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순위에서 여성배우 3위에 선정된 고 오드리 헵번은 사후 30년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여성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사실상 첫 주연작이었던 <로마의 휴일>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배우로 떠오른 헵번은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세기의 연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오드리 헵번은 1989년 <영혼은 그대 곁에>를 끝으로 배우 활동을 접었지만 은퇴 후 유니세프 대사로 인권운동과 자선사업 활동에 참가하며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특히 1992년에는 암투병 중임에도 소말리아에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노년이 더욱 아름다운 배우'로 극찬을 받았다. 현재도 유니세프 본사 앞에는 헵번의 봉사와 희생정신을 기린 "The Spirit of Audrey"라는 이름의 동상이 서 있다.

이처럼 오드리 헵번이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세기의 연인으로 인기를 누리던 시절, 헵번과는 다른 섹시한 매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가 있었다. 바로 짧지만 굵게 세상을 살다 간 마릴린 먼로가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이 되던 지난 2011년 한 여성배우에 의해 마릴린 먼로가 부활했다. 미셸 윌리엄스에 의해 재탄생한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이었다.
 
 미셸 윌리엄스는 세계 최고 섹시스타 마릴린 먼로의 50주기에 영화를 통해 대선배의 전성기 시절로 변신했다.

미셸 윌리엄스는 세계 최고 섹시스타 마릴린 먼로의 50주기에 영화를 통해 대선배의 전성기 시절로 변신했다. ⓒ 싸이더스

   
거장들이 선호하는 연기파 여성배우

미국 몬태나주에서 태어난 윌리엄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여러 작품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하며 배우생활을 시작했고 1998년 케이티 홈즈와 함께 출연한 드라마 <도슨의 청춘일기>에서 젠 린들리 역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2003년 선덴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스테이션 에이전트>에 출연한 윌리엄스는 <홀 인 원> <상상 속의 영웅들> <박스터> 등을 통해 착실히 필모그라피를 쌓아갔다.

윌리엄스가 본격적으로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린 작품은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고 히스 레저가 연기한 에니스의 아내 알마 역을 맡은 윌리엄스는 남편이 동성애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섬세한 감정을 연기하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윌리엄스는 2008년 <더 클럽>, 2010년 <셔터 아일랜드>에 출연하며 연기 잘하는 여성배우로 인정 받았다.

윌리엄스는 지난 2011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이먼 커티스 감독의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에 출연했다. 윌리엄스는 여전히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스타 마릴린 먼로로 완벽하게 변신했고 1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영화는 3500만 달러의 쏠쏠한 수익을 남겼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열연을 펼친 윌리엄스는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을 통해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 이후 할리우드에서 인지도가 더욱 올라간 윌리엄스는 2013년 4억 93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린 샘 레이미 감독의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에서 오즈의 세 마녀 중 한 명인 글린다를 연기했다. 2016년에는 각본가 출신의 케네스 로너건 감독이 만든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랜디 역을 맡아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이안 감독과 토트 헤인스, 마틴 스콜세지, 리들리 스콧 같은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했던 윌리엄스는 찰리 카우프만과 케네스 로너건 같은 작가 겸 감독들에게도 러브콜을 받는 배우다. 이처럼 다양한 색깔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 인정 받는 윌리엄스는 2017년 휴 잭맨과 함께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에 출연했고 2018년과 작년에는 안티 히어로 영화 <베놈1, 2>에서 에디 브록(톰 하디 분)의 전 약혼자이자 변호사 앤 웨잉을 연기했다.

마릴린 먼로로 완벽 변신한 미셸 윌리엄스
 
 미셸 윌리엄스와 에디 레드메인은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 이후 더욱 좋은  배우로 성장했다.

미셸 윌리엄스와 에디 레드메인은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 이후 더욱 좋은 배우로 성장했다. ⓒ 싸이더스

 
사실 윌리엄스는 할리우드 여성 배우 특유의 화려함보다는 털털하고 소박한 이미지가 강한 배우로 그동안 일상을 다루는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알려진 배우였다. 따라서 윌리엄스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섹시한 배우로 꼽히는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관객들은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던 게 사실이었다. 그만큼 미셸 윌리엄스와 마릴린 먼로 사이에는 공통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된 이후 미셸 윌리엄스와 마릴린 먼로의 '싱크로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윌리엄스가 외모는 물론이고 말투와 걸음걸이, 그리고 작은 습관까지도 마릴린 먼로로 완벽하게 변신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마릴린 먼로를 완벽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자신이 촬영장에서 도망갈 것을 우려해 자신의 여권을 사이먼 커티스 감독에게 맡겼을 정도로 열정을 다해 배역에 몰입했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은 영화 <왕자와 무희> 촬영을 위해 영국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가 촬영장에서 만난 조감독 콜린(에디 레드메인 분)과 보낸 비밀스런 일주일을 다룬 영화다. 실제로 <왕자와 무희>의 조감독이자 마릴린 먼로와 일주일 간의 비밀 로맨스를 나눴던 콜린 클락은 훗날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작가로 활동했고 마릴린 먼로와의 추억을 담은 회고록 <왕자와 무희, 그리고 나>를 출간하기도 했다.

영화가 개봉할 때만 해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남자 주인공 콜린 역의 에디 레드메인은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 이후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했다. 2014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레드메인은 2015년 <대니쉬걸>에서는 완벽한 트랜스젠더 연기로 극찬을 받았다. 레드메인은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에서 뉴트 스캐맨더 역을 맡아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던 사이먼 커티스 감독은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을 연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커티스 감독은 2017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 퀸으로 유명한 마고 로비 주연의 <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을 연출해 밀 밸리 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금상을 수상했다. 2020년에는 케빈 코스트너와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가족 드라마 <레이싱 인 더 레인>을 만들었다.

헤르미온느가 조연으로 나오는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은 엠마 왓슨이 <해리포터>시리즈를 끝내고 가장 먼저 선택한 영화였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은 엠마 왓슨이 <해리포터>시리즈를 끝내고 가장 먼저 선택한 영화였다. ⓒ 싸이더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답게 작품 속에서 실제 유명 감독이나 배우가 많이 등장한다.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한 로렌스 올리비에는 영국의 유명 배우 겸 감독으로 <왕자와 무희>의 실제 감독이자 주연배우였다. 영화 속에서는 마릴린 먼로와 잦은 의견충돌을 일으키는 등 다소 까탈스런 성격으로 그려지지만 촬영을 마치고 영화의 완성본을 보면서 마릴린 먼로의 진짜 매력을 발견한다.

영화에서는 마릴린 먼로와 콜린 클락이 있는 촬영장으로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의 아내가 방문한다. 올리비에 감독의 아내는 바로 레전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하며 일약 세계적인 배우가 된 1940년대 할리우드의 아이콘 비비안 리였다. 줄리아 오몬드가 연기한 비비안 리는 선배배우로서 자신의 남편인 올리비에 감독의 호통에 의기소침한 마릴린 먼로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해준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에는 미셸 윌리엄스와 에디 레드메인 외에도 할리우드에서 유명해진 배우가 2명이나 더 출연한다. 콜린은 마릴린 먼로와 사랑에 빠지기 전, 먼로보다 먼저 의상팀의 루시라는 여인과 '썸'을 탄다. <미랄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에서 콜린과 썸을 타는 <왕자와 무희> 의상팀의 루시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헤르미온느, 실사판 <미녀와 야수>에서 벨을 연기했던 영국배우 엠마 왓슨이다.

마릴린 먼로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답게 일거수일투족을 매니저에게 철저하게 통제·관리를 받는다. 먼로의 매니저 밀턴 그린은 먼로에게 흑심을 품은 듯한 콜린에게 "나도 먼로와 '썸'을 탄 적 있지만 딱 일주일 뿐이었다"며 현실적인 충고를 해준다. 마릴린 먼로의 열정적인 매니저 밀턴을 연기한 배우는 <맘마 미아>에서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분)의 약혼자 스카이, <캡틴 아메리카>에서 하워드 스타크를 연기했던 도미닉 쿠퍼였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 사이먼 커티스 감독 미셸 윌리엄스 에디 레드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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