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최종예선 시리아전에서 김승용이 드리블 하고 있다.

9월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최종예선 시리아전에서 김승용이 드리블 하고 있다. ⓒ 남궁경상


"김승용은 2005년 세계 청소년 대회 이후 기대보다 성장하지 못했다"

올림픽 대표팀의 수장이 된 박성화 감독의 김승용(22·광주)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예전부터 그를 쭉 지켜봐온 박성화 감독의 입장에서 최근의 김승용은 '기대이하'였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김승용의 프로 4년간 기록은 66경기에 출전하여 2골 8도움을 기록했다.  공격수로서는 낙제수준이다.

김승용이 성장을 멈춘 지난 4년간 청소년 대표팀의 동기이자 라이벌이었던 박주영(22·서울)과 백지훈(22·수원)은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또 세계 청소년 대회 시절 그에게 밀려 벤치 신세를 져야만 했던 이근호(22·대구)는 이제 올림픽 대표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다. 이 정도면 제 아무리 낙천적인 성격의 김승용이라도 초조해질 만도 하다.

변화가 필요했던 김승용에게 최근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선전은 지난 4년간의 슬럼프를 벗어던질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12일 오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서 열린 시리아와의 2008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차전은 김승용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 판이었다.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에 포진한 김승용의 활약

대 시리아전 김승용의 포지션은 원톱 신영록의 뒤를 받치는 처진 스트라이커. 올림픽 조별예선부터 측면 공격수로 활약했던 김승용이었지만 하태균의 결장과 이근호의 복귀로 갑자기 맡게 된 자리였다.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가 원래 자기 포지션이라고는 하나 측면 공격수로 좋은 리듬을 보여줬던 김승용에게는 하나의 도전인 셈이었다.

'김승용이 저 위치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기우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전반 9분 백지훈이 왼쪽에서 올려준 공을 향해 김승용이 높이 솟구쳤다. 김승용의 머리에 정확히 맞은 공은 시리아의 골네트를 갈랐다. 첫 골.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한 이후 마수걸이 골을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올림픽 2차 예선전부터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 기록은 덤이었다.

지난 해 11월 상무에 입대했던 김승용은 어느 덧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다. 갓 단 일병 계급장이 아니다. 꽉찬 '일병 5호봉'이다. 군생활의 '감'이 오는 시기라는 일병이여서일까. 몇 년 간 봉인되어 있던 축구에 대한 ‘감’이 돌아 왔는지 김승용의 움직임은 첫 골 이후에도 단연 돋보였다.

전반 내내 위협적인 제공권을 무기로 상대 문전을 위협하던 김승용은 기성용(18·서울)의 패스를 받은 후반 18분 골 에어리어 바깥쪽에서 강한 중거리 슛을 시도했으나 골키퍼의 선방으로 무위에 그쳤다. 후반 25분에는 왼쪽 측면에서 백지훈이 올려 준 공을 강한 헤딩슛으로 연결했으나 골키퍼의 발을 맞고 튀어나와 아쉽게 득점에는 실패했다.

바레인 전 원정경기의 여파로 심각한 체력저하를 보인 대표 팀이었기에 김승용의 활발한 움직임은 더욱 빛나 보였다. 프로경기에서 66경기를 뛸 동안 단 2골만을 기록한 선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훌륭한 플레이였다.

아직도 보여줘야 할 것이 많은 김승용

나 골 넣는 것 봤지? 골을 넣은 뒤 골뒤풀이를 펼치는 김승용

▲ 나 골 넣는 것 봤지? 골을 넣은 뒤 골뒤풀이를 펼치는 김승용 ⓒ 남궁경상


결국 시리아와의 경기는 김승용의 헤딩 결승골을 잘 지킨 대표 팀의 1-0 승리로 끝났다. 당연히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김승용이었다.

수훈선수로 뽑힌 김승용은 상무 출신 선수들이 으레 그러하듯 "군 생활이 정신력 강화에 큰 도움을 줬다"며 경기에 대해 그답지 않은 지극히 당연한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첫 골 이후 다소 어색했던 골 뒤풀이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원래는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동료들이 잡아서 보여줄 수 없었다"는 김승용의 말에서 몇 년간 슬럼프를 겪었던 선수라고는 볼 수 없는 특유의 낙천성이 묻어났다. 2005년 1월 카타르 국제청소년축구대회 때부터, 김승용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좌우로 더듬이를 움직이는 일명 '리마리오' 골 뒤풀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박성화 감독에게 김승용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부임 당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던 김승용이 올림픽 대표팀에서 연일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이었다. 

청소년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좋은 평가를 내렸던 애제자에 대한 칭찬이 이어질 만도 했지만 "여전히 이근호나 다른 선수에 비해 김승용이 성장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듣기에 따라 냉정해 보일 수도 있는 평가였지만 박성화 감독의 김승용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와의 혈전에서 승리한 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며 더 큰 승리에 대한 열망을 내비쳤던 히딩크 감독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김승용이라는 이름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2%의 아쉬움이 감독과 축구팬의 마음속에 박혀있다.

'그라운드의 열정을 기억하라', 군 입대 전 김승용의 원래 소속팀이었던 FC 서울의 홈구장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걸려있던 그에 대한 응원의 문구다. 일병 김승용의 화려한 휴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승용이 잃어버린 지난 몇 년의 시간을 만회할 수 있을 때 한국 축구는 '유쾌한' 공격 무기를 얻게 될 것이다.

국군 일병 김승용. 대한민국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화려한 휴가'의 끝자락에는 '더 화려한 제대'가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아직도 김승용을 바라보는 축구팬은 배가 고프다.

김승용 올림픽 대표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