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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인터넷 쇼핑을 하지 않다보니 택배를 이용할 일이 잘 없다. 얼마 전 금요일에 언니와 동생들이 살고 있는 집에 놀러갔는데 동생이 언니가 사고 싶어 하는 책을 인터넷을 통해 사주고 있었다. 누군가 책을 사는 모습은 언제 봐도 참 훈훈한데 누군가에게 선물로 사주는 모습이었으니 더 훈훈했다. 동생은 내게도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하라고 선물해준다고 했지만 책보다 텔레비전이 더 좋은 나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 지난 밤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세상에, 이렇게 빨리 왔어? 토요일에도 택배가 와? 난 빠른 도착에 감탄했다. 그랬더니 동생은 요즘엔 당일 배송도 많은데 뭐 그렇게 놀라냐고 했다. 언니는 주말 동안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며 좋아했다. 그러고 보면 이제 택배 서비스는 국민 생활 서비스가 되어 우리들의 일상 깊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살다보니 근 십 년 동안 평균 일 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하고 있다. 식구가 딸린 것도 아니고 큰 가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그때마다 이삿짐센터가 아닌 택배를 이용하고는 한다. 이사할 때마다 그다지 필요 없게 된 물건들은 고향으로 부치는데도 신기하게 일 년 남짓 사이 짐은 더 늘어나 있고는 한다.

몇 해 전 안산에서의 일이다. 서울로 이사 갈 예정이었기에 다음 날 콜밴을 이용해 거울이나 컴퓨터, 이불, 베개 등을 옮기기로 하고 줄이고 줄여서 짐을 쌌다. 그래도 큰 상자 작은 상자 합쳐 모두 여섯 개나 나왔다. 3층 원룸에서 자취를 했기에 택배기사 아저씨가 방문하기로 예정한 시간에 맞춰 짐을 1층으로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미리 내려놓을까 하다가 재활용품 내놓은 걸로 알고 누가 주워갈까 싶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데 택배기사 아저씨가 약속한 시간보다 빨리 오셨다. 일찍 오실 줄 몰랐다며 미리 내려놨어야 하는데, 하며 나는 중얼대듯 사과를 했다. 아저씨는 이쪽으로 오게 돼서 온 김에 좀 일찍 방문하게 됐다며 등으로 상자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내게 위에 상자 하나를 더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무거울 텐데, 걱정했지만 아저씨는 괜찮다며 얹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아저씨는 상자 두 개를 등에 지고 계단을 내려가셨다. 나는 상자 하나를 안고 따라 내려갔다.

아저씨는 젊은 아가씨가 무슨 힘이 있냐고 놔두라고 하셨다. 난 작은 것 들고 왔다고, 힘도 세서 괜찮다고 말했다(정말로 힘이 좀 센 편이다). 아저씨는 자기가 몇 번 더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거라며, 마치 당연히 자기가 할 일인데 내가 도와주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내가 미리 내려놨더라면 아저씨가 하지 않아도 됐을 일인데, 둘이 하면 두 번만 왔다 갔다 하면 되는 일인데도.

그렇게 아저씨와 나는 다시 3층으로 올라갔고 아저씨는 두 개를 등에 지고, 나는 남은 하나를 안고 다시 내려왔다. 상자를 차에 다 실은 아저씨는 급하게 운전석에 올라타셨다. 난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 잔 드리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내가 3층에 올라가서 음료수를 가지고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에 아저씨는 너무도 바쁜 듯 보였다.

아저씨는 차 안 선반 위에 놓여 있던 캔 음료수를 내게 건넸다. 누가 준 건데 미지근하지만 나보고 먹으라며, 짐 들고 내려오느라 수고했다며.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차를 돌려 바삐 가셨다. 내 손에는 내가 드렸어야 할 음료수가 쥐어져 있었다. 어쩌면 더위에 미지근해진 별 것 아닌 음료수 하나일 뿐인데, 마음이 이상했다. 괜스레 눈물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콜밴을 이용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콜밴 아저씨는 짐을 1층에 안 내려놓고 뭐 했냐며 내게 타박을 주셨다. 난 언제 오실지 몰라서 내려놓고 기다릴 수 없었다며 내가 가져올 테니 기다리시라고 했다. 아저씨는 3층이냐며 볼멘소리를 하면서 마지못해 날 따라왔다.

원래 콜밴은 택배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며 생색을 내던 그 아저씨는 가벼운 이불과 베개 등을 한 번 날라주고는 1층에 남아 내가 나르는 무거운 컴퓨터와 상과 거울 등을 차 안에 정리하기만 했다. 당연히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이고 아저씨는 나이가 많이 드셔서 힘드신 거라고 이해했지만, 내게 음료수를 줬던 택배기사 아저씨가 떠오르며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터넷의 발달은 인터넷 쇼핑 문화를 발달 시켰고 그에 따라 택배 일도 예전보다 급격하게 증가한 것 같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택배 일은 정말로 힘들다고 한다. 한 사람이 소화하기 힘든 물량이 하루에 쏟아지고 명절 같은 경우에는 몇 날 며칠을 거의 밤새 일해도 빠듯하다고 들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온갖 '진상 고객'으로부터 불평불만과 욕설을 들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할 거다. 참 험한 세상이다 보니 택배를 받을 때도 문 사이로 손만 내미는 고객들도 있을 테고, 자신의 편의에 따라 어디로 갖다 달라 어디에 맡겨 달라 금방 도착하니 좀 기다려 달라 주문하는 고객들도 많을 터.

물론 진상 고객 못지않은 불친절하고 짜증스러운 택배기사님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택배기사를 아직 못 본 탓인지 택배기사와 고객의 마찰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대부분 고객 쪽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종종 고객은 왕이다, 서비스업 사람들은 고객에게 무조건 대접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서로 조금씩 불만스러운 사항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 여유롭게 대할 수는 없을까?

전국의 택배 기사님들이 한날한시에 모두 파업한다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까? 아마 택배가 늦었다고 내는 짜증과 비교할 수 없는 짜증스러운 일들이 몰려올 것이다. 날씨도 덥고, 되는 일도 없고, 일도 잘 풀리지 않고 불만스러운 일상이더라도 모두가 조금씩만 더 친절해졌으면 좋겠다. 택배기사님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는 아니더라도 고맙습니다, 인사 한 마디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테니 말이다. 


태그:#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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