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일본의 입식 격투기 단체 K-1에 진출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은 그 해 3월에 열린 서울대회에서 카쿠다 노부아키와 아케보노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거구들을 꺾고 결승에 진출한 최홍만이 그랑프리 파이널을 향한 마지막 관문에서 만난 상대는 많아 봐야 약 80kg 내외로 밖에 보이지 않는 태국 파이터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이었다. 당시 카오클라이는 누가 봐도 최홍만을 밀어주기 위한 제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홍만은 3라운드 내내 신장도 한참 작고 체중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던 카오클라이를 쓰러트리지 못했다. 물론 카오클라이 역시 신장이 큰 최홍만의 턱과 안면에 정타를 날리지 못하고 판정으로 패했지만 한창 기세를 올리던 최홍만에게 KO 당하지 않으면서 만만치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알고 보니 카오클라이는 1년 전 데니스 강과 마이티 모를 KO로 제압하며 일약 K-1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무에타이 고수였다.

한국에 태권도, 러시아에 삼보, 브라질에 주짓수가 있는 것처럼 태국에는 무에타이라는 고유의 전통무술이 있다. 펀치와 팔꿈치,다리,무릎 등 신체 여러 부위를 고루 활용하는 데다가 실전활용도가 높아 많은 종합격투기 파이터들이 타격능력을 키우기 위해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난 2004년에는 무에타이 파이터가 주인공으로 나온 액션영화 <옹박>이 개봉해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토니 자의 열연 덕에 태국의 전통무술 무에타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토니 자의 열연 덕에 태국의 전통무술 무에타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옹박>과 태국 무에타이를 상징하는 배우

어린 시절부터 무에타이 훈련을 받으면서 배우의 꿈을 키워 오던 토니 자는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영화 현장에서 심부름과 요리 등을 하는 스텝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1997년 <모탈컴뱃2>에서 스턴트 배우로 참여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액션 영화에 출연하던 토니 자는 2003년 <옹박: 무에타이의 후예>에서 주인공 팅을 연기하며 본격적으로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토니 자는 이소룡과 성룡,이연걸 등 관객들에게 익숙한 중국 무술 기반의 액션과는 또 다른 종류의 무에타이를 베이스로 한 현란한 스턴트 액션을 선보였다. <옹박>은 세계적으로 20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고 국내에서도 2004년5월에 개봉해 전국 40만 관객을 동원했다(박스오피스 모조,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무엇보다 <옹박>과 토니 자는 관객들에게 낯설었던 태국영화와 무에타이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토니 자는 <옹박>에 출연한 이후 <옹박>을 상징하는 배우로 우뚝 섰다. 실제로 2004년에 개봉한 <보디가드>라는 영화는 토니 자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옹박3>라는 제목이 붙었고 2005년 <똠양꿍>이라는 영화는 국내에 개봉하면서 <옹박: 두 번째 미션>이라는 제목이 붙었다(물론 <옹박>과는 무관한 영화다). 심지어 2009년 토니 자가 출연하지 않은 <레이징 피닉스2>라는 영화에도 '여자 옹박의 귀환'이라는 엉뚱한 부제가 붙기도 했다.

토니 자가 주연과 각본,감독,무술감독까지 맡은 <옹박>의 정식속편은 정작 국내에서 는<옹박2>가 아닌 <옹박:더 레전드>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2011년 국내에서 <옹박: 마지막 미션>으로 개봉한 <옹박3>에 출연한 토니 자는 2013년 돌프 룬드그렌과 함께 <어 맨 윌 라이즈>를 찍은 후 미국에 진출했다. 성룡과 이연걸이 미국 활동을 중단한 상태에서 토니 자는 그들의 대안이 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인물이었다.

2017년 홍콩액션배우 견자단과 함께 <트리플 엑스 리턴즈>에 출연한 토니 자는 2020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만들었던 폴 앤더슨 감독의 <몬스터 헌터>에 출연해 밀라 요보비치와 연기호흡을 맞췄다. 어느덧 <옹박>을 선보인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20대였던 토니 자도 4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토니 자는 여전히 많은 관객들에게 <옹박>과 태국 무에타이를 상징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

마을의 보물이 사라졌는데 왜 한 명만 보냈지?
 
 토니 자는 <옹박>에서 CG와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는 고난도의 맨몸 액션을 선보였다.

토니 자는 <옹박>에서 CG와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는 고난도의 맨몸 액션을 선보였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사실 <옹박>의 첫 광고카피는 "이소룡은 죽었다. 성룡은 늙었다. 이연걸은 약하다."였다. 세상을 떠났거나 전성기가 지난 1970~1990년대의 액션 영웅들을 살짝 디스하면서 새로운 액션 히어로의 등장을 강조하기 위한 광고였다. 사실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고인이 된 이소룡을 디스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옹박>의 카피는 최종적으로 "CG는 없다. 와이어는 가라. 스턴트는 거부한다"로 바뀌었다.

사실 '노CG, 노 와이어 액션'은 지금까지 성룡의 전유물이었지만 토니 자는 <옹박>을 통해 8~90년대의 성룡도 미처 해내지 못했던 고난도의 액션들을 대거 선보였다. 실제로 <옹박>에는 80년대 성룡의 <프로젝트A>나 <용형호제> 같은 영화에서 자주 나오던 '슬로 모션 3회 반복' 같은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2000년대의 촬영기법으로는 다소 유치해 보이지만 그만큼 토니 자와 <옹박> 제작진은 힘든 장면을 '생'으로 촬영해 카메라에 담아냈다.

<옹박>이라는 말 자체가 배우 토니 자의 닉네임처럼 됐지만 사실 영화 속에서 옹박은 토니 자가 연기한 팅의 고향마을에서 섬기는 불상이름이다. <옹박>은 문화재를 밀수하는 범죄자가 불상을 훔쳐가고 팅이 불상을 찾으러 도시로 간다는 심플한 스토리의 영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을의 보물이 사라졌는데 왜 한 사람만 보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영화 도입부에는 분명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무에타이를 수련하는 장면이 나온다).

 태국에서 촬영된 영화이다 보니 태국을 소개하는 장면들도 자주 보인다. 실제로 <옹박>에는 '방콕의 이태원'이라 불리는 여행객들의 성지 '카오산로드'가 몇 차례에 걸쳐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그리고 중간에는 태국에서 2-3인승 소형택시로 운행되는 삼륜차 '뚝뚝'을 이용한 추격장면도 나온다. 고급차량들이 대거 등장하는 할리우드의 화려한 자동차 추격장면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 없지만 나름 심혈을 기울여 찍은 <옹박>의 화려한 볼거리다.

아트디렉터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프라챠 핀카엡 감독은 2003년 <옹박>의 각본과 감독,제작을 맡으며 데뷔했다. 2008년 <초콜릿>으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아시아영화상을 수상한 핀카엡 감독은 2011년 미국에서 <엘리펀트 화이트>를 연출했다. 핀카엡 감독은 액션 전문감독 이미지가 강하지만 2016년 멜로영화<러브비트>, 2019년 공포물<시스터즈>를 만드는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팅의 고향친구 연기한 코미디언 겸 배우
 
 중반까지 인간쓰레기 같은 행동만 일삼던 험래(오른쪽)는 후반부 팅의 조력자로 옹박을 찾는데 큰 도움을 준다.

중반까지 인간쓰레기 같은 행동만 일삼던 험래(오른쪽)는 후반부 팅의 조력자로 옹박을 찾는데 큰 도움을 준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옹박을 되찾기 위해 도시로 온 팅은 승려가 되기를 거부하고 도시로 나와 살고 있는 고향친구 험래를 만난다. 반갑지 않은 고향친구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험래는 팅이 많은 여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팅의 돈을 훔쳐 도박에 탕진한다. 하지만 팅과 험래는 많은 모험을 함께 하며 동고동락하고 험래는 결정적인 순간 팅의 목숨을 구하고 갱단의 두목과 함께 무너진 대형불상에 깔려 숨을 거둔다.

<옹박>에서 비장하게 숨을 거두는 험래를 연기한 페치타이 웡캄라오는 2004년에 개봉한 <보디가드>에서 각본과 감독,주연을 모두 소화하는 다재다능함을 보였다. 웡캄라오는 태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겸 배우로 2007년 <보디가드2>,2011년 <레이징 피닉스2: 여자 옹박의 귀환>을 만들며 영화 쪽에서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토니 자와는 6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며 뛰어난 연기호흡을 과시했다.

지난 2005년에는 토니 자를 닮은 개그맨 조지훈이 <개그콘서트-봉숭아학당>에서 '옹박'이라는 캐릭터로 출연해 '열라뽕따이'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토니 자 역시 지난 2005년 <옹박:두 번째 미션> 홍보차 내한했을 때 <개그콘서트>에 직접 출연해 무대에서 멋진 액션장면을 선보이며 관객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물론 천하의 토니 자도 마무리 멘트는 여지없이 '열라뽕따이'였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옹박 프라챠 핀카엡 감독 토니 자 페치타이 웡캄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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