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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선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하치노헤는 예로부터 이름난 어장이었다.
ⓒ 강인규

일본 본도(혼슈) 북쪽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는 해안도시 하치노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함을 느낀다. 생태자연과 인공문명이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안에는 작은 고깃배들이 평화롭게 출항을 기다리고 있고, 그 앞에는 옥색 바다가 펼쳐진다. 이곳의 평화로움을 발견하는 데에는 귀 하나로 충분하다. 바위에 부딪는 파도 소리가 잦아들 때면 어김없이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회색 공장지대가 거품처럼 게워내는 누런 연기를 볼 수 있다. 태평양에서 실려 온 바다 냄새는 연안의 공업지역 부근에서 썩는 듯한 화학약품 냄새로 바뀐다. 그러나 이 섬을 지배하는 더 큰 위협은 보거나,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할 수 없는 곳에서 온다.

바로 핵폐기물이다. 하치노헤가 위치한 아오모리현에는 핵재처리 공장이 있다. 인근 로카쇼무라의 핵시설에는 대량의 고준위 핵폐기물이 저장되어 있고, 지하에는 무려 16만5천 드럼의 저준위 폐기물이 묻혀 있다. 로카쇼무라 핵재처리 시설에선 2004년 시험가동을 시작한 이래 여러 차례 사고가 발생했고, 무려 400가지 이상의 기술적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그 과정에서 방사능 오염물질이 대거 대기와 바다로 유출된 사실도 드러났다. 뒤늦게 드러난 이 사실에 회사 측의 해명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별로 심각하지 않은 문제'라는.

▲ 하치노헤에는 각종 산업 시설이 들어서 있다. 연기를 뿜는 제지 공장과 그 앞에 쌓여있는 펄프가 보인다.
ⓒ 강인규

▲ 하치노헤의 하늘을 나는 괭이갈매기.
ⓒ 강인규

산업시설 옆 괭이갈매기 서식지

갈매기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한가로이 하늘을 난다. 이곳 하치노헤에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괭이갈매기의 서식지가 있다. 육지와 연결된 아담한 돌섬인 가부시마섬(蕪島)이 그곳이다. 섬에 오르면 언덕 전체가 흰 꽃으로 덮인 듯하다. 그 '흰 꽃들'을 자세히 보면 날개를 접고 휴식을 취하는 괭이갈매기떼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독특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어 '괭이갈매기'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양이보다 짧은 소리를 내지만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정말 고양이 울음처럼 들린다. 안 그래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니, 이 귀한 갈매기들은 더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 가부시마섬은 천연기념물인 괭이갈매기의 서식지다. 섬을 덮고 있는 흰 점이 모두 괭이갈매기다.
ⓒ 강인규

가부시마섬은 본래 육지와 분리된 섬이었으며, 섬 둘레의 풍부한 어자원은 갈매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이후 섬으로 육로가 놓이게 되었지만, 여전히 괭이갈매기는 이곳을 거처로 삼고 있다. 이 돌섬은 작지만 우아한 신사의 건축양식과 어울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신사 정문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는 '우산 대여대'가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는데도 우산을 하나씩 펴들고 언덕을 오른다. 왜일까? 투명우산도 있는 것으로 보아, 자외선을 피하기 위한 양산 같지는 않다. 설마, 방사선을 막아주는 특수 우산은 더더욱 아니겠지.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갈매기 배설물이 답을 대신해 준다.

섬을 덮다시피 한 갈매기들 때문에 우산을 쓰지 않고 신사의 긴 계단을 오르다 봉변을 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언덕을 오르다 보니 계단 구석까지 갈매기들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갈매기는 사람이 다가와도 긴장하거나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섬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 신사의 울타리에 앉아있는 괭이갈매기들.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괭이갈매기'라는 이름을 얻었다.
ⓒ 강인규

▲ 가부시마 섬의 신사를 오르는 관광객들. 비가 오지 않아도 우산을 쓰는 것이 흥미롭다(사진 왼쪽). 가부시마 신사 앞의 우산 대여대(오른쪽).
ⓒ 강인규

돈과 맞바꾼 미래

아오모리현의 핵시설은 기획 단계부터 큰 논란거리였다. 오랫동안 고기잡이를 주산업으로 삼아온 어촌이기에 오염되지 않은 바다가 필요했던 데다, 지반이 불안정해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카쇼무라 핵재처리 시설이 가동을 시작한 후 석 달 만에 혼슈 지방에 진도 7.2도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수십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한 것은 물론, 사상 처음으로 고속전철이 탈선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이는 로카쇼무라 핵시설의 안전을 걱정하던 주민들을 공황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시험가동 중 발생한 수백 가지의 기술적 오류와 문제점 때문에, 핵재처리 시설의 존립 가능성 자체를 회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정부 관리들조차 이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이 지역의 시설유치를 변호하던 <요미우리신문>조차 2004년 6월 18일 "결국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결국 계획은 강행되었고, 올해 말 본격가동을 시작해 매년 800톤에 이르는 핵폐기물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한 해 4톤 이상의 우라늄․플루토늄 혼합산화물 분말(MOX)을 제조하게 된다. 핵재처리 업무는 이미 민영화돼 사기업(일본원자력연료 주식회사)의 손으로 넘어간 상태다. 그로 인해 주민과 정부 관리의 우려는 이들의 계획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공해시설을 유치할 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논리가 여기서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미 2조엔(약 15조원) 이상이 투자되었으나, 아오모리 현은 여전히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지방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이제 핵시설 유치가 어민들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 최대의 어장 가운데 하나였던 이곳이 이제 원산지 표시 기피 지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고 없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핵시설 역시 방사능오염 폐액을 바다에 버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회사와 정부당국은 이 방사성 폐액이 바닷물에 의해 희석되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방사성 물질은 플랑크톤부터 연어와 참치 같은 대형생선에 이르기까지 먹이사슬을 통해 계속 축적되어 사람에게 되돌아간다. 대기와 토양의 방사선이 곡식과 채소를 오염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 하치노헤 시장에 진열된 해산물. 로카쇼무라 핵재처리 시설은 아오모리현을 부흥시키기는커녕, 전통적인 생업인 어업까지 위협한다.
ⓒ 강인규

핵발전, 저렴하고 효율적인가

핵시설의 위험성을 잘 인식하는 사람들조차 원자력의 효율성에는 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수치상으로 보면 석유나 석탄, 천연가스 등의 원료가 발전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80퍼센트인 반면, 원자력은 1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핵폐기시설의 건립과 관리, 그리고 잠재적 위험에 대한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로카쇼무라 핵재처리 시설의 예상수명은 40년이다. 그리고 가동을 중단하고 폐쇄하는 폐로 과정을 위해서도 다시 40년의 관리가 필요하다. 이 기간에 시설관리비로 투여되는 비용은 총 19조엔에 달한다. 한화로 무려 150조원이다. 그러나 더 큰 비용은 이 시설이 가동되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과 재처리 후 남는 반영구적 핵폐기물이다.

핵발전은 사실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우라늄 연료의 0.5퍼센트만이 연소되기 때문이다. 연소되고 남은 나머지 99.5퍼센트의 핵폐기물의 경우 재처리 과정을 거쳐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일부 추출하거나, 그대로 용기에 담겨 버려진다. 재처리 과정을 거치면 방사성 폐기물의 양이 감소하는 장점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또 다른 오염이 발생한다.

발전이나 재처리 후에 남는 핵폐기물을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용기에 담아 땅 속이나 바다에 쌓아두는 것이다. 이 방사성 폐기물이 효력을 잃기 위해서는 수만 년에서 수백만 년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용기가 사고, 자연부식, 혹은 실수로 파손되거나 개봉될 때는 재앙적인 결과를 면할 수 없게 된다. 환경 변화 역시 미래의 위험을 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학저널 <뉴사이언티스트> 2005년 6월호는 지구온난화가 예상치 못했던 핵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로카쇼무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핵발전과 재처리 시설이 해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설계에 고려되지 않았던 수면상승으로 인해 핵시설과 매립지역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 국방성이 '수만 년이 지난 후에도 의미를 잃지 않는 방사능 위험 표시'를 기호학자에게 의뢰했다는 사실 역시 핵폐기물이 후손에게 끼칠 위험을 말해준다. 핵폐기물의 위험은 언어의 수명보다 길기 때문이다. 핵발전이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우리가 지불하지 않은 그 끔찍한 청구서는 우리 자식들에게 배달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핵발전은 천천히 폭발하는 핵폭탄'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 가부시마섬과 근처 바다의 풍경.
ⓒ 강인규

침묵 속에 다가오는 위험

대화를 나누던 한 일본 대학생이 말한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정치적 문제에는 민감하지만, 핵문제 등의 '비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무관심한 것 같다고. 일본의 경우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0퍼센트 정도지만, 한국은 45퍼센트에 이르는 만큼 오히려 일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비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인들이 핵발전에 보이는 관대함일 것이다. 한국의 언론이 핵발전의 문제점이나 핵폐기물이 미래에 가져올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 한국의 원자력연구소에서 무려 3킬로그램에 이르는 우라늄 시료가 아무런 안전 조치 없이 폐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방사능 물질은 한국의 한 쓰레기 소각장에서 태워진 것으로 짐작될 뿐, 소재는 결국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대형 사고에 대해서조차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는 한국 사회가 '일상적' 핵발전과 폐기물 처리에 관심을 두기는 어렵다.

하치노헤의 옥색 바다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검은 구름이 몰려들었지만, 갈매기는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하치노헤 해안의 풀밭에는 네잎클로버가 놀랄 만큼 많이 눈에 띄었다. 이 '행운의 상징'을 찾는 데 유달리 재주가 없는 내 눈에조차. 다른 이유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냥 좋은 징조이리라.

그렇게 나 자신을 위로했지만, 손을 뻗어 그 행운을 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아오모리현의 로카쇼무라 핵재처리 시설은 세계 각국의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피폭사고가 발생했으며, 본격가동 이후에는 핵무기 원료로 전용될 수 있는 우라늄과 플라토늄 혼합분말을 생산하게 된다. 핵재처리 시설에 반대하는 피스&그린보트 사람들이 현수막을 들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강인규

▲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치노헤의 어린이들. 핵발전의 효율성은 미래 세대에게 위험을 미룸으로써 얻어진다.
ⓒ 강인규

태그:#하치노헤, #피스그린보트, #로카쇼무라, #핵 재처리, #괭이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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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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