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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작사부작 봄비가 내린다. 5월 11일 새벽 기온이 13도다. 더울 때는 정말 봄이 없어지는가 싶더니만 비가 내리는 5월은 아직 봄임을 체감케 한다. 산천과 들판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다. 문득 보이는 흐드러진 분홍 철쭉은 이팔청춘들 같고, 황룡강 둔치의 박태기 꽃은 하얀 구름이 내려앉은 것 같다. 이것들이 한 데 어우러져서 초록바탕에 꽃그림을 그린 것 같다.

오늘은 벌써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청정지역으로 소문난 마을 장성군 북이면의 죽청리를 찾아갔다. 가고자 하는 곳은 엄밀히 말하자면 죽청리의 청운마을이다. 그곳에는 내가 '발발이'라고 별명을 붙인 전직 여교사 한 분이 살고 있다. 그저께 전화를 걸어 이장님을 인터뷰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놓은 터다.

이분은 남편과 함께 귀촌한 분인데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도 좋고 모든 사람들, 특히 어려운 이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며 산다. 이 한 사람만을 소개해도 이야깃거리가 충분하겠지만, 본인이 극구 사양을 하며 이름 한 자도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인터뷰할 수 있는 집과 음식을 기꺼이 제공해 주고 이장님과의 다리도 놓아줬다.

죽청리 이장 조성철(37)씨는 귀촌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만큼 젊은 분이었다. 아니, 깜짝 놀랄 만큼 젊었다.

23가구 중에 원주민은 4가구뿐

발바리 선생님 집 테라스에서 본 경치
▲ 경치 발바리 선생님 집 테라스에서 본 경치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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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산 휴양림 아래 자리를 잡은 청운마을의 옛 지명은 '망꼴'이었다. 죽청리는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누어져 있는데 청운마을은 윗동네다. 마을을 살펴보니 아랫동네와 윗동네가 구분이 될 정도로 집부터가 달랐다.

윗동네인 청운마을은 전체 23가구 중에서 원주민은 4가구에 불과했다. 나머지 19가구가 귀촌을 해서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시골에 작은 도시 마을이 생긴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자연히 텃새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위에서 말한 발발이 선생님과 이장님이 마을을 위해 헌신하는 터라 서로 간의 소통도 잘 되고 있다.

전국각지에서 10여 년에 걸쳐 한 집씩 들어온 주민들로 인해 빈터나 다름없는 썰렁하던 골짜기가 어엿한 마을이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집들도 개개인의 개성대로 지어서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특화된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이한 곳이었다.

내가 이장님을 인터뷰한 장소인 발발이 선생님 댁은 별명이 '속 보이는 집'이다. 2층 집 앞면 전체를 유리로 지어서 밤에 불을 켜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고 해서 주민들이 지은 별명이란다.

10분 거리에 휴양림... 도심까지는 차로 25분

붉은 철쭉이 이팔청춘의 뜨거운 가슴 같다
▲ 봄 붉은 철쭉이 이팔청춘의 뜨거운 가슴 같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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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마을은 방장산 휴양림을 유유자적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주소는 장성군으로 돼 있지만, 생활권은 고창이 훨씬 가깝단다. 광주로 나가기에도 수월해서 조성철 이장님은 청운마을에서 광주광역시로 출근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까지 출퇴근을 하자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장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여기서 광주까지 승용차로 25분이면 갈 수 있어요."
"그래도 대단하세요. 젊은 분이 어떻게 이 산골짜기로 올 생각을 하셨어요?"
"몸이 안 좋아서 방장산 휴양림을 찾던 중 이 마을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4년이 됐는데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죽청리 주민들의 생업수단은 농사이지만 상업성을 취하진 않고 가족끼리 먹을  정도만 짓는다. 하지만 청운마을로만 본다면 퇴직을 하고 귀촌하거나 현재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이들 중에 농사를 짓는 가구는 거의 없다. 특화된 농산물을 심은 가구가 두세 가구 있기는 하지만 모두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이어서 농약이나 환경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특화된 농산물 중에 오디가 있다. 오디도 원래는 약을 쳐야 하지만 이곳 오디는 바닷물을 농약 대신 쓰기 때문에 무척 달고 환경에도 문제가 없다. 다른 한 가지 특산물은 블랙커런트다. 이 또한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기에 마을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청정지역인 셈이다.

최근에 들어서 청운마을 땅값이 좀 올랐단다. 그래서인지 인근 마을이나 외지에서 혹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마을에 관심을 가지며 이사 오고 싶어 하기도 한단다.

내가 특히 청운마을에 관심을 가진 것은 '가축 사육 제한지역'이라는 점이다. 우리 마을에는 마을 한복판에서 상업을 목적으로 소를 키우는 집이 있다. 여름에 그곳을 지나치려면 숨을 참아야 할 정도로 불쾌한 냄새가 난다. 마을 사람들, 특히 바로 옆집 사람도 냄새를 맡겠지만 이웃 간에 차마 뭐라고 말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청운마을은 아예 가축 사육 제한지역으로 정해졌으니 도시민들이 귀촌해서 살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학교 이야기하는데 아빠는 함박웃음... 왜?

조성철(37) 젊은 이장님이 인터뷰 질문지를 살피고 있다.
▲ 죽청리 이장님 조성철(37) 젊은 이장님이 인터뷰 질문지를 살피고 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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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주거환경에 대해서 알아봤으니 이제 자녀 교육 문제가 남았다. 우리 동네만 해도 학교 때문에 이사를 한 젊은 부부가 있기에 꼭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학교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젊은 이장님에게는 일곱 살 된 예쁜 딸아이가 한 명 있단다. 지금 북이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데 등하교를 학교 스쿨버스가 대신해주고 있단다.

만약에 학교 사정이나 악천후로 인해 스쿨버스 운행이 어려우면 택시를 불러서 장거리 학생들은 등하교를 시켜준다. 이는 초등학생도 마찬가지란다. 학교 이야기를 하면서 이장님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진다. 나 역시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학교의 서비스에 "정말요? 그래요? 좋겠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대한민국에 이런 학교가 있다니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난 것이다. 옆에 있던 발발이 선생님도 신이 나서 거든다.

"북이면에 백암중학교가 있는데요, 2015년부터 기숙형학교가 됐어요."
"중학교가 기숙형이 있어요? 그 학교에 입학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나요?"
"이 학교를 다니려면 1순위가 북이면 소재지 초등학교에서 6학년을 다녀야 해요."

얼마 전부터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툭하면 폐교를 해버리는 게 농촌 초등학교의 실정인데 북이 초등학교는 학생들에게 이토록 신경을 쓴다니 이 또한 특별한 서비스인 셈이다. 학교가 이렇게만 해준다면야 젊은 사람들이 귀촌의 두려움이나 어려움을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오늘 하나의 작은 마을을 취재했지만 기분은 확 트인 서해 바다 같다. 그만큼 교육현장의 밝은 미래를 본 것 같아서다.

조성철 이장님 역시 앞으로 청운마을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 회사까지 결근을 하면서 기꺼운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줬다. 따라서 발발이 선생님도, 아픈 몸을 이끌고 귀촌한 이웃을 위해 헌신적으로 돌봄이를 자청하는 마음 역시 마을의 발전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 두 사람의 얼굴과 말투에는 은연중에 청운마을에 갖는 애착이 역력히 나타났다. 나의 아둔한 눈에도 농촌 마을의 화합과 소통하는 모습이 희망적으로 보였다.


태그:#귀촌, #청운마을, #북이 초등학교, #이장님, #발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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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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