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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28일까지 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공동 주최한 '2007피스&그린보트'가 진행됐습니다. 한일 대학생과 시민 등 600명이 승선한 피스&그린보트는 요코하마->하치노헤->쿠시로(이상 일본)->캄차카->사할린->블라디보스토크(이상 러시아)->부산까지 항해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STOP!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한 이번 항해에 함께한 강인규 시민기자의 승선기와 기항지 체험을 담은 글을 연속해서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 1904년에 찍은 아이누족의 사진. 이들은 수천 년 동안 일본 원주민으로 지내왔음에도 차별과 조롱, 그리고 무시의 대상이 되어 왔다.
ⓒ Wikimedia Commons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北海道)에는 '쿠시로'라는 작고 예쁜 도시가 있다. 이곳은 '안개의 도시'라는 낭만적 별명으로도 불린다. '쿠시로'라는 이름은 이곳에 거주하던 소수민족이 붙여준 것으로, '건널 수 있는 강'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강이 도시를 관통해서 흐르고 있으며, 바다로 이어지는 하류지만 강폭이 넓지 않아 도시에 아담한 느낌을 더해준다.

이 도시에 걸맞은 이름을 준 이들은 아이누(アイヌ, Ainu)족이다. 이들은 홋카이도에서 사할린, 캄차카, 그리고 쿠릴열도에 이르는 폭넓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아이누족은 오래 전부터 일본 본도와 구분되는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이들의 문명은 13~14세기경에 절정에 달했으나, 15세기부터 일본의 통제와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 안개 낀 쿠시로의 강 하류. '안개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저녁때가 되면 짙은 안개가 강가와 도시를 덮는다.
ⓒ 강인규

일본의 혹독한 지배와 차별을 겪었다는 점에서, 아이누의 역사는 한국과 유사하다. 아이누의 문화는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었으며, 고유어와 전통적 관습은 금지되었다. 눈이 깊고 쌍꺼풀이 있으며, 피부는 희고 몸에 털이 많은 이들은 '평균적 일본인'과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조롱과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아이누인들이 결혼을 통해 일본사회로 편입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차별 때문에 아이누 혈통을 숨기거나 자신이 아이누족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이유로 아이누족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인이 그랬듯, 아이누는 혹독한 차별과 강압적인 동화 정책에 맞서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냈다. 현재 일본 홋카이도에는 2만5천명이 넘는 아이누인들이 뚜렷한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누에 없는 것 세 가지, 술·걸인·'자연'

무엇이 이 소수민족을 이토록 강하게 만들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누인들의 문화 속에는 그들의 강인한 정신을 드러내는 단서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술 문화의 부재다. 아이누인들은 오래 전부터 술을 멀리해 왔다.

최근에는 외부 문화의 영향으로 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이누족은 본래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술이 판단력을 흐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누인들이 술을 접하는 유일한 순간은 종교의식을 행할 때다.

▲ 아이누족 남성이 술을 떠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아이누족은 전통적으로 제사 목적 이외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 강인규
제례를 맡은 남성은 기도를 올린 후 제사용 목검에 술을 묻혀 제단에 뿌린다. 그러고는 제사에 썼던 술을 돌려가며 마신다. 기도는 신과 나누는 대화며, 이때 술은 신과 대화하기 위한 매개체가 된다. 이 '도노토'라는 술은 찹쌀로 빚는데,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하다.

아이누 문화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술만이 아니다. 아이누 사회에는 걸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을 모든 이가 나누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궁핍은 존재하지 않거나 모든 이의 몫이 된다.

수렵민족인 이들은 연어와 사슴을 함께 잡아 나누었다. 그러나 사냥감이나 곡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필요 이상을 취하지는 않는다. 필요 이상을 거두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몫은 물론, 자신들이 미래에 누릴 몫까지 빼앗는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누인들은 자연과도 나눌 줄 안다. 자연에서 취할 줄만 아는 이른바 '문명인'들은 '자연과 나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누인들의 언어에는 '자연'이라는 말이 없다. 그들의 삶 자체가 곧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일부로 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 줄 아는 이들의 정신은 민속춤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아이누 민속춤에 나타난 나눔의 정신

한 아이누 여인이 손으로 머리를 괸 채 비스듬히 누워 있다. 쉬는 것 같기도 하고 잠든 것 같기도 한 이 여인은 해안으로 떠밀린 고래다. 한 무리의 여자들이 그 고래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 일부는 "꾸악 꾸악"하면서 날갯짓을 한다. 고래가 뭍으로 올라온 것을 가장 먼저 눈치 챈 까마귀들이다.

여인들은 바구니를 들고 길을 돌아 고래에게 도착한다. 여인들은 고래를 쪼는 까마귀를 쫓으며 고래 등에서 식량으로 쓸 만큼 고기를 잘라낸다. 고래를 이리저리 굴리며 고기를 취한 여인들은 바구니를 열어 큼직한 고깃덩이들을 공중으로 던진다. 까마귀들의 몫이다. 까마귀들이 고래를 먼저 발견해서 알려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다.

▲ 고래와 까마귀, 그리고 사람들이 등장하는 민속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아이누족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 강인규

▲ 고래의 몸을 반대로 돌려 고기를 얻으려 하지만 고래는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배고픈 아이누인들이 먹이를 얻는 험난한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여기에는 웃음의 여유와 더불어 나눔의 정신 또한 담겨 있다.
ⓒ 강인규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함께 나눌 음식의 재료들을 미리 챙겨놓았다. 사슴고기, 연어 몸통과 내장, 감자와 당근, 신선한 채소, 그리고 경단을 만들 찹쌀가루와 다시마. 그들은 까마귀의 몫조차 하지 않은 우리를 배불리 먹일 터였다. 아이누족의 대표는 방문객들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제사로 우리를 맞았다.

다시마를 기름에 튀겨 빻아 고운 가루로 만들고,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경단을 만든다. 이 경단에 다시마 가루를 묻히면 '콘부츠토'가 된다. 여기에 연어와 야채, 그리고 된장을 가볍게 풀어 끓인 맑은 국('쳇푸오하우'), 연어내장을 소금에 절인 젓갈('치타탓푸'), 그리고 사슴고기 요리('윳크카무라탓')가 곁들여졌다.

▲ 피스&그린보트 참가자들이 아이누족의 요리를 직접 실습해 보고 있다.
ⓒ 강인규

▲ 아이누족의 전통음식. 사슴고기(왼쪽)와 연어(오른쪽)는 이들의 중요한 식량이다.
ⓒ 강인규

망각에서 되살린 아이누 문화

조선인과 유대인이라는 말이 차별적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아이누라는 명칭 또한 오랜 억압의 역사를 거치며 차별의 뜻을 담게 되었다. 과거보다 상황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자신이 아이누족임을 드러내는 데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런 차별 때문에 문화를 계승하겠다는 젊은이들을 찾기 어려웠고, 이로 인해 전통의상과 민속음악, 그리고 전통춤은 명맥이 끊길 위험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누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새로이 시작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타리 협회'다. '우타리'란 아이누어로 동료라는 뜻이다. 함께 문화를 지켜가는 사람들은 모두 동료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1984년에 서너 명으로 시작한 이 모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구하기 어렵게 된 전통의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 아이누 여성들이 둘러앉아 민요를 부르고 있다.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전통문화가 아이누인들의 노력에 의해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 강인규

▲ 아이누의 전통의상.
ⓒ 강인규

회원들은 외지에서 온 자수전문가에게 수놓는 법을 배웠다. 아이누 전통 의상에서 문양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누 여인들은 함께 수를 놓아 전통의상을 만들고, 서서히 잊혀가던 민속춤을 다시 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오래전 어머니가 추던 과거의 춤사위를 기억해내고는 아이누 부족의 문화를 이어간다는 생각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렇게 작은 인원으로 시작한 아이누 문화 지키기 노력이 성공을 거두어, 이제 일본 각지에서 공연 초청을 받고 있으며 이들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직접 찾아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누 민속예술은 일본 최초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올해 2007년이 '아이누문화의 해'로 지정되는 경사도 있었다.

▲ '우타리 협회'는 아이누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협회 회원이 방문자들에게 아이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강인규

▲ 아이누인들은 오랫동안 일본의 탄압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성공적으로 지켜가고 있다. 사진은 아이누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전시회 간판.
ⓒ 강인규

그러나 아이누에 대한 차별과 금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아이누족에게 원주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묵살되었다. 일본 정부는 아이누의 문화는 마지못해 인정하되, 그들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누인들을 박물관 안에만 가두어 놓으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일본 내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낸 아이누인들의 질긴 삶이 이 점을 분명히 말해준다.

대금소리가 흘러나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이누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우리를 초청해 준 데 대한 답례로 준비한 국악공연이었다. 때로는 영롱하게, 때로는 구슬프게 울리는 대금 소리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음을 눈치 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 연주가 끝나면 이제 그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할 터였다.

생각했던 대로 작별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진을 찍고, 손을 움켜잡고, 거듭 인사를 한 후에도 버스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차가 출발했지만, 그들은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 아이누인들이 국악 공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강인규

▲ 아이누인들이 방문객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아이누족에 대한 차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자주적 권리 또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강인규

태그:#아이누, #쿠시로, #우타리 협회, #홋카이도, #동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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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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