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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다음 달부터 친구랑 같이 살기로 했어. 여자야."

서른이 훌쩍 넘은 딸이 신혼 살림을 차리고 싶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친구랑 같이 살겠다니 한숨을 푹 쉬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구실로 엄마를 설득할 수는 있으리라. 여자 둘이 사는 게 덜 위험하대. 집세라도 절반씩 아껴서 돈 모아야지.

마흔이 넘은 여자 둘이 사는 이야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출간된 지 일주일 만에 5쇄를 찍었다는 소문을 듣고(카더라 통신의 진위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커플이 아닌 친구끼리 함께 하기로 약속하다니, 이렇게 혁신적인 가족이 왜 진작 나오지 않았을까? 이들의 동거는 이제까지 친구와 함께 사는 형태와 조금 다르다. 그들의 함께 살기는 한시적인 '자취 생활'이 아니다. 장기적인 '동거'다.

이 책을 집어든 이들 중 열에 하나는 '나도 한 번 그렇게 살아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출산율 급감에 전전긍긍해 하며 대한민국 출산 지도 따위를 만드는 국가는, 이런 가족이 유행이 되지 않을까 불을 켜고 주시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X 황선우, 위즈덤하우스 표지사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X 황선우, 위즈덤하우스 표지사진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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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힘 빼기의 기술> 저자 김하나와 패션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던 황선우가 함께 사는 이야기다. 여자 둘이 룸메이트나 하우스메이트로 같이 사는 것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들의 동거는 조금 다르다.

결혼 전 혹은 취직 전까지 '임시로'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관계로 보인다. 그들이 집을 함께 샀기 때문이다. 집값 비싸다는 망원동에 떡하니 아파트를, 그것도 대출을 끼고 샀단다.

게다가 각자 집에서 두 마리씩, 반려묘 네 마리도 합쳤다. 하쿠, 티거, 고로, 영배다. 주말이면 요리를 잘하는 황선우가 화려한 밥상을 차리고, 청소에 일가견이 있는 김하나가 설거지를 한다. 살림을 합치기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두워 무섭다는 황선우를 위해 김하나가 매번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고 호언했다고 한다.

집을 고를 때도, 볕이 드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황선우를 위해 김하나가 노심초사한 이야기가 나온다. 함께 사는데 어디 무조건 행복한 일만 있을까. 두 사람의 싸움 이야기도 담겼다. 싸움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 서로 힘들어하던 이야기가 나온다. 살림을 합치면서 어떤 물건을 버리냐를 두고도 투닥거린 에피소드도 재밌다.

성별 블라인드를 하고 읽으면 어느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한 일상 에세이와 다르지 않다. 연애 때는 몰랐던 사소한 생활습관의 차이를,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땜질하며 사는 이야기 같다. 둘이 함께 살기 전, 김하나에게 동거를 제안하며 꼬시는 황선우의 이야기는 짐짓 설렘도 준다. 둘이 가구점에 가서 상황극을 하는 걸 보면 < 500일의 썸머 >의 톰과 썸머 같다.

피보다 진한 경제적, 정서적, 물리적 지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X 황선우, 위즈덤하우스 내지 발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X 황선우, 위즈덤하우스 내지 발췌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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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까지 결혼 안 하면 우리 다 같이 사는 거야!"

이십 대 후반, 친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돌아가며 연애의 힘든 점을 토로했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와서 남자친구 욕을 맥주와 함께 들이붓기도 하고, 헤어지고 와서 '사랑 안 해'를 열창하기도 했다. '결혼까지 생각했어'라며 눈물 콧물 다 쏟다가 종내엔 '그냥 우리끼리 살자'며 어깨동무를 했다.

마흔까지 결혼 안 하면 함께 사는 거라 함부로 약속했다. 양평에 땅콩집을 얻어 살자며 시세를 알아본 친구도 있었고, 같이 살면 청소는 걱정 없겠다며 나의 정리벽을 진지하게 평가하던 이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도 하나둘 결혼을 하고, 싱글로 남은 이들조차 이제는 함께 살자는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삼십 대에 들어서고 혼자 산 경력을 웬만큼 쌓고 나서는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최소한의 소품만 지니고 사는 미니멀리스트인데, 상대는 옷걸이가 한두 번쯤 무너지는 게 예사인 패션광이자, 물건을 못 버리는 맥시멈리스트라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재미있게도 이 일들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 나오는 둘의 이야기라는 점. 맥시멈리스트는 황선우, 미니멀리스트는 김하나다. 이들이라고 생활습관이 부러 맞추지 않아도 편안해서 함께 사는 건 아니라는 거다. 아찔함이야 까짓거 지루한 갱년기를 위한 예방책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삐거덕거리는 빈틈을 메꿔주는 아교가 될 테니 말이다.

나이 들고 함께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면서 나름의 강점을 얻었다. 경제적, 정서적, 물리적 지지다. 김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처럼 대가족이 되자 기쁜 일도 많아지고 슬픈 일도 많아진다. 대가족이 되면서 일이란 생기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것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야말로 가족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가족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말이다."

황선우는 이렇게 말한다.

"통증으로 혼미하던 수술 당일, 그리고 바이털 사인을 체크하는 새벽마다 잠귀 밝은 동거인은 좁은 간이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나보다 먼저 발딱 깨어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곤 했다. (중략) 나는 간병인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동거인이 나의 주보호자로서 베풀어준 가장 큰 부분을 잊지 못할 것이다."

1인 가구가 전체 인구의 28%를 넘었다고 한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건 선호의 문제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회경제적인 상황 때문인 경우도 많다. 결혼할 사람도 없고 돈도 없으나 직장이나 나이 때문에 부모님과 같이 살기도 애매한 경우. 그럴 땐 자연스럽게 1인 가구가 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면 거실을 공유하고 전세금을 늘리면서 좀 더 나은 주거 환경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럴 만한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하여, 젊은이들은 셰어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하지만 셰어하우스라고 그렇게 싸지만도 않다. 새로운 방안을 강구할 만도 하다.

인생의 반려자가 이성이어야만 할까? 삶의 동반자가 꼭 사랑하는 연인이어야 할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여자 둘과 고양이 네 마리가 함께 꾸려가는 이 새 가족에게는, 여느 가족 못지않은 끈끈함과 책임감이 보인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참 옛말이다.

언젠가 <남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도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면 <남사친, 여사친과 살고 있습니다, 저희 사귀는 사이 아닙니다>는 어떨까. <노인 되어 함께 살게 된 죽마고우들>이란 책은? 그땐 동거인법이 잘 정비되어 동거인이 상속인도 되고, 법적 보호자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때 혁신적인 가족이라는 수식어를 달려면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 정도는 주장해야 하리라. 그렇다면 그때 나오는 책은 무엇이 될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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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