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부터 2009년 5월까지 SBS에서 방영된 <아내의 유혹>은 '막장극의 교과서'로 불리는 레전드 드라마다. 특히 눈 밑에 점 하나 찍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민소희의 변신은 수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됐을 정도로 크게 화제가 됐다. <아내의 유혹>을 집필하면서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오른 김순옥 작가는 훗날 <왔다!장보리>와 <내 딸, 금사월>,<펜트하우스> 시리즈 등을 통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막장드라마를 관통하는 필수요소는 역시 '불륜'이다. <아내의 유혹>에서도 친구의 남편과 바람난 신애리(김서형 분)에 의해 구은재(장서희 분)의 인생이 파탄 나고 복수심에 불탄 구은재는 민소희로 변신해 전 남편 정교빈(변우민 분)을 유혹한다. '불륜은 불륜으로 갚는다'는 틀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며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특히 우리나라는 불륜에 대한 시선이 차갑고 가혹해서 <아내의 유혹>에 분노하는 시청자들이 더욱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 평생에 다시 없을 운명의 상대를 결혼 후에 만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도덕적 잣대로 생각하면 결혼한 사람이 그런 상상을 하는 것조차 불경스런 일이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알 수 없기에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에 흔들리는 이들 또한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중년의 이혼남과 평범한 가정주부의 짧은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말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세계적으로 1억8000만 달러라는 제작비(2400만 달러) 대비 매우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세계적으로 1억8000만 달러라는 제작비(2400만 달러) 대비 매우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주)영화사 오원

 
'서부극의 아이콘', 멜로에 도전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뛰어난 커리어를 남긴 배우는 아마 수없이 많을 것이다. 물론 그보다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든 감독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감독과 배우를 병행하며 이스트우드만큼 훌륭한 커리어를 만든 인물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적인 부분과 자유분방한 사생활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영화인으로서 이스트우드는 배우와 감독으로 완벽에 가까운 위치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올드 팬들에게 이스트우드는 '서부 영화의 아이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대부터 영화를 시작한 이스트우드는 1960년대 고 세르제 레오네 감독과 함께 그 유명한 무법자 3부작(<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을 통해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 후 이스트우드 감독은 웨스턴 무비의 아이콘이 됐고 1971년에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며 다양한 재능을 뽐냈다. 

1992년 주연과 제작, 연출을 맡은 <용서받지 못한 자>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이스트우드 감독은 1995년 최고의 배우 메릴 스트립과 함께 멜로 드라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선보였다. 서부극의 상징이었던 이스트우드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24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많은 우려 속에도 세계적으로 1억82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

이스트우드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후에 만든 영화들이 연이어 흥행과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슬럼프를 겪었다. 하지만 2004년 이스트우드의 인생작으로 꼽히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4개 부문을 휩쓸며 건재를 과시했다. 힐러리 스왱크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커리어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했고 모건 프리먼 역시 생애 첫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공개했을 때 이미 칠순이 넘었던 이스트우드는 2008년에도 <체인질링>으로 주인공 안젤리나 졸리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렸다. 2014년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2016년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2018년 <라스트 미션>을 차례로 연출하며 노익장을 발휘한 이스트우드는 올해 10월 은퇴작이 될 확률이 높은 신작 <크라이 마초> 개봉을 앞두고 있다.

너무 늦게 찾아온 '인생의 확실한 감정'
 
 경험이 풍부한 두 노련한 배우는 이혼남과 가정주부의 사랑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아름답고 애틋하게 표현해냈다.

경험이 풍부한 두 노련한 배우는 이혼남과 가정주부의 사랑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아름답고 애틋하게 표현해냈다. ⓒ (주)영화사 오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혼남과 가정주부의 짧은 사랑을 그린 '불륜' 이야기다. 널리 알려진 대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로버트 제임스 윌러가 쓴 동명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미국에서는 37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무려 850만 부가 팔린 인기 소설이다. 국내에서도 70만부가 넘게 팔리며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불륜이라는 금기의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힘이 있었다는 뜻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영화로 만들면서 원작소설의 정서를 최대한 담아내려 애썼다. 특히 정적이면서도 절제된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 분)의 대화와 썰렁하게 끝나버릴 수 있었던 두 사람의 만남에서 수줍게 "저녁 먹고 갈래요?"라고 말하는 프란체스카의 대사 속에는 낯설지만 설레는 중년의 로맨스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속이지 말아요. 당신은 절대로 평범한 여자가 아니니까"라는 로버트의 뻔한 작업멘트에 넘어간 프란체스카는 한밤중에 다리에 로버트를 초대하는 쪽지를 붙인다(그 땐 휴대폰은커녕 삐삐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다). 그리고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동네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사랑을 즐긴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란체스카의 일기를 읽은 자식들은 엄마가 아버지를 놔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며 프란체스카를 원망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운명의 사랑을 만났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박5일뿐. 로버트는 "한 가지 할 이야기가 있소. 누구에게도 다시는 말하지 않을 거요. 당신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라는 명대사를 날리며 프란체스카에게 함께 떠날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착한 남편과 사랑하는 자식들을 떠날 수 없었고 결국 두 사람은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된다.

로버트와의 만남을 애써 지우려 했던 프란체스카는 어느날 비를 맞고 서 있는 로버트를 발견한다. 프란체스카는 문고리를 잡고 고뇌에 빠지지만 눈 앞의 사랑에게 달려가는 대신 책임 있는 이별을 선택한다. 프란체스카는 훗날 세상을 떠나면서 "내 인생을 가족에게 바쳤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 사람에게 주고 싶구나"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헤아린 프란체스카의 자식들은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추억이 있는 다리에 엄마의 유골을 뿌린다.

단순한 스토리를 특별하게 만든 대배우의 명연기
 
 영화 후반부 자동차 문고리를 잡고 고뇌하는 연기는 메릴 스트립이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영화 후반부 자동차 문고리를 잡고 고뇌하는 연기는 메릴 스트립이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 (주)영화사 오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무려 5개 영화제의 감독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3년 후에 만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는 어떤 영화제에서도 감독상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다. 아무래도 잔잔한 멜로는 이스트우드의 전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프란체스카를 연기했던 배우 메릴 스트립이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미국 배우 조합상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이스트우드의 체면을 살렸다.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무려 19번이나 노미네이트돼 3회(여우주연상 2회, 여우조연상 1회)의 수상경력을 가진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메릴 스트립보다 40년이나 먼저 태어난 고 캐서린 햅번 정도만이 그녀의 경력과 비교될 뿐이다(아카데미 12회 후보, 4회 수상). 메릴 스트립은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도 29번이나 후보에 올라 8회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고 칸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 등 국제 영화제의 수상 경력도 대단히 화려하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도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다. 특히 운명의 사랑과 가정 사이에서 고뇌하는 연기나 문고리를 붙잡고 온몸을 파르르 떠는 섬세한 연기는 그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만큼 단연 발군이었다. 메릴 스트립은 작년에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랜스,아리아나 그란데 등과 함께 영화 <돈트 룩 업>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또 다른 주역은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준 다리다. 매디슨 카운티는 아이오아주의 작은 지명 이름으로 프란체스카가 살던 동네였다. 소설과 영화의 흥행 후 이 곳은 관광명소가 됐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2002년 9월 방화로 인해 크게 훼손됐다. 2003년에는 프란체스칸의 집으로 나온 장소도 방화로 인해 불이 났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불을 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아름답게 보존돼야 할 장소가 훼손된 점은 대단히 속상한 일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메릴 스트립 로버트 제임스 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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