀이는 어머니에 대한 어리광이다. 당시 이영애의 연기에 대한 비판이 있었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행동과 말을 하는 장금이 역을 너무 성숙하고 어른다운 이영애가 담당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전체 극을 지배하는 어린 시절의 첫사랑

특히 이병훈 PD의 작품에서는 아동기 사랑이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가 하면 온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만든다. 우선 <서동요>에서도 유아 시절 첫사랑 강박증이 등장하는데, 선화공주는 아동 시절에 가슴에 꽂힌 서동을 찾아 왕궁을 떠나 자신을 버리고 헌신하던 끝에 서동을 결국 왕으로 만든다.

<이산>에서는 이산(이서진)과 송연(한지민)의 애틋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약속이 그들의 개인 일생뿐만 아니라 조선을 뒤흔들게 만든다. <왕과 나>도 결국에는 어린 시절의 유아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과연 그 어린 시절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사극의 설정들을 통해 한국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첫사랑의 집착 심리는 갈수록 더 어린 아동기로 내려가고 있다. 임상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의 첫사랑에 얽매이는 것은 타당한 사랑의 행태가 아니라 집착증이나 퇴행적 도피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몇 년 전 키덜트(kid와 adult의 합성어로 유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신조어)에 대한 논의가 한창일 때, <대장금>이 꼽힌 적이 있다. 대중문화에서 아동 같은 성인 캐릭터의 범람을 더 이상 피터팬 신드롬과 같은 퇴행적 현상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성인과 아동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는 탈근대 사회의 징후로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에 전적으로 얽매이는 인물군의 범람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인위적으로 아동기로 도피하게 만드는 심리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아동기의 경험에 집착하는 행태를 낭만적 혹은 매우 정의로운 일이라고까지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아동기 정신외상설이 현실적으로 타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시청률에 포로가 되어 유아 사극을 만들어 어리광을 부린다면 그 어리광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게 된다. 관습화되고 획일적인 설정은 드라마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에게는 식상함만 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이산, #왕과 나, #대장금, #서동요,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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