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말 타고 총격전은 기본이다. 전쟁기념관도 아닌데, '무기'가 난무한다. SBS 수목드라마 <로비스트(최완규·주찬옥 극본, 이현직·부성철 연출)>는 신기하다. 그리고 희한하다. 무기 파는 국제 로비스트 이야기라니? 스케일도 크다. 알려진 제작비만 120억 원이다. 거기다 송일국·장진영·한재석 주연이다. 내용은 특이하고, 배우 이름들부터 '특급 무기'인 이 드라마를 누가 쓸까?

 

<주몽> <올인>의 최완규 작가와 같이 <로비스트> 대본을 쓴다는 주찬옥 작가를 지난 4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만남은 극구 사양해서 아쉽지만 전화로만 만났다. 그런데 주찬옥 작가 이름이 낯설지 않다면? 사실 그는 1990년대 전후, <여명의 눈동자>를 쓰던 송지나 작가와 같이 이름을 날렸다. 김희애·하희라가 주연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미숙·배종옥·고현정이 주연한 <여자의 방> 극본을 그가 썼다. <궁>으로 부활한 황인뢰 PD와 환상의 콤비였다.


그가 쓴 드라마는 아름답고 알싸했다. 파르르 일어나는 미묘한 떨림까지 잡아냈다. 섬세한 여성 심리 묘사가 백미였다. 골수팬도 많았다. 그랬던 그가 돌아왔다. <로비스트> 극본 쓰는 데만 2년 넘게 매달렸다고 했다.

 

우연일까, 인연일까? 라이벌도 달고 왔다. 송지나 작가의 <태왕사신기>와 맞붙는다. 그때 그 시절, 송지나 작가와 같은 호텔에서 극본을 쓰고 밥 먹던 일을 기억하며 그가 웃었다. 그리고 "만 개짜리 퍼즐을 맞추는 기분"인 <로비스트> 이야기를 자근자근 말했다.

 

"린다 김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 <로비스트> 여주인공 모델이 린다 김이라던데, 맞나? 실제 최완규 작가는 린다 김을 여러 차례 만났다고 하더라. 린다 김을 만났나?

"나도 만났다. 같이 만났다. 맨 처음 시작이, 최완규 작가가 미국 가서 린다 김을 만나 쭉 얘기 듣고 그랬나보다. 그 스토리가 굉장히 재미있긴 한데, 우리 사회에선 부정적이랄까. 건강하게 성공한 여성 느낌은 아니니까. 어떻게 달리 갈까 주욱 고민하다 보니까 달라지고 달라졌다. 지금은 린다 김 스토리에서 많이 달라졌다. 린다 김 스토리는 아니라고 본다. 여자 로비스트라 그리 보는데, 린다 김 스토리 말고도 떼제베(고속철) 유치한 사람이나, 조안 리, 여러 로비스트, 국제적인 로비했던 사람들 책도 많이 보고, 많이 참고했다."

 

- 대충 줄거리를 보니까 미스터리 요소가 많은 거 같다? (마리아 언니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미스터리 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가도 재미없다. 긴장감 유지할 정도의 미스터리다. 무기 얘기도 들어와야 하고, 러브스토리도 들어와야 하고, 미스터리도 들어와야 하고, 고려해야 할 게 많다. 그래서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재밌다."

 

- 국제 무기 로비스트 이야기라지만, 혹시 실은 무기 로비하며 연애하는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닌가? <에어시티>도 결국 공항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더라.
"그 걱정은 덜 해도 될 거다. 무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것도 막연한 게 아니라, K9이나 자주포 같이 실제 우리나라 명품 무기가 나온다. 나도 실제 작업 전까진 몰랐다. 우리나라 무기 현황이라든가 세계 무기 흐름이라든가.


가능하면 무기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것도 다루고 싶다. 이게 필요악인 거잖나? 공격과 살상을 위한 무기인지, 그걸 억제하기 위한 무기인지. 양면이 있다. 가능하면 동북아 정세 같은 것도 들어갔음 좋겠다. 그런 걸 많이 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연애들이 너무 안 붙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과연 재밌어할까? 그게 또 걱정이다."

 

결과적으로 김태희보다 장진영이 더 어울렸겠다?

 

- 송일국·장진영 캐스팅은 누구 생각인가? 작가가 적극 추천하거나 하진 않았나?
"그렇진 않다. 제작팀에서 캐스팅했다. 캐스팅에 난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셋 다 좋은 배우다. 송일국은 굉장히 '사내답다'라는 느낌이 있는 배우라서, '남자답다'보다 사내다운 느낌이 있는 배우라서 잘 어울리고 좋다."

 

- 사내답다와 남자답다? 다른 뉘앙스로 썼는데, 둘이 어떻게 다른가?
"'사내답다'는 약간 고전적인 남자다운 느낌이다. 그래서 그 배우가 사극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 세계 자체가 남자다운 세계다. 파워·카리스마 있고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남자다운 세계 이야기다. 그래서 아마 송일국이 굉장히 잘 어울릴 거다."


- 실제 주인공은 마리아 아닌가?
"처음 린다 김 얘기로 출발한 것처럼 원래 마리아, 여주인공 이야기로 출발했다. 하지만 가면서 세 인물로 확대됐다. 세계 자체가 남자 세계니까."


- 마리아(장진영)는 어떤 인물인가?
"변화하는 인물이다. 처음에 조용한 캐릭터는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말괄량이 캐릭터였다. 그러다 아버지도 죽고 언니도 죽고 그러면서 로비스트 세계에 들어오면서, 말하자면 냉혹할 만큼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다."

 

-  마리아, 처음엔 김태희가 캐스팅 되지 않았나?
"그랬다. 처음엔 김태희씨랑 가기로 결정했는데 그러면서 스케줄들이 잘 안 맞은 거 같다. 최종적으로 빠졌다. 결과적으론 장진영씨가 그 캐릭터에 더 어울렸겠다 생각하지만, 김태희씨가 했어도 어울렸을 거다."

 

- 장진영, 잘 어울린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장진영씨가 더 어울렸겠다' 그 말, 위험한 거 아나?
"어떻게? 하하하. 김태희씨가 했으면 선이 너무 가늘었을 거다."

 

- 그런데 어떻게 이런 드라마를 쓸 생각을 했나? 주찬옥 작가가 과거 쓴 작품이랑 달라도 많이 다른데?
"미국 드라마 <24>나 <프리즌 브레이크> 그런 거 보면 굉장히 재밌더라. 기회가 되면, 이렇게 긴박감 넘치는 이야길 해보고 싶었다. 굉장히 어렵긴 하다. 여자이기도 하고 무기도 잘 모르고, 그래서 계속 공부하면서 한다."

 

"섬세한 총격신이라 이름 붙여달라. 하하하"

 

- 그래도 원래 섬세한 여성 심리 묘사가 주특기였지 않나? 그런데 시사회 때 보니까, <로비스트>는 완전 액션 활극이더라. 막 총질하고. 이거, 새로운 도전인가?
"섬세한 총격신이라 이름 붙여달라. 섬세한 전쟁 신……. 하하하하. 예전 했던 거 계속 자꾸 하는 것보다 스타일도 변화 발전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 취향도 달라지고, 본인 취향도 달라진다."

 

- <로비스트> 연출하는 이현직 PD가 "이번 드라마는 작품 소재도 중요하지만 이를 어떻게 시각적인 이미지로 창출해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더라. 시각적 이미지, 보여주는 드라마로 만들 생각인가?
"이 감독과 아침 드라마 <외출>을 같이 했다. 그리고 서로 좋아했다.(웃음) 이 감독은 되게 잘 만든다. <로비스트> 보면, 좋은 연출이라 생각할 거다. 그림도 잘 잡을 뿐만 아니라 그게 늘어지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충분히 감성 녹여서 보여주는 게, 아주 좋다. 섬세하면서도 긴장감 계속 유지하고."

 

- 그런데 제작비만 100억이 넘는다. 아무래도 시청률이다 뭐다 신경 많이 쓰이지 않나?
"키르키즈스탄엘 갔다. 돈도 많이 들거니와 촬영 때……. 어후 막 촬영하는데 고생하는 거 보니까, 정말 잘 돼야할 텐데, 그런 생각이 절로 나더라."

 

- 하필이면 대작도 그런 대작이 없는 <태왕사신기>랑 맞붙는다. <태왕사신기>는 벌써 시청률 30%를 넘기며 승승장구중이다. <태왕사신기>는 봤나?
"봤다. 앞엔 세밀하게 봤고, 최근엔 세밀하겐 못 봤지만. 어우. 거기도 고생 많이 했겠단 생각이 우선 들더라. <로비스트>도 굉장히 조각 많은 퍼즐 맞추기인데, 거긴 판타지고 사극이니. 우리보다 퍼즐 조각이 많음 많았지, 적진 않겠더라."

 

- <태왕사신기>, 재미있었나?
"(웃음) 그건 얘기하기 그렇다."


- <태왕사신기> 장점이 뭐 같은가?
"나도 그런 생각했다. 앞으로 판타지가 우리 드라마에서도 시도하기 시작하겠구나. '미드'(미국드라마)나 '일드'(일본드라마) 보면 판타지 많잖나. 그런데 단막 소재면에서 시도한 적은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스타트한 건 <태왕사신기>다. 그런 의미가 있다."

 

- 그거 말고 없나? 안 보이나?
"고생했겠단 생각은 드는데, 많이 휘둘린 느낌도 있다. 송지나 작가가 저것보단 더 세밀할 텐데라 생각하는데, 본인의 역량만큼 자유롭게 하지 못한 점들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을 거 같다. CG가 들어가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들도 걸러졌을 거 같고. 대작이라는 거 자체가 참 힘들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협업이다."


<태왕사신기> 송지나 작가와 여의도 호텔에서 있던 일

 

- 그런데  묘하다. <태왕사신기> 송지나 작가랑 <로비스트> 주찬옥 작가는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같이 드라마계를 휩쓸었지 않나. 그런데 두 분 활동이 2000년대 들어 좀 주춤했나 싶더니 근 20년 만에 둘이 엄청난 대작으로 맞붙는다. 좀 아이러니다.

"그 때 내가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여의도 MBC 바로 뒤에 있던 맨하탄 호텔 방을 빌려서 썼는데, 그 때 난 복도 맨 오른쪽 방에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을 쓰고 있었고, 송지나 작가는 복도 반대편 맨 끝 방에서 <여명의 눈동자>를 쓰고 그랬다. 그 때 맨날 같이 밥도 먹고 그랬다.(웃음)"

 

- <여명의 눈동자>와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두 분 대표작 아닌가? 오호. 인연이 묘하다. 그런데 어떡하나? 같이 맞붙게 돼서?
"윈윈 해야지 어떻게 하나?"


- 윈윈, 그게 안 되잖나. <태왕사신기>는 벌써 시청률이 30%를 넘겼다. 그런데 한 시간대에 드라마가 합쳐야 시청률이 50%를 넘기 힘들다. 하나 올라가면, 하난 내려간다.
"시청률이 차이가 많이 나서 하나가 이기고 하나가 지면 할 수 없지만, 비슷하게 나누면 윈윈 아닐까? 또 시청률 퍼센트는 별 의미가 없지 않을까? 두 드라마가 비슷하게 주목을 받고, 비슷하게 좋은 평들을 얻고, 비슷하게 우리 드라마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런 이야기도 종종 듣고 그럼 윈윈인 거다."

 

- 그런데 지금 최완규 작가랑 같이 <로비스트>를 쓰는 걸로 돼있다. 최완규 작가는 얼마만큼 도움을 주나?
"최 작가만큼 도움 준다. (웃음)"


- 최완규 작가는 초기에 기획만 한 거 아닌가?
"많이 도움 줬다."

 

- 최완규 작가가 이렇게 수정해 달라, 저렇게 수정해 달라곤 안 하나?
"초기엔 계속 했다. 전체 시놉시스하고 초반 대본, 어린 시절 대본 쓸 때. 최완규 작가가 '이렇게 하자' 말하면 더러 무시하고, '이래야 됩니다' 이러면, '아! 알았습니다, 그럼 좋겠네요.' 그러고…. 하하하. 더러 받아들이기도 한다."

 

- 가장 신경 쓰는 건 뭔가?
"가장 걱정되는 건 무기다. 방송 들어가면 시청게시판엔 안 들어가야지 하고 있다. 틀림없이 무기 전문가들이, 난 정말 무기 잘 알아. 이러는 사람들이 난리 칠 거 같다. '이건 이게 아니고 이거다. 그땐 이랬다. 알고나 써라.' 하하하."

 

- 공부 많이 했잖나?
"그래도 '난 잘 알아' 그러면, 인물들이 총잡고 있는 자세도 거슬리고, 그건 이렇게 드는 거다 이러며 무진장 말이 많을 거다."


- 힘든 건 없나?
"재능이다. 왜 이렇게 재능이 부족한가."


- 이런! 그럼 나머지 99퍼센트 작가들은 죽으란 얘긴가? (웃음)
"2·3일에 한번씩 빵빵 써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웃음) 이번엔 특히 오래 걸린다."


- 무기 로비스트라서, 온갖 전문적인 게 들어가서 그렇지 않나?
"날 대사로 나가면 안 되니까. 전문직 드라마가 잘못하면 재미없는 게 그래서다. 회사 회의 신 들어가며 무지 재미없잖아. 그런 것도 굉장히 자연스러우면서 고때 필요한 그 사람 캐릭터로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써야 하니까."

 

- 드라마 작가 생활만 근 20년이다. 고인이 된 조소혜 작가는 암에 걸린 것보다 시청률 받아볼 때 더 두려웠다고도 하더라. 드라마 쓰는 것도 피를 말리지만, 시청률 표 나오면 피가 마르지 않나?
"그건 나한테 충격적이지 않다. 조소혜는 그 친구가 계속 미혼이었고, 다른 거 별 신경 쓸 거 없으니까. 아마 그 고민 하나가 심각하게 타격을 준 거 같다. 난 그러진 않는다. 사람마다 중요한 거라든지 치명적인 게 다르겠지?"

 

- 그럼 뭐가 중요하고 치명적인가?
"하하히. 글쎄……."


- 개인 만족도??
"네. 그런 거다. 두고 두고 자랑스러워할 건지, 아니면 두고두고 부끄러워할 건지. 이런 거라든가, '그래도 열심히 했어'라든지. 그런 게 중요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태그:#로비스트, #주찬옥, #송일국, #장진영, #한재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