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는 음악가의 혼을 담는 도구다. 혼을 담는 도구니만큼 악기가 다르면 전혀 다른 음악이 만들어진다. 음악을 주역으로 내세운 영화 또한 마찬가지, 다른 악기라면 다른 영화가 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전설>과 <뮤직 샤펠>은 피아노로, <어거스트 러쉬>나 <플로라 앤 썬>은 기타로, <블루 자이언트>는 색소폰으로 기억된다. 이뿐일까. 다른 악기로 펼쳐지는 새로운 음악영화는 없는 것일까. 그런 영화를 접하고 싶은 이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브라더 오브 슬립>은 독특한 지위를 가졌다. 대중들은 이 영화를 들어본 적 없는 이가 대부분일 테다. 영화 깨나 좋아하는 이도 고개를 갸우뚱하기 일쑤다. 그러나 음악과 영화를 동시에 좋아하는 이라면, 또 소위 음악평론가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이들은 심심찮게 꺼내드는 작품이 바로 <브라더 오브 슬립>이 되겠다. 왜 그런 것일까. 하고 많은 음악영화 가운데서 이 영화만의 특별함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다음은 바로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된다.
 
영화 속 등장하는 악기는 바로 오르간이다. 건반악기지만 현악기인 피아노와 달리 관악기인 오르간이다. 건반 관악기인 오르간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있어야 할 곳에선 오르간을 만날 수 있던 시대가 있었다. 바로 유럽의 교회당이다.
 
브라더 오브 슬립 포스터

▲ 브라더 오브 슬립 포스터 ⓒ Wild Bunch

 
악기가 귀하던 시대, 오르간을 사랑한 남자
 
악기가 흔해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요즈음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바로 영화 속에 펼쳐진다. 주인공은 백수십년 전 독일 산골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엘리아스(안드레 아이저만 분), 날 때부터 음감이 비상하게 발달한 소년이다. 태어날 때부터 산고로 엄마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가더니 나서는 눈빛부터 태도까지 모든 게 남달라서 낯설게 한다.
 
특히 소리에 지나치게 예민한 엘리아스다. 마을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저만의 관심을 쫓아다니니, 그것이 바로 음악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을엔 악기라 할 만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얼마 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전멸에 가깝다. 가축을 부르는 뿔피리를 제외한다면 음다운 음을 다채롭게 낼 수 있는 악기는 교회당과 학교에 있는 오르간 하나뿐이다.
 
교회당 오르간 주자는 마을 학교의 유일한 선생이다. 매우 폭력적인 성향의 선생은 아이들 위에 군림하여 성미를 거스르면 주먹질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 그가 유독 싫어하는 게 바로 엘리아스다. 어느 날 합창 수업에서 혼자 특별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엘리아스에게 이유를 물으니 교사의 연주에 괴로움이 묻어나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는 엘리아스를 끄집어내 힘이 닿는 대로 패주었는데, 엘리아스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브라더 오브 슬립 스틸컷

▲ 브라더 오브 슬립 스틸컷 ⓒ Wild Bunch

 
마침내 오르간을 가진 남자
 
그처럼 미움을 사면서도 엘리아스는 오르간 곁을 떠나지 못한다. 매일 밤 교회당이 비면 친구 피터(벤 베커 분)와 함께 찾아가 그는 오르간을 연주하고 친구는 곁에서 바람을 불어넣는다.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악기지만 특별한 재능을 지닌 엘리아스에게 음을 익히고 연주하는 방법은 어렵지가 않다.

매일 밤 그와 친구는 텅 빈 교회당을 찾아 꾸준히 실력을 닦아나간다. 그로부터 엘리아스는 특별하고 대단한 연주자가 된다. 오로지 그와 친구만이 아는.
 
영화는 엘리아스에게 처음 찾아온 사랑을 다룬다. 음악뿐이었던 그의 삶이 비약적으로 넓어지며 특별한 열망을 느끼는 그다. 그러나 음악은 오랫동안 자리한 전부이며,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된 열병이다. 사랑을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하여 스스로를 괴롭히는 그다.
 
브라더 오브 슬립 스틸컷

▲ 브라더 오브 슬립 스틸컷 ⓒ Wild Bunch

 
악마적 재능이 피어나는 순간 
 
상황은 단박에 옮겨진다. 교사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오르간 연주자 자리는 엘리아스의 차지가 된다. 그로부터 펼쳐진 격정적이며 매혹적인 연주는 신도 전부를 사로잡는다. 마성의 연주를 마친 뒤 모두는 연주자가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될 것을 직감한다.
 
그러나 호사다마, 불행한 일이 엘리아스를 덮친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던 여자가 다른 이와 관계를 가진 것이다. 분노한 엘리아스와 그를 지켜보는 또 다른 이의 마음이 엇갈리며 영화는 일시에 전부를 뒤흔드는 혼란으로 접어든다.
 
1996년 토론토영화제 작품상을 받은 <브라더 오브 슬립>은 마성적 재능을 지닌 천재 연주자의 탄생을 다룬다. 산골마을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 없던 그가 도시에서 나라 전체를 사로잡는 연주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펼쳐진다. 마을은 불타고 사랑은 꺾이지만 음악은 그로부터 깊어지고 매력적이 되어간다.
  
브라더 오브 슬립 스틸컷

▲ 브라더 오브 슬립 스틸컷 ⓒ Wild Bunch

 
오르간을 소재로 한 가장 멋진 영화
 
특별히 다른 영화에선 만나기 어려운 오르간이란 악기의 특별함은 영화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든다. 바흐 같은 위대한 음악가가 일생을 바친 오르간이란 악기를 영화 안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때 오르간이 담당했던 역할을 마이크와 스피커 등 전자기기를 대동한 다른 악기가 쉽게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독특한 음색마저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가 주목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를 감독한 이는 2020년 타계한 조셉 빌스마이어다. 독일을 대표하던 영화감독으로 <브라더 오브 슬립> 외에도 <스탈린그라드: 최후의 전투>, <운명의 산 낭가 파르밧> 등 규모 있는 작품을 여럿 찍었다.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피아니스트로 재즈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한 이력답게 그가 감독한 영화에선 음악이 남다르단 평가가 줄을 잇는다. 그중에서도 음악을 전면으로 다룬 <브라더 오브 슬립>은 대표작으로 꼽힐 만하다.
 
오르간의 장엄한 소리에, 또 천재적 재능을 지닌 이의 주체할 수 없는 열망에 흠뻑 젖어볼 수 있는 영화다. 한국에선 만나기 어려운 독일 영화지만 네이버 시리즈온 등 OTT 서비스업체가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점도 반갑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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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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