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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글에서 "미국"은 중국식 이름 "메이꿔(美國)"를, "아메리카"는 "아메리까(アメリカ)"라는 일본식 음차어를 한국식으로 읽은 것에 불과함을 보였다. 그 대신 한국말 음운론과 어휘론에 더 적합한 "메국"과 "어메리카"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제 끝으로 메국의 공식이름 "United States of America"중에서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부분을 살펴보자. 이 부분은 흔히 "합중국"이라고 번역돼 사용되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허쫑꿔," 일본에서는 "가슈우고꾸"라고 부른다. 세 이름은 모두 한자어 "合衆國"을 제 나라의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다.

세 나라가 모두 같은 한자어를 쓰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 세 나라가 독자적으로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를 번역했는데 우연히 일치한 것일까?

그건 좀 믿기가 좀 어려운 설명이다. 동북아시아 삼국이 모두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었더라도 19세기말의 서양문물 유입 및 교류관계가 그렇게 독립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늦게까지 쇄국정책을 유지했던 한국은 주로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 문물과 함께 중국식, 혹은 일본식 이름도 같이 들어왔을 것임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앞에서 "메이꿔(美國)"와 "아메리까(アメリカ)"를 그 증거로 든 바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문물 교류도 서로 독립적이지는 않았다. 중국과 일본은 정치, 군사적으로는 서로를 견제하고 대립했지만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경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나라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중국이 주춤거리며 마지못해 받아들였다면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기점으로 서양문물의 도입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때문인지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도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중국이 유입한 서양문물과 그 이름이 한국과 일본으로 흘러가곤 했지만, 후에는 거꾸로 일본이 받아들인 문물과 그 이름이 한국과 중국으로 흘러가는 양상을 띠었다. 그 점은 이후의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합중국(合衆國)"이라는 이름은 중국과 일본 중에서 누가 먼저 쓰기 시작했을까?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 보면 그 이름은 중국이 먼저 만들어 썼을 가능성이 높다. 메국과 공식적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청(淸)나라가 일본보다 10년 정도 앞섰기 때문이다.

청나라가 처음으로 메국과 맺은 정식 외교관계는 1844년의 일이다. 아편전쟁 후 영국은 난징(南京)조약(1842)과 후먼(虎門)조약(1843)을 통해 청나라의 개항과 최혜국 대우를 얻어냈다. 메국은 중국에게 동등한 내용의 조약을 요구해 1844년 7월 왕샤(望廈)조약을 맺었다. 이것이 메국과 청나라 사이의 첫 공식 외교관계였다.

한편 일본이 메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1854년의 카나카와(神奈川)조약이다. 군함을 앞세운 메국 해군 제독 매튜 캘브레이스 페리 (Matthew Calbraith Perry)의 강압으로 도꾸까와 막부가 마침내 나라의 문을 연 것이다. 이 조약은 통상문제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양국의 화친(?)을 명시한 메국과 일본 사이의 최초의 외교적 사건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메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시기를 합중국(合衆國)이란 이름을 사용한 시기의 증거로 보는 것은 조약문에 양 당사국 이름이 명시되기 때문이다.

왕샤조약의 중국어 사본에 기록된 메국의 중국식 이름과 카나사키조약의 일본어 사본에 기록된 메국의 일본식 이름을 비교하면 합중국(合衆國)이라는 말을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를 밝힐 수가 있다.

메국 체류 중인 필자는 양 조약의 영어 사본은 구할 수 있었으나 중국어와 일본어 사본을 구할 수가 없었다(양 조약의 중국어와 일본어 사본을 찾으신 분은 이메일이나 독자란을 통해 연락주시면 감사하겠다).

따라서 필자는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1880년경 일본 주재 청나라의 외교관이 쓴 한 정책 건의문을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직위가 참사관이던 황쑨쎈(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이 바로 그것이다.

강화도조약으로 일본과 국교를 맺은 대한제국은 김홍집을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했다. 김홍집은 일본 체류기간 중에 황쑨쎈을 만나 조선책략을 받아오게 된다.

사견임을 전제하면서 황쑨쎈은 당시 동아시아 삼국이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위해 조선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결속하고 메국과 연합함으로써 스스로 강해질 것을 도모해야 한다(親中國·結日本·聯美國, 以圖自强而己)"고 했다.

또 황쑨쎈은 "조선의 동쪽 바다에서 출발해서 계속 가면 어메리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합중국이 도읍한 곳이다(自朝鮮之東海而往, 有亞美利加者, 卽合衆國所都也,)"라고 소개해 놓고 있다.

황쑨쎈이 제안한 조선의 외교정책이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이 글의 관심이 아니다. 다만 그의 짧은 글에 메국을 가리키는 세 이름이 모두 나온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메이꿔(美國)"와 "야메이리지에"(America)와 "허쫑꿔(合衆國)"가 그것이다.

이중에서 메이꿔(美國)와 허쫑꿔(合衆國)는 오늘날의 이름과 같지만 "America"의 음차어인 야메이리지에(亞美利加)는 오늘날 사용되는 메이리지엔(美利堅)과 차이가 있다.

아메이리지에(亞美利加)라는 이름이 두가지 점에서 재미있다. 우선 "America"의 중국식 음차어가 하나 이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뉴욕 주립대학의 중국 근대문학 전공 교수에 말씀에 따르면 미리견(美利堅)과 아메이리지에(亞美利加) 이외에 야메이니지아(亞美尼加)라는 말도 문학 작품에 빈번히 사용되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또 한가지 흥미있는 점은 중국식 음차어 야메이리지에(亞美利加)가 일본식 음차어인 아메리까(亞米利加)에 아주 가깝다는 점이다. 유일한 차이점은 米와 美자의 차이 뿐이다.

아마도 일본이 야메이리지에(亞美利加)를 받아들여 美를 米로만 바꾸어 "아메리까"라고 읽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이 서양 문물과 그 이름을 받아들이는 데에 서로 독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하겠다.

다시 합중국(合衆國)으로 돌아가 보자. 외교관인 황쑨쎈이 허쫑꿔(合衆國)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그것이 메국을 가리키는 공식 이름(혹은 그 일부)임을 알 수 있다. 왕샤조약 이래로 중국이 "야메이리지에허쫑꿔(亞美利加合衆國)"을 메국의 공식이름으로 사용했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합중국"은 그 연원이 "United States"의 중국식 번역어인 "허쫑꿔(合衆國)"임이 분명하다. 일본 사람들은 "허쫑꿔(合衆國)"를 들여다가 일본식 한자음을 따라 "카슈우고꾸"로 읽었고, 한국 사람들은 그것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합중국"으로 읽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合衆國(합중국, 헤쫑꿔, 카슈우고꾸)"라는 번역어는 "United States"의 적절한 번역어였을까? 결론부터 보면 그렇지 않다. 다음 글에서는 그 이유를 한번 밝혀보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조정희"는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남자다.  아내 장미혜의 남편이고 아들 조오치의 아빠.  지금 메국 뉴욕 주립대학의 사회학 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한국학 강사로도 일한다.  여기에 올리는 글들은 주로 한국어 강의 중에 얻은 생각들을 글로 옮긴 것이다.  한국말과 개념에 관한 공부는 이제 시작 단계인 만큼, 독자분들의 좋은 의견과 날카로운 비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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