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크게 성공한 후 충무로에서는 너도나도 10대 청소년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하이틴 영화들이 우후죽순 제작됐다. 실제로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던 최수종 외에도 허석(현 김보성), 김민종,이종원, 이미연, 하희라, 고 최진실-최진영 남매, 신윤정 등 많은 젊은 배우들이 청춘영화에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과 <나의 소녀시대>로 대표되는 대만의 하이틴 멜로 영화들 역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영화를 즐기는 북미에서는 특정 연령대의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할리우드 시장 전체를 주도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쉬 즈 더 맨> <왓 어 걸 원츠> <프린세스 다이어리>, <브링 잇 온> 등 10대들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들은 꾸준히 만들어져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할리우드 하이틴 영화들의 특징은 경쾌한 진행에 있다. 물론 대놓고 코미디를 추구하진 않지만 하이틴 영화들은 주 고객인 10대 관객들이 지루해 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코믹 요소를 많이 넣는다. 린제이 로한이 순진한 전학생, 할리우드의 대표 '로맨스퀸' 레이첵 맥아담스가 악녀, 인형 같은 미모의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단역에 가까운 조연으로 출연한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할리우드 하이틴 영화의 공식을 잘 지킨 대표적인 작품이다.
 
 17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세계적으로 1억2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17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세계적으로 1억2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UIP 코리아


아역배우 출신의 린제이 로한은 1998년 <페어런트 트랩>에서 1인2역을 야무지게 소화하며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 개봉 당시엔 할리우드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린제이 로한은 어린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많은 부와 명예, 그리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어긋나고 말았다. 

로한은 온갖 약물 스캔들과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2015년에는 뜬금없이 2020년 미국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물론 1986년생 로한은 2020년에도 만 34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미 대선에는 출마할 수 없었다).

로한이 젊은 나이에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 있는 반면 1978년생 레이첼 맥아담스는 배우로서 비교적 무난한 행보를 걸어 왔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맥아담스는 피겨 스케이트 선수로 활동하다가 중학교 때부터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캐나다의 요크대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 후 2003년 코미디 영화 <핫칙>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중들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멜로 영화 <노트북>이었다. 이 작품으로 멜로 배우로서 존재감을 보인 맥아담스는 <우리, 사랑해도 되나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 <미드나잇 인 파리>, <서약>, <어바웃 타임> 등 멜로 영화에서 강세를 보였다.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크리스틴 팔머를 연기했던 맥아담스는 작년 넷플릭스 영화 <유로피언 송 콘테스트>에 출연했고 2022년 개봉예정인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2004년에 개봉한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로한과 맥아담스가 유일하게 함께 출연한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인지도가 더 높았던 로한이 순수한 소녀 케이디를, 신인에 가까웠던 맥아담스가 악녀 레지나를 연기했다. 로한과 맥아담스는 영화 속에서 제법 어울리는 연기 호흡을 보여주지만 이후 전혀 다른 행보를 걸으면서 어떤 작품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군대보다 더욱 엄격한 여자들만의 규율
 
 린제이 로한은 <퀸카로 살아남는 법> 개봉 후 톱스타로 떠올랐지만 각종 사건·사고로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진 못했다.

린제이 로한은 <퀸카로 살아남는 법> 개봉 후 톱스타로 떠올랐지만 각종 사건·사고로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진 못했다. ⓒ UIP 코리아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서 케이디(린제이 로한 분)가 다니는 학교는 남녀공학이지만 여학생들, 특히 소위 '4가지 공주파'로 불리는 악녀 3인방(?) 사이에는 그녀들만의 특별한 룰이 있다.

4가지 공주파에 가입한 케이디는 그레첸(레이시 샤버트 분)으로부터 모임의 규율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수요일엔 핑크색 옷을 입어야 하고 묶은 머리는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엔 진이나 트레이닝복을 입어야 한다는 식이다. 사실 억지스런 규율이지만 모임의 결속력을 위해 이들은 이 규율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케이디는 4가지 공주파의 '여왕벌' 레지나(레이첼 맥아담스 분)를 몰락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뾰루지로 고민하는 레지나에게 강력보습 발크림을 선물하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레지나에게 풋볼 선수들이 몸을 키우기 위해 먹는 고칼로리 영양바를 추천한다. 그렇게 하나씩 레지나의 아성을 무너트린 케이디는 심하게 망가진 레지나를 몰아내고 4가지 공주파의 새로운 여왕벌에 등극한다.

하지만 레지나는 학우들의 험담을 적은 자신의 비밀노트를 케이디가 작성한 것으로 몰고 가고 이 때문에 학교는 난장판이 된다. 결국 선생님이 나서 여학생들의 공개사과 자리를 마련해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하지만 레지나는 학교 앞 차도에서 케이디에게 화를 내다가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물론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코미디 요소가 강한 하이틴 영화이기 때문에 뜬금없이 레지나가 죽는 비극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퀸카가 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학교생활의 불행으로 이어졌다는 걸 깨달은 케이디는 선생님과 학우들에게 사과하고 수학경시대회에 출전해 학교를 우승으로 이끈다. 그리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온 케이디는 학교의 퀸으로 선정됐고 부상으로 받은 '플라스틱 왕관'을 쪼개 학우들과 나눠 갖는다. 적은 제작비로 많은 수익을 올린 가성비 높은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2011년 TV영화로 속편이 제작됐지만 1편 만큼 많은 관심을 받진 못했다.

인기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영화 데뷔작
 
 <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통해 영화로 데뷔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흥행파워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성장했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통해 영화로 데뷔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흥행파워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성장했다. ⓒ UIP 코리아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린제이 로한과 레이첼 맥아담스라는 스타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로한과 맥아담스 못지않은 스타 배우가 등장한다. 바로 커다란 눈망울과 명랑한 캐릭터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그 주인공이다(<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TV드라마의 조·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신인배우 사이프리드의 영화 데뷔작이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레지나가 이끄는 4가지 공주파에서 백치미가 돋보이는 카렌 스미스 역을 맡아 순수한 연기를 보여줬다. 또 한 명의 4가지 공주파 일원인 그레첸이 말 많고 알고 있는 소식들을 주변에 소문내길 좋아하는 수다쟁이 타입이라면 카렌은 특유의 해맑은 표정으로 레지나나 그레첸이 이야기할 때 옆에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무리에서나 반드시 필요한 '리액션 담당'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단역에 가까운 조연이기 때문에 대사가 그리 많지 않지만 역시 아만다가 연기한 카렌은 영화 속에서 다양한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남자에게 차여 울고 있는 레지나에게 눈치 없는 이야길 꺼냈다가 욕을 먹고 자책을 하다가도 주먹이 입에 들어가는 개인기를 선보이려 한다(많은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장면이었지만 케이디는 눈치 없게 카렌을 말린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선천적인(?) 재능을 이용해 훗날 기상캐스터가 된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2008년 <맘마 미아!>에서 메릴 스트립의 딸 소피를 연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디어 존>, <레터스 투 줄리엣>, <레드 라이딩 후드>, <인 타임>, <레미제라블>, <19곰 테드2>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작년 데이빗 핀처 감독의 신작 <맹크>에서 열연을 펼치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라는 '큰 산'을 만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린제이 로한 레이첼 맥아담스 아만다 사이프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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