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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시(시장 유승우)가 친일 활동 논란이 일고 있는 화가의 미술관을 지역에 건립하기로 해 반발을 사고 있다. 이천시는 동양화가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 1912∼ )의 호를 딴 '시립월전미술관'을 이천시 관고동 378번지 외 6필지 설봉공원 내 약 2875평 부지 위에 건립키로 하고 사업비로 53억 3천만원을 소요할 예정이다.

시에서 밝힌 미술관의 규모는 9505㎡(2875평) 부지에 연건평 1720㎡(520평)의 2층 건물과 부속 건물로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수장고, 학예실, 강좌실, 휴게실 등을 갖춘다는 방침으로 사업 기간은 2005년 6월 착공하여 2006년 6월 준공 예정이다. 미술관 건립 예정 부지인 설봉공원은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이천시에서도 경치가 좋아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현재 이천시에서는 미술관 건립에 소요되는 사업비를 문화관광부(15억 9천만원-30%), 경기도(15억 9천만원-30%), 이천시 자체 예산(21억 5천만원-40%) 등에서 각각 충당할 계획이지만 문화관광부와 경기도에서는 현재 예산 배정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의회 문화공보위원회 소속 신종철 의원에 의하면 "현재 이천시에서 월전미술관 건립을 위해 도비를 요청하였으나, 경기도에서는 내년 재정문제의 어려움 때문에 시군 보조를 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친일문제가 충분히 해소되기 전에 무리하게 예산을 반영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친일논란을 겪고 있는 장우성은 생존해 있는 한국 동양화가 중 최고로 손꼽히는 작가로 아산 현충사의 이 충무공 창정, 예산 충의사의 김유신 장군 창정을 비롯해 강감찬 장군, 권율 장군의 표준영정과 천안의 유관순 열사 영정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올 3월에는 유관순 열사 영정을 관리하는 천안시 사적관리소에서 유관순 열사의 영정을 재제작하는 과정에서 다시 장우성 화백에게 작품을 의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천안시 측은 이미 장우성이 재제작을 완료한 새로운 유 열사 영정으로 아직 교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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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천시 담당 공무원에 의하면 이와 같은 장우성 화백에 대한 친일논란이 있음을 사전에 알면서도 시 차원에서는 올 3월 8일부터 4월 21일까지 '월전미술관 유치에 따른 검토 결과서'를 작성해 사업을 진행하였다고 밝히며 자신들은 "장 화백의 친일보다도 그의 작품성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술관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 유력인사들은 "당대 최고 화백의 미술관을 이천에 건립한다면 이천은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로서 명성을 날릴 것"이라며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들의 역사 인식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여기에 장우성 본인도 올 4월 설봉공원을 직접 방문하고 잘 가꾸어진 주변 경관에 감탄하며 미술관 이천 건립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장우성의 친일활동을 살펴보면 그는 1932년부터 조선인 심사위원 완전 배제된 '조선미술전람회'에 참여하여 1941년 조선총독상(2등상), 1942-43년 창덕궁상(1등상), 1944년 특선 등 다수 입상했다. 특히 1943년 6월 조선미술전람회 수상식을 보도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3년 6월 16일자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볼 수 있다.

1943년 6월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 수상 시상식 대야(大野) 학무국장이 "결전하 예술가의 두 어깨에 지워진 임무가 중대함을 강조하는 열렬한 인사를 하자 일동을 대표하여 동양화 장우성 화백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답사를 한 후 동 1시 40분 경에 이 수상식은 끝났다" <매일신보 1943년 6월 16일자>

▲ 장우성의 '조선미술전람회' 수상과 답사 내용을 보도한 <매일신보> 1943년 6월 16일자
ⓒ 민족문제연구소
'조선미술전람회'는 '유치한 조선미술을 보육조장하고, 정조를 고아케 하며, 민중의 사상을 순화케 하여 사회 교화의 일조'를 목적으로 조직된 친일미술 단체이다. 장우성은 또한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에는 대표적인 친일미술가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가 주최하고, 총독부 정보과와 국민총력조선연맹이 후원한 '반도총후미술전람회(半島銃後美術展覽會)'에 일본화부 추천작가로 참여하였다.

'조선미술가협회'는 '국가의 비상시국에 직면하여 신체제 아래서 일억일심으로 직역봉공(職域奉公)하여야 할 이 때, 미술가 일동도 궐기하여 서로 단결을 굳게 하고 또한 조선총력연맹에 협력하여 직역봉공을 다함'을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인 친일미술 단체로 초대 회장은 시오와라(鹽原時三郞) 총독부 학무국장이었다.

이 단체는 1943년 3월 신규사업으로 (1) 반도인 작가에게 일본정신의 진수를 체득케 하기 위해 성지 순례 (2) 국경 경비에 정진하고 있는 황군용사, 경관, 관원, 관리들을 위문하기 위해 만화가를 파견 (3) 반도총후미술전람회는 주로 보도미술, 생산미술에 중점을 두어 역작을 모집 (4) 회원의 시국인식 앙양을 기념하기 위하여 될 수 있는 대로 강연회, 좌담회 개최 등을 추가하는 등 노골적인 친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반도총후미술전람회'는 '조선미술전람회'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전쟁 동원을 선동한 미술전람회였다.

이밖에도 장우성은 1944년 3월부터 10월까지 경성일보사 주최하고, 조선군 보도부, 조선총독부 정보과,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미술가협회 후원한 미술전으로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황국 신민의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열린 '결전미술전(決戰美術展)'에 참가한 것이 최근 드러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친일경력이 뚜렷한 인물의 미술관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이천시에 맞서 지역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이천·여주·광주지회(대표 김기환)가 중심이 되어 (가칭) '월전미술관 건립 반대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있으며, 11월 중으로 미술관이 들어설 설봉공원 안에서 반대 집회도 벌일 계획이다.

한편 월전 장우성의 친일행적이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6년 당시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가 학과 창립 50주년 기념 학술논문에서 미대의 초기 교수진으로 참여한 장우성, 노수현, 장발 등의 일제 시대 친일행적을 거론한 이후 1998년 서울대가 김 교수를 재임용에서 부당하게 탈락시키면서부터이다.

김 전 교수가 거론한 세 인물 가운데 현재 유일하게 장우성만이 생존해 있으며 김민수 전 교수는 아직까지도 힘겨운 복직투쟁을 6년째 벌이고 있다.

이번 이천시의 월전미술관 문제 이전에도 '박정희기념관'을 비롯해 '조두남음악관', '난파기념관' 등 지자체의 무리한 친일인사 기념사업은 여전하다. 친일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정리가 최근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에서는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 통과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지자체의 무분별하고 몰역사적인 기념사업에 대해서는 앞으로 제도적인 사전 검증 장치가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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