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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에서 운영하는 50+
▲ 성동50플러스 성동구에서 운영하는 50+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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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플러스 센터라는 곳이 있다. 50+ 센터는 서울특별시와 각 구청에서 공동으로 예산을 투입해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일종의 문화센터인 셈이다. 이곳의 장점은 수업료가 싸다. 내가 사는 서울 성동구(구청장 정원오)에도 50+가 있다. 

내가 관심 있어서 선택한 과목은 LP싸롱. 재즈와 팝송, 7080 세대 등의 음악을 듣고 즐기는 프로그램이다(프로그램 소개 페이지 바로가기).  

너무 오래되어 구하지 못한 LP는 인터넷으로 찾아서 들려주기도 한다. 엠프와 스피커가 엄청 좋아서 음질이 좋다. DJ가 있어서 음악에 대한 해설을 곁들이기도 하고 화면으로 음악에 맞는 장면을 보여 주며 해설도 한다. 

LP싸롱은 수업료는 없고, 한 번 입장하는 데 3천 원의 입장료가 있다. 입장료라기에는 좀 묘한 것이, 잊어버리거나 모르고 그냥 들어가면 구태여 돈을 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장료 명목으로 받는 3천 원은, 음향 기기의 임대료로 쓰인다고 한다. 

LP싸롱 기획자 민권식씨는 LP싸롱의 운영 취지를 이렇게 말했다.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즉, 청년 세대나 노년 세대 할 것 없이 함께 모여 LP 음악을 들으면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통한 세대별 쉼을 향유하고, LP음악을 매개로 세대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혹하는 마음에 가 보았다. 참여한 사람들의 연령대는 꽤 폭이 넓었다. 아주 젊은 사람은 없었지만 40대에서 70대 사이의 남녀가 특별한 음악을 즐기고자 모였다. 

내가 참여해서 처음 들은 음악은 비틀스와 60년대 올드팝이었다. DJ 겸 해설은 정지영씨(한국은행에서 30여 년간 근무 후 퇴직)가 진행했다. 
 
DJ정지영 씨가 LP를 턴테이블 위에 올리고 있다
▲ LP의 추억 DJ정지영 씨가 LP를 턴테이블 위에 올리고 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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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30대 때 음악 감상실이나 음악다방에 드나들면서 듣던 귀에 익은 노래가 나왔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면 숨죽여 듣기도 하고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가볍게 몸도 흔들며 사람들은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면 박수를 하기도 했다. 

음악을 듣노라니 지난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마술사의 입안에서 쉼 없이 줄줄줄 이어 나오는 종이 줄기처럼 내 기억의 저편에서도 끊임없이, 잊은 줄 알았던 이야기들이 다시 솟아났다. 

재즈의 DJ 겸 해설자는 인카금융서비스(주)에서 파이낸셜 어드바이저로 근무 중인 정호열씨다. 정씨는 음악이 좋아서, 특히 재즈가 좋아서 현직에 있는 바쁜 몸이지만 짬을 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단다. 

재즈 시간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연세 드신 어르신 한 분이 재즈 선율에 맞추어 가볍게 리듬을 타고 계셨다. 그 옆에서는 젊은 여성이 흐뭇한 표정으로 그 어르신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잠시 물었다. 

"죄송하지만 두 분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젊은 여성이 어르신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희 아버지예요." 
"아하,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요. 참 보기 좋아요." 
"아버지께서 음악을 좋아하셔서요. 요즘은 연기 아카데미에도 다니셔요."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인생 2막을 시작하시려고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나는 어땠을까

젊은 여성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 그 어르신은 흐뭇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얼굴의 주름이 여유로 보였고, 미소는 한 세월을 잘 살아낸 연륜이 엿보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 한 그들. 이제 즐기는 모습들이 참 한가로워 보였다. 

잠시 질문 하면서 나는 속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우리 아버지도 살아계신다면 나는 저렇게 모시고 다니면서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을 같이 했을까? 대답은 '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안 계시니 그나마 회한이라도 들지만, 막상 살아계셨다면 뭔가 함께 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오만가지 이유를 갖다 대면서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다 보면 부모님은 이미 안 계신다는 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오늘 저 여성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청중들이 대개 7080 세대였기 때문이다. 

한 번 수강 신청을 하면 3개월씩 수강을 해야 하는 틀에 짜인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참 좋았다. 내가 듣고 싶을 때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을 해도 되고, 현장 입장도 가능하다. 한 번 입장할 때 입장료 3천 원을 내면 차도 한 잔씩 대접한다. 재즈를 좋아하면 재즈 하는 날, 올드팝을 좋아하면 올드팝을 하는 날 가면 된다.

재즈와 올드팝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참여해서 음료를 마시고 싶으면 개인 컵을 가지고 가야 한다. 

신청은 성동구 50+ 홈페이지나 현장에서 가능하다.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부터 90분 간, 입장료는 3천 원이다. 앞으로 4회 정도가 남아있다. 

보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성심을 다해 좋은 음악을 고르고,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해설을 할까 고민하고 손님들에게 즐겁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태그:#LP음악감상, #째즈와올드팝, #LP싸롱, #추억쌓기, #성동50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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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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