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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10일 오후 2시]

▲ 시민단체 대표가 10일 오전 의기사 안에 봉안되어 있는 미인도 '논개'를 망치로 두드려 유리를 깬 뒤 떼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 시민단체 대표들이 떼어낸 미인도 '논개'를 의기사에서 밖으로 가져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미인도 논개(일명 ‘논개영정’)가 진주성 의기사에서 떼내졌다.

진주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독도수호 진주시민행동’은 10일 오전 호국성지인 진주성 의기사 안에 봉안되어 있던 ‘논개영정’ 폐출작업을 벌였다.

시민단체 대표 5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 촉석루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잔재 청산 차원에서 ‘논개영정’을 떼어낸다고 밝혔다. 이들은 호국성지인 진주성 안에, 그것도 충절의 상징인 논개를 기리는 곳에 친일화가가 그린 그림이 모셔져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진주시민행동은 김은호가 그린 ‘논개영정’은 진주성 안에 둘 수 없다면서, 다른 장소에 보관할 것을 요구했다.

▲ 시민단체 대표가 망치로 유리를 깨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진주시민행동 대표들은 기자회견 뒤 곧바로 의기사 안으로 들어가 ‘논개영정’을 떼어냈다. 그림은 의기사 안에 별도의 상자를 만들어 유리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시민단체 대표들은 망치로 유리를 깬 뒤 그림을 끄집어냈다.

지역 여성단체 대표들은 떼어낸 그림을 들고 의기사 옆에 있는 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 앞으로 옮겨 고유제를 지냈다. 진주시민단체협의회 박노정 공동대표는 고유문에서 “이제 우리의 터전, 민족의 성지, 호국의 일번지 진주성 안에서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를 뿌리 뽑았다”고 밝혔다.

이날 시민단체의 ‘논개영정’ 폐출작업이 벌어지자 진주시 박만택 기획실장과 진주성관리사무소 관계자들은 "법과 절차를 지켜달라"며 저지하기도 했다. 박만택 기획실장은 “논개영정은 공공기물인데, 함부로 떼어내서는 안된다”면서 “다시 봉안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인지는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림을 떼어낸 관계자들에 대한 고발 여부에 대해 박 기획실장은 “아직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시민단체들은 떼어낸 그림을 다시 진주성 안에 들여놓을 수 없다면서 잠시 보관한 뒤 진주시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대표들이 그림을 진주성 정문 앞까지 가져나온 뒤 승용차로 그림을 옮기려고 하자 진주성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막아서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진주시와 시민단체 대표들은 그림을 진주성관리사무소 사무실에 보관한 뒤, 처리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상의하기로 했다.

미인도 ‘논개’는 1960년대 초 김은호가 그린 그림이다. 당시 진주성 의기사가 6.25로 불에 탄 뒤 복원했는데, 이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그림을 봉안하게 되었다. 김은호가 그린 똑같은 그림이 전북 장수에 있는 논개사당에도 봉안되어 있다.

김은호는 친일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제시대 여성단체들이 금비녀 등을 팔아 일본의 전쟁물자를 사는데 쓰도록 한 모습을 ‘금차봉납도’라는 그림을 그려 미나미 총독에게 바친 인물.

김은호는 남원에 있는 성춘향상도 그렸는데, 미인도 ‘논개’와 두 그림이 너무나 닮아 있다. 또 미인도 ‘논개’는 머리모양과 옷매무새 등에 대해 고증을 거치지 않았으며, 얼굴 모양의 경우 일본 전통 화법인 ‘구륵법’에 따라 그려 일본화풍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논개영정’을 김은호가 그렸다는 사실은 1993년 <진주신문>이 처음으로 보도하면서 세간에 알려졌고, 당시부터 진주지역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폐출운동을 벌여왔다. 그동안 진주시와 시의회는 시민단체의 폐출요구를 거부했고. 이로 인한 마찰을 빚어왔다.

▲ 진주지역 여성단체 대표들이 의기사에서 떼어낸 미인도 '논개'를 촉석루 앞으로 가져 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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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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