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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 [편집자말]
성공
 성공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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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열심히 살았던 시절, 새벽 5시 59분이면 눈을 떴다. 알람은 늘 6시로 맞춰두었으나 알람이 울리기 1분 전이면 기계처럼 눈꺼풀이 열렸다. 샤워하는 시간이 아까워 욕실에서 뉴스를 들었다. 운전해서 회사로 가는 30분 동안 <하루 5분 영어 회화>와 <스페인어 첫걸음>을 들었다. 퇴근 후 러닝머신 위에서 뛸 때도 아이돌이 나오는 Mnet의 유혹을 물리치고 실은 관심도 없는 CNN을 봤다.

시간을 잘개 쪼개 계획대로 주말을 보냈고 주말 중 하루는 꼭 스터디를 했다. 여자의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느니 재테크는 젊어서 시작해야 한다는 류의 책을 탐독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나는 경마장에 처음 선 말 같아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앞으로, 앞으로만 달렸다. 보이지 않는 관중의 격양된 고함과 환성을 채찍 삼았다. 성공한다는 일곱 가지 습관을 나침반으로 두고 지금의 마시멜로를 참았다. 1%만 안다는 인생의 시크릿을 향해, 원띵을 향해!

모두의 딴짓을 응원하는 독립잡지 <딴짓>의 발행인이자 남부럽지 않은 취미 부자인 내가 한때 자기착취적 자기계발의 선두주자였다 하면 누가 믿을까? 세 명의 여자가 함께 만드는 계간지 <딴짓>은 딴짓하는 사람들, 즉 호모딴짓엔스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우리가 내린 호모딴짓엔스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밥벌이와 연관이 없는 행동을 하는 인류. 소소하고 쓸데없는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채우는 인간 집단.

낮에는 보험설계사로 일하지만 밤이면 밀롱가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 하루 10시간 사무실에서 숫자를 들여다보지만 매년 꼬박꼬박 신춘문예에 투고를 하는 작가 지망생, 이삿짐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연극인이 모두 호모딴짓엔스다. '딴짓'을 통해 돈이 벌리지 않더라도 자신을 위한 의미 있는 무엇을 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꼭 취미나 세컨드잡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아도 괜찮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걸로 되었다.

내가 "쫄지마, 딴짓해"를 부르짖게 된 이유

황은주 일본 여행
 황은주 일본 여행
ⓒ josephn6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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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잠을 자고 있는 그 순간에도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따위의 명언을 수집하길 좋아했던 내가 어쩌다 "다음 생은 없어요. 엉망으로 살아야 돼요"라는 박명수식 인생론에 좋아요를 누르며 "쫄지마, 딴짓해!"라고 부르짖게 된 걸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 어느날 문득 자아를 찾기 위해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로 각색할 수도 있겠다. 유행처럼 불어닥친 YOLO의 시류에 편승해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난 오늘만 살아'라고 말할 수도있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삶은 영화나 드라마보단 시트콤에 가깝다. 그런 극적인 사건은 없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런 화려한 서사를 쓰기엔 나이가 들수록 삶을 내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떨어졌다. 다만 소소한 에피소드가 쌓여 삶의 방향키를 조금씩 반대편으로 돌려놓았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그랬다.

예고되었던 대로, 혹은 느닷없이 누군가가 생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경험은 내가 믿었던 세계가 그리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혹은 이 세계가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큰 강이 흐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내 삶의 균형점을 '내일'에서 조금 더 '오늘'로 끌어오게 했다. 여든의 나를 부양하기 위해 서른의 나를 일터로 밀어 넣는 일을 멈추고 서른 살 내 어깨를 붙들고 물었다.

"그래서, 뭘 하고 싶어?"

퇴사 후 2년 동안 출판사를 차리고 프리랜서 작가로 일했다. 짬 날 때마다 밥벌이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해보려 노력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십 년을 넘게 미뤄왔던 승마와 기타를 배웠다. 제멋대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동생을 돌보듯 내게 잘해주려 애썼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문장을 누군가에게 마음으로 전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단순한 문장에 반박할 논리는 무궁무진하다. 그건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계속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딴짓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딴짓하는 이런 공간이 있다고, 당신도 딴짓해도 괜찮다고. 너무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지 말자고.

106세 할아버지가 준 교훈

황은주 유럽여행
 황은주 유럽여행
ⓒ josephn6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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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KBS <사람과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에 106세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에피소드 제목은 <백 년을 살아보니>였다. 융희 4년에 태어났다는 할아버지는 8살 때 고종황제가 돌아가셔서(아니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아니 박정희 대통령도 아니고 좀 더 앞으로… 김구보다 좀 더 앞으로… 더) 물을 떠놓고 한양(?)을 향해 절을 했단 이야기를 하셨다. 젊은 사람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없냐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아보니까 제멋대로 생긴 대로 살아야지.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게 아냐."

다큐멘터리를 보다 정지 버튼을 누르고 나는 인터넷으로 연극 동호회를 검색했다. 마침 집 근처에 연습실이 있는 곳이 있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주말부터 연극 연습에 참여하기로 했다.

지난여름 선풍기만 있는 연습실에서 3개월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했다. 연극에서 나는 멍청한 광대 역할이었다. 주인공들이 사느냐 죽느냐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장면이 이어지다가도 쿵짝쿵짝 음악이 나오면 어리숙한 광대 패거리들이 우스꽝스럽게 등장했다. 춤을 추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인생 뭐 진지할 것이 있냐는 듯이.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연기에 재능을 발견하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 할리가. 내 인생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니까. 딴짓 역시 성공적인 삶을 향한 학위도 아니니까. 대신 내가 연기도(!) 참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조사에 유의해야 한다. 참고로 승마도기타도 그림도 해보기만 했지 소질은 영)

그렇지만 연극을 하는 동안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느꼈다. 삭막한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 보는 훈련이 되기도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를 종교로 삼아 '많이 느끼기'를 구원으로 여기며 '최대한 많이 실패하고 자주 부끄러워지는 사람'으로 살기에 있어 연극은 좋은 딴짓이었다.

딴짓하라, '딴짓'이 없어질 때까지

남미여행
 남미여행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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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는 딴짓을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에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어떤 일'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의존적인 단어다. 공부하는일이 있어야만 노는 일이 딴짓이 될 수 있다. 일이 있어야만 취미가 딴짓이 될 수 있다. 이행해야 할 무언가' 혹은 주된 어떤 것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게 딴짓이다.

생각해 보니 딴짓이라는 단어가 영어엔 적합한 것이 없고 한글에만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국어의 '어떤 일'이라는 것이 꼭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공부를 하고 일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행복한 일들이, 대학을 다녀야만 하고 직장을 다녀야만 하고 결혼을 해야만 하고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 의무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이다.

소쉬르는 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붙으면서 어떤 관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 했다. <딴짓>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아이러니하지만 내 희망은 국어사전에 '딴짓'이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것이다. 말이 없다는 것은 개념이 없다는 것이라고 하던데 '딴짓'이라는 말이 없어질 만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한 사회였으면 한다.

그때까지는, 호모딴짓엔스들이여. 딴짓하자. 열심히. '딴짓'이 없어질 때까지.


태그:#딴짓, #YOLO, #호모딴짓엔스, #취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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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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