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들은 연예인은 아니지만 대중들에게 이름이 노출되는 직업적 특성상 이런 저런 별명이 만들어 지기도 한다. 현재 로버트 패틴슨, 마크 러팔로 등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8번째 장편영화 <미키17>을 촬영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초창기 별명은 바로 '봉테일'이었다. 영화 속에서 관객들이 쉽게 찾아내기 힘든 의미를 가진 디테일한 장면들을 잘 숨겨두는 특징이 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2011년 <부당거래>, 2015년 <베테랑>, 2021년 <모가디슈>로 청룡영화상에서만 3번이나 감독상을 수상한 류승완 감독도 초창기에는 '충무로의 액션키드'라는 별명이 따라 다녔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해 유독 액션장르의 영화를 잘 만든다는 의미였다. 물론 류승완 감독 본인은 자신이 연출할 수 있는 장르를 액션으로만 규정하는 거 같다는 이유로 그 별명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실제로 류승완 감독은 2010년 <부당거래>를 기점으로 액션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연출하며 '액션키드'의 이미지를 많이 씻어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의 초기작들을 보면 액션에 대한 그의 진심과 애정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류승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상업영화이자 한국형 도시무협의 진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이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부당거래>가 나오기 전까지 류승완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부당거래>가 나오기 전까지 류승완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었다. ⓒ 시네마 서비스

 
여전사 캐릭터에 특화된 여성배우

고등학생 시절이던 2001년 패션잡지 모델로 데뷔한 윤소이는 2004년 김래원과 염정아 주연의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에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영화사 신입사원 서영채를 연기하며 무명생활 없이 곧바로 주연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윤소이의 첫 번째 주연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가 종영된 지 보름이 지난 4월 30일, 그녀가 주연을 맡은 첫 번째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개봉했다.

윤소이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자운(안성기 분)의 외동딸이자 '아라치' 의진을 연기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촬영 당시 윤소이는 연기경험이 거의 없었던 신인이었지만 영화 속 많은 액션연기들을 직접 소화하는 열연을 펼쳤다. 류승범과 윤소이가 현란한 액션연기를 선보인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전국 200만 관객을 모으며 준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아라한 장풍대작전>으로 인지도가 부쩍 올라간 윤소이는 2005년 두 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4월에는 정준호와 함께 출연한 코미디 영화 <역전의 명수>가 개봉했고 11월에는 이서진, 신현준 등과 함께 출연한 무협영화 <무영검>을 선보였다. 하지만 <역전의 명수>와 <무영검> 모두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고 윤소이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이어 <무영검>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여전사' 이미지가 더욱 굳어지고 말았다.

실제로 윤소이는 2009년 <히어로>와 2011년 <무사 백동수>, 2013년 <아이리스2> 등에서 비슷한 이미지의 역할을 맡았다. 2015년에는 <무사 백동수>에 함께 출연했던 신현빈과 범죄스릴러 <어떤 살인>에서 또 한 번 형사를 연기했지만 전국 관객 1만 7000명으로 흥행 참패했다. 2016년 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 이후 약 2년간 공백을 가졌던 윤소이는 2017년 동갑내기 뮤지컬배우 조성윤과 결혼했다.

결혼 후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윤소이는 2018년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에서 반전의 키를 쥐고 있는 '히든악녀' 서강희를 연기하며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2019년에는 KBS 일일드라마 <태양의 계절>에서 다시 착한 여주인공 윤시월 역을 맡았다. 2021년 딸을 출산한 윤소이는 올해 이유리, 이민영과 함께 TV조선의 토요 드라마 <마녀는 살아있다>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화끈한 무협액션과 유쾌한 코미디의 만남
 
 류승범(오른쪽)과 윤소이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많은 액션장면들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류승범(오른쪽)과 윤소이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많은 액션장면들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 시네마 서비스

 
사실 한국의 액션영화는 리얼리티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대낮에 조직폭력배들이 칼을 휘두르며 상대조직과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이해해도 엄청난 수련을 쌓은 고수가 도심 한복판에서 장풍을 쏘는 장면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대놓고 '도시무협'을 표방한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는 오프닝 장면부터 의진(윤소이 분)이 소매치기에게 장풍을 쏘다가 뒤따라오던 상환(류승범 분)이 대신 맞는 황당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품행제로> 등 여러 작품에서 실감나는 양아치 연기를 선보였던 류승범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정의감 넘치지만 힘은 약한 파출소 순경 상환을 연기했다(실제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에서 류승범의 배역 이름은 모두 상환이었다). 류승범은 어리바리하고도 능청스런 캐릭터 상환이 많은 수련을 통해 '마루치'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장르가 '도시무협'인 만큼 류승완 감독은 액션장면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 물론 상환과 흑운(정두홍 분)의 마지막 액션장면이 지나치게 길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은 영화 내내 이어지는 액션 장면들을 매우 흥미롭게 연출했다. 물론 관객들이 가장 통쾌하게 느낀 액션장면은 초반 상환을 구타했던 깡통(안길강 분) 패거리에게 시원하게 복수하는 고깃집 액션이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는 도인들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지만 의진의 대사를 통해 '생활 속 도인'들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철학(?)도 담아냈다. 의진은 은행강도를 때려잡은 용감한 창구여직원과 무거운 냉장고를 혼자 짊어진 이삿짐센터 직원, 3, 4개의 무거운 쟁반을 머리에 이고 배달을 다니는 식당 아주머니 등을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해 자기도 모르게 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류승완 감독은 '액션키드'라는 닉네임에 부담을 느낀 탓인지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차기작으로 복싱을 소재로 한 휴먼드라마 <주먹이 운다>를 연출했다. <주먹이 운다> 공개 후 류승완 감독이 '액션장인'의 길을 걸어주길 기대했던 일부 관객들은 실망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2006년 본인이 연출은 물론 직접 주연까지 맡은 정통 액션 영화 <짝패>를 선보이며 액션팬들의 아쉬움을 다시 환호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어색한 연기 만회한 우아한 액션들
 
 정두홍 무술감독은 격이 다른 화려한 액션연기로 부족한 연기의 아쉬움을 지워 버렸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격이 다른 화려한 액션연기로 부족한 연기의 아쉬움을 지워 버렸다. ⓒ 시네마 서비스

 
한국최고의 무술감독으로 불리면서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챔피언>,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등을 통해 연기도 병행하던 정두홍 무술감독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영화의 빌런 흑운을 연기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정두홍 무술감독이 연기를 잘하는 편은 아닌지라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도 어색한 연기를 지적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두홍 감독은 다소 아쉬운 연기를 '격이 다른 액션'을 통해 만회했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의진의 아버지이자 현대의 칠선 중 가장 후배인 자운을 연기했다. 마루치와 아라치가 갖고 있어야 할 열쇠를 오랜 세월 동안 떠맡고 있다가 의진의 장풍을 맞고 기절한 상환에게서 마루치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발견하고 상환의 스승을 자처한다. 자운은 영화 후반 흑운을 설득하다 실패하고 '주화입마'에 빠지게 되는데 마음의 소리로 상환에게 말을 걸다가 "방송실에 계세요?"라는 명대사(?)를 듣는다.

지금은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서 정겨운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중후한 목소리의 배우 윤주상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상환을 가르치는 또 한 명의 스승 무운 역을 맡았다. 상환과 의진에게 열쇠를 물려준 것은 자운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두 사람(특히 상환)에게 실전무도를 가르친 인물은 바로 무운이었다. 하지만 무운은 흑운이 찾아왔을 때 맞서 싸우다가 위험에 빠진 상환 대신 흑운의 검에 찔려 절명한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히로인 의진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자유자재로 뛰어넘고 가벼운 머리끈 하나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을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무공이 뛰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유독 장풍의 방향은 잘 맞추지 못하는 약점이 있는데 영화 막판에도 장풍을 쏘다가 상환의 후배가 맞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때 의진의 장풍에 맞고 쓰러진 인물이 바로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카메오로 출연한 배우 봉태규였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 류승완 감독 윤소이 류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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