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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부부.
 다정한 부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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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가게를 운영하시는 나의 이모와 이모부는 금슬 좋기로 꽤 유명하다. 오죽하면 딸인 내 사촌이 종종 질투심을 느낄 정도라고. 두 분은 출근도, 퇴근도 늘 함께 하신다. 가정은 물론 일터까지 공유하며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연중 365일 24시간을 함께 하는 것. 

어릴 땐 이모와 이모부를 신기하게 여겼고 막연히 부러워했다. 자유 연애(?)가 활발하지도 않았던 때, 어쩜 그리 딱 맞는 사람을 찾아 평생을 함께 하게 되었을까. 딱히 크게 싸워본 적도 없다고 하시니 천생연분은 이럴 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이 넘어 나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우리 부부는 취향도, 식성도, 성격도 잘 맞는 편이다. 연애와 결혼을 합한 10여 년의 기간 동안 다툰 적도 별로 없다. 함께 있을 때면 이야기가 끊길 줄 몰라 시계를 봐가며 대화를 정리해야 할 정도이니, 난 우리 사이는 이렇게 쭉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나는 요즘 이모와 이모부가 한 분야의 대가를 이룬 위인들로 보인다. 그 빛나는 금슬 뒤엔 남 모를 피 땀 눈물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24시간을 계속 함께 한다는 것은, 내게 그 정도 노력을 요하는 일로 보이는 것이다.

이모와 이모부를 향해 선망을 넘어선 경외감을 갖게 된 것은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터라 일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러던 지난 연말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수험생 신분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남편은 규칙적인 시간표대로 공공도서관에 다녔고, 나는 아침마다 도시락과 간식거리를 챙겨줄 뿐 딱히 불편할 것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새벽 운동을 했고, 낮엔 일을 하고, 살림을 했다. 해가 저물고 남편이 귀가할 시간이 되면 그날 치의 대화를 나눌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도서관이 장기 휴관에 돌입한 뒤, 우리의 모든 생활이 달라졌다. 그렇다. 우리는 좁은 집안에서 24시간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반년이 넘게. 

처음엔 매일이 주말 같고 휴일 같았다. 한 달은 행복했고 두 달까지는 그런 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숨길 수 없는 스트레스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각자의 짜증스러움을 삭히느라 애써야 했고 완벽히 숨길 수 없어 겉으로 표출하게 되었다. 

나는 삼시 세끼를 챙긴다는 것의 고단함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남편은 언제나 적극적으로 주방에 들어서고 뭐든지 하려고 노력했지만, 메뉴를 고민하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다. 실랑이 끝에 남편이 메뉴를 정하고 음식을 만든다 해도, 기어코 내 할 일은 있었다. 좋아하던 요리도, 살림도, 서서히 지겨워졌다. 

남편은 내 스트레스를 알아보고 나를 도우려고 노력했지만, 그 또한 못마땅했다. 왜 '도우려' 하나? 그가 하고 내가 '도우면' 안 되는 건가? 부부 사이는 물론, 어떤 일에서도 완벽하게 균등한 업무 분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씩 억울함이 쌓였다. 

그의 물색없는 다정함까지도 내 화를 자극했다. 나는 나 홀로 재택근무에 퍽 익숙해져 있었다. 그가 말을 거는 순간 내 업무 흐름은 번번이 깨졌고, 다시 집중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웃는 낯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 나는 꽤 완곡하게 할 말을 몰아서 해줄 것을 부탁했는데, 너무 완곡했나 보다. 그는 계속해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어왔다. 아주 다정하게. 

익숙한 것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표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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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었다. 이 책은 긴 자취 생활 끝에 '혼자력 만렙'을 찍은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된 과정과 그 후의 일상에 관해 말하는 책이다. 공저자인 김하나, 황선우 작가는 어떠한 과장이나 미화 없이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결혼과 출산이 마치 의무처럼 받아들여지는 시절은 지났다(고 나는 믿는다). 책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율이 무려 27%를 넘는다고 하니, 계속해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삶의 형태가 나올 것이 예상된다. 이때 혼자든, 넷이든, 굳이 혼인이나 혈연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익숙한 것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또 하나의 대안을 보여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혈연으로 이뤄진 관계 못지않은 진한 공동체를 영위하는 이들에게는 생활동반자법 등의 법적 보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도 환기시킨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문제에 천착해 볼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책을 보며, 사람이 함께 사는 데는 필수적인 요건이 있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공존을 슬기롭게 해나가려는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남녀노소, 성격, 취향 등등은 차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가 조율하는 모습, 요리를 좋아하지만 치우는 데 소질 없는 이와 먹는 걸 좋아하지만 요리는 싫은 이가 조화를 이루는 모습 등은 불쾌지수 높아진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가만 보니,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부쩍 높아진 우리 집안의 인구 밀도와 더위, 습도 등등에 눌려 나는 모든 걸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나는 남편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할 것이다. 이것은 결정한 이래 한 번도 번복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선택이다. 그의 다정함에 지칠 뻔했다니, 내가 어디가 잘못되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집에 유니콘이 산다."(191)

저자가 마음 잘 맞는 친구가 동네에, 심지어 한집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얘기하는 대목에 나오는 말인데, 나는 그대로 남편을 떠올렸다. 오글거릴지 모르겠지만, 그는 여전히 나의 유니콘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이 다소 벅찬 시기에, 자주 상기할 일이다. 

지금의 위기는 필시 지나갈 것이고(그래야만 하고), 노후에 우리는 이런 날들을 또 맞이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리 먼 훗날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그저 버티는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또 다른 삶의 형태를 경험한다고 받아들여야겠다. 보다 평화롭고 산뜻한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며. 여자 둘이 사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큰 울림을 건네왔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공존을 위한 자세는 가정 내에서만 필요한 게 아닌 게 분명하다. 내면의 평화로움을 찾는 것과는 무관하게, 부디 지금의 사태가 하루속히 진정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공포도, 죄책감도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모두가 협력한다면, 불가능한 소망은 아니리라.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태그:#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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