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할리우드는 '시리즈 영화 전성시대'다. 실제로 미국의 역대 흥행순위 탑10을 살펴 보면 시리즈 영화가 무려 9편이나 포함돼 있다. 미국 역대 흥행순위 탑10에서 시리즈 영화가 아닌 작품은 7위에 올라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뿐이다. <타이타닉>을 제외한 나머지 9개 작품은 모두 한창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거나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역사를 이어온 시리즈 영화들이다. 

사실 시리즈 영화들은 자리만 잘 잡으면 이야기를 이어가기가 매우 수월하다. 이미 주요 인물들의 특징이 관객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에피소드만 만들어내면 어렵지 않게 새로운 시리즈를 연결해 나갈 수 있다. <스타워즈>처럼 세계관을 확장하기에도 좋고 <스파이더맨>과 <배트맨> <조커>처럼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를 '리부트'라는 이름으로 재해석해도 (잘만 만들면) 관객들은 큰 불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공적인 시리즈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첫 편을 잘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첫 편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시리즈 영화는 생명력을 얻지 못하고 쓸쓸히 잊히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자동차 액션'이라는 액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장면을 전면에 끄집어 낸 <분노의 질주>는 첫 편을 통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덕분에 오늘날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시리즈 영화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분노의 질주>는 액션영화의 '양념'이었던 카체이싱을 정면으로 끄집어낸 영화다.

<분노의 질주>는 액션영화의 '양념'이었던 카체이싱을 정면으로 끄집어낸 영화다. ⓒ UIP코리아

 
교통사고로 세상 떠난 <분노의 질주> 대표얼굴

지난 2013년 만 40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폴 워커는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아역배우로 데뷔해 TV시리즈에 출연하며 활동했다. 1986년 호러 영화 <공포의 실로폰>에 출연해 관객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워커는 1990년대까지 작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관객들을 사로잡을 대표작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영원한 유망주'로 남는 듯했던 워커는 2001년 드디어 그의 배우생활을 바꾼 '인생작' <분노의 질주>를 만났다.

워커는 <분노의 질주>에서 범죄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카레이싱 조직에 잠입한 형사 브라이언 오코너 역을 맡아 시원한 자동차 액션과 매력적인 외모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38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분노의 질주>는 세계적으로 2억 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고 오늘날 한 편의 외전을 포함해 무려 10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진 인기시리즈물로 자리 잡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분노의 질주>를 통해 인지도가 급상승한 워커는 <타임라인>과 <블루스톰> <러닝 스케어드>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지만 하나 같이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다. 2003년 <패스트&퓨리어스2>에 출연 후 3편 <패스트&퓨리어스3: 도쿄 드리프트>에 출연하지 않았던 워커는 2009년 시리즈의 4편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을 통해 다시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복귀했다. 그리고 <더 오리지널>은 세계적으로 3억 6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그렇게 워커는 <분노의 질주> 터줏대감 빈 디젤, 5편부터 새로 합류한 드웨인 존슨과 함께 <분노의 질주>를 상징하는 배우로 활약하며 6편까지 흥행시켰다. 하지만 워커는 2013년 11월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필리핀을 돕기 위한 자선행사에 참가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직 프로레이서인 친구가 운전한 차가 사고가 나면서 현장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워커는 <본노의 질주: 더 세븐>을 촬영하고 있었다.

제작진은 고민 끝에 폴 워커의 두 형제를 캐스팅해 남은 분량을 촬영했고 음성을 CG로 합성해 브라이언을 부활시켰다. 그렇게 개봉한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은 세계적으로 15억 1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으로 현재까지 <분노의 질주> 시리즈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특히 폴 워커와 빈 디젤이 나란히 차를 몰고 가다가 교차로에서 헤어지는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엔딩 장면은 전 세계 많은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66억 달러 흥행에 빛나는 인기 시리즈
 
 폴 워커는 <분노의 질주> 7편 촬영 도중 교통사고로 만 40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폴 워커는 <분노의 질주> 7편 촬영 도중 교통사고로 만 40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 UIP 코리아

 
사실 '카 체이스'로 불리는 자동차 액션은 격투, 총격전과 함께 현대액션영화의 3대 볼거리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액션 영화의 필수요소이다. 실제로 1980년대부터 <매드맥스2>와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 <더 록> 등 화려하고 스케일 큰 카 체이스 장면으로 관객들을 사로 잡은 영화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특히 마이클 베이 감독은 <더 록> 외에도 <나쁜 녀석들>과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 화려한 카 체이스 장면을 보여주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분노의 질주>는 그동안 '액션 영화의 양념' 정도로 사용되던 카 체이스를 영화 전면에 내세운 실질적인 첫 번째 영화였다. 터프하고 마초적인 남성 캐릭터들과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해 런닝 타임 내내 화려한 자동차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에 관객들은 신선한 재미를 느꼈다(국내에서는 드웨인 존슨이 출연하기 시작한 5편 <언리미티드>부터 <분노의 질주>가 본격적으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엄청난 인기시리즈가 됐지만 사실 <분노의 질주>는 폴 워커가 하차했던 3편 <도쿄 드리프트>가 8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 5800만 달러의 아쉬운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사실 <도쿄드리프트>는 6편 <더 맥시멈> 이후의 시간대를 다룬 '스핀오프'에 가깝다). 하지만 폴 워커가 복귀한 4편 <더 오리지널>이 제작비의 4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분노의 질주>시리즈는 극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화려한 카 체이스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분노의 질주> 1편의 최고 명장면은 역시 영화 후반 도미닉(빈 디젤 분)과 브라이언(폴 워커 분)이 철길에서 드래그 레이스(단거리에서 가속을 겨루는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 장면이다. 도미닉과 브라이언은 멋진 대결을 선보이지만 경찰의 추격이 이어지자 도미닉은 자포자기한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도미닉에게 자신의 차키를 건네주며 "너에게 10초짜리 차량을 빚졌잖아"라는 명대사를 날린다.

<분노의 질주>는 배우들의 로테이션(?)이 잘 돌아간 대표적인 시리즈로 꼽힌다. <더 맥시멈>에서 첫 등장한 제이슨 스타뎀은 <더 세븐>과 <더 익스트림>을 거쳐 스핀오프 <옵스&쇼>까지 출연하며 워커의 부재로 허전했던 시리즈의 무게감을 유지했다. 루크 홉스 역의 드웨인 존슨이 빈 디젤과의 불화로 하차를 선언한 후 작년에 개봉한 <분노의 질주:더 얼티메이트>에는 드웨인 존슨을 이은 프로레슬링 스타 존 시나가 존슨의 자리를 대신했다.

격투기 챔피언들과 싸우는 여전사 전문배우
 
 1편에서 조·단역에 불과했던 미셀 로드리게스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비중이 점점 커진다.

1편에서 조·단역에 불과했던 미셀 로드리게스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비중이 점점 커진다. ⓒ UIP코리아

 
<분노의 질주>에는 식당을 운영하는 도미닉의 여동생이 브라이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트리플X 빈 디젤과 WWE챔피언 존 시나를 오빠로 두고 있는 조다나 브루스터가 연기한 미아 토레토가 그 주인공이다. 브라이언과 미아는 드라이빙 데이트를 즐기며 사랑에 빠지지만 브라이언이 잠복경찰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자 미아는 큰 배신감을 느낀다. 브루스터는 <더 익스트림>에서 하차했다가 작년 <더 얼티메이트>를 통해 시리즈에 복귀했다.

<분노의 질주1>에서는 브라이언과 미아의 이야기가 더 자세히 다뤄지지만 사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진정한 히로인은 도미닉의 연인 레티 오티즈를 연기한 미셀 로드리게스다. 1편에서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주인공의 여자친구 포지션이었지만 레티는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진화'를 거듭한다. 특히 6편에서는 지나 카라노, 7편에서는 론다 로우지 같은 격투기 챔피언 출신의 파이터들과 대결하며 화려한 액션연기를 선보였다.

지난 2000년 선덴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독립영화 <걸파이트>로 데뷔한 로드리게스는 <분노의 질주>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 후 <레지던트 이블>과 < S.W.A.T. 특수기동대 > 등 액션 영화에 많이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로드리게스는 2009년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에 지원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열혈 군인 트루디 차콘을 연기하며 여전사 이미지가 더욱 굳어졌다.

<분노의 질주>에서 악역 자니 트란을 연기한 배우는 한국계 릭 윤이었다. 뭔가 그럴 듯한 사연을 가진 매력적인 빌런이 아닌 온갖 나쁜 짓을 일삼다가 도미닉과 브라이언에게 비참하게 응징을 당하는 역할이었다. 릭 윤은 <분노의 질주>에 이어 < 007 어나더데이 >에서 북한 출신의 악역, <닌자 어쌔씬>에서 비가 연기한 라이조와 대립하는 타케시를 연기하는 등 영화 속에서 주로 동양인 악역 연기를 많이 맡았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분노의 질주 롭 코헨 감독 폴 워커 빈 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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