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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토요일, 마을에서 봄 소풍을 갔다. 우리 집에도 초대장이 왔지만 망설였다. 하필이면 그날 남편이 서울에 볼 일이 있어서다. 아직은 마을의 큰 행사에 혼자 가기에는 좀 어색한 데가 있다. 이번에는 남편이 망설였다.

"당신 마을에서 소풍 가는데 혼자 가면 안 될까요?"
"안 될 거야. 없지만 혼자 가기는 좀 거시기하네요. 잠시 있다 오는 것도 아니고 종일, 아니 밤까지 같이 있어야 될지도 모르는데…."
"좀 그렇지요?"
"예, 좀 그래요.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고, 공식적인 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기 전에는 왕래하는 사람조차 없으니."

마을에서 잠시 모이는 일에는 가끔 참석하고, 병문안 갈 일이 있을 때는 같이 가기도 했었지만 하루 세끼를 함께 먹으며 같은 공간에서 12시간 이상을 혼자서 보내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기어이 남편은 서울 가는 걸 포기하고 마을 소풍에 같이 가기로 했다.

거제·통영에 가기로 했지만, 여수에 닿았다

소풍은 아이나 어른이나 설레임이다.
▲ 소풍 가는 날 소풍은 아이나 어른이나 설레임이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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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에 마을회관 앞에서 모였다. 모인 사람은 32명. 반색하면서 반기는 사람은 없어도 모두 웃으며 잘 왔다고 인사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 마음이다.

어떤 사람은 "시골 사람들도 요즘은 약았어"라고 한다. 시골 사는 입장에서는 그 소리가 달갑지 않게 들렸다. 아니, 나도 어쩌다 그렇게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시골 사람을 몰라서다. 때로는 약아야 내 것을 지킬 수 있기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약아지는 것도 귀촌하는 사람이 늘면서 도회지의 야박한 근성이 전이돼서 그렇다고 본다. 귀촌이 아닌 시골에서 시골로 이사를 다닌다거나, 태어난 곳에서 70~80 평생을 한 곳에서 산 사람은 지금도 순박하기 이를 데 없다. 필자가 순박하다고 하는 것은 온종일을 함께 지내보고 나온 결론이다.

원래 소풍의 목적지는 거제와 통영이었다. 가는 도중 차 안에서 목적지가 여수로 바뀌었는데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지만 '이장님과 총무님이 다 알아서 바꿨겠지'였다.

여수에서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출항할 시간이 지났지만 승선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도 양해를 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승객이 매표소에 알아보니 배가 고장이 나서 고치는 중이라고 했다.

같이 소풍을 간 사람 중에는 여든이 넘은 어르신도 있었다. 다리를 잘 못 쓰시는지 언뜻 보기에도 불편해 보였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속담처럼 그 어른을 모시고 다니는 분 또한 또래의 어르신이다. 다행히 부축하는 어르신은 정정하시기는 했지만 노인은 노인이다. 화장실을 가실 때나 식사를 하실 때 몇 걸음 뒤처져서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는데 무슨 이유인지 짠하기도 하고, 보기 좋기도 했다. 일행들도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게 눈에 보였다.

타는 사람은 난데 이름은 다른 사람... 어찌 된 영문이지?

서른 두명이 먹을 아침, 점심 도시락.
▲ 도시락 서른 두명이 먹을 아침, 점심 도시락.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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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팽목항에는 유족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데 선박회사의 선박 운항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선박의 안전은 출항하기 전에 행정적인 문제를 먼저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생년월일과 이름을 무슨 양식과 같은 종이에 적은 적이 있다. 본인이 불러 주고 인솔자가 적었다. 승객들 대부분이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인지라 인솔자가 적는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일행의 승선표를 관광버스기사가 샀는지 인솔자가 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눠주는 이는 인솔자였다. 아무 생각 없이 승선표를 받았는데 조금 있다가 표를 회수해 갔다. 그 이유는 이름과 사람이 맞지 않았기 때문. 이름과 사람을 맞춰주겠다고 했다. 그때서야 다시 받은 표를 확인해보니 이름은 김경내가 맞는데 생년월일이 달랐다. 남편 것을 보니 생년월일은 맞는데 이름이 달랐다. 나는 다른 사람들 표도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를 확인한 결과,
이름과 생년월일이 다른 게 있었고, 어떤 사람은 성별이 바뀐 채 기록되기도 했다. 개인정보가 어긋난 사람은 대략 10명이었다.

왼쪽은 내가 처음에 받은 표이고, 오른쪽은 나중에 다시 발급받은 표다. 최초 받은 표에는 김청식(남)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내가 아니었다.
 왼쪽은 내가 처음에 받은 표이고, 오른쪽은 나중에 다시 발급받은 표다. 최초 받은 표에는 김청식(남)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내가 아니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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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기사를 찾았다. 이게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다.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건 버스표하고 같은 거예요."
"버스표 하고 같지 않죠. 이건 어떤 사람이 이 배를 탔는지에 대한 정보잖아요. 그러니까 이름과 생년월일이 맞아야죠."
"그러니까요. 저 안에서 전산으로 행정기관으로 다 보내니까 이 표는 틀려도 상관없다니까요."

"예를 들어서 해상에서 사고가 났을 시에 이 표에 기록된 대로 사고 수습을 할 거 아니에요? 그럴 때 이름과 생년월일이 맞지 않으면 시신을 찾았다고 해도 그 시신은 신원미상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이걸 바로 잡아야죠."
"아니라니까요. 아까 적은 그 명단이 행정기관에 한 부, 선박회사에 한 부 들어가요. 그러니까 그 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내 참!"

작은 항구에 비해 관광버스는 무척 많았다.
▲ 관광버스 작은 항구에 비해 관광버스는 무척 많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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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했다. 일행 몇 명과 인솔자가 입을 모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계속 나더러 답답하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매표소에 들어갔다. 복잡하다면서 창구에서 얘기를 하라며 쫓아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책임자를 찾았다. 한 남자가 힐끗 돌아보더니 자기가 책임자라면서 나가서 기다리란다. 나오기 전에 매표소 직원에게 부탁해서 우리가 제출한 명단이 적힌 서류를 받아 나왔다. 잠시 후에 관계자가 나왔다.

"제가 잘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요. 전산에 입력한 것을 행정기관에도 보내고, 선박회사에도 보낸다던데 그 입력한 대로 표를 출력하는 거 맞나요?"
"…."

그러자 그는 명단을 원하는 대로 바꿔는 주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배를 못 타는 건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며 또 입씨름을 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끼어들었다.

"아까는 어떤 여자가 이름이 잘못됐다며 난리를 쳤어요. 그냥 타도 아무 이상 없는데."
"댁은 누구세요? 뭐하시는 분이에요?"
"나? 관광버스기사요. 여태껏 아무 일 없었구만."

입씨름 마치고 배에 올랐더니... 선상은 춤판·노래판

유람선이 한가로워 보인다.
▲ 여수 앞 바다 유람선이 한가로워 보인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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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작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승선표를 나눠주는 관광버스기사 교육부터 다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그럼 이 내용을 기사로 써도 되느냐"고 관계자라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펄쩍 뛰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단을 다시 작성하겠단다. 인솔자도 옆에서, 자기가 받아쓰느라고 틀린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시 보고 고치겠다고 했다. 그렇게 난리를 치자니 승선 시간이 임박했다. 관광버스기사가 안달이 났다.

관광버스기사 : "아, 그냥 타요. 여태껏도 암시랑도 안했구만."
매표소 책임자 : "안 돼요. 기사 쓴다잖아요."

명단을 고치는 데 오래 걸린다더니 10분도 안 돼서 고친 명단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가 출항하지 않았다. 고장이란다. 표를 무르네 마네 하는 동안 배가 고쳐졌단다. 불안했다.

혼자 너무 유별나게 구는 것 같아서 배에 탔다. 배는 출항도 안 했는데 배 안에서는 이미 먼저 탄 승객들의 춤판이 벌어져 있었다. 그 소란이 어디에 비교조차 할 데가 없었다. 아무리 한국 사람들이 흥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배는 여수 앞 바다를 한 시간 반에 걸쳐 회항하는 여객선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외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1층에서는 춤, 2층에서는 노래가 펼쳐졌다.

크루즈라는 이름을 단 배에서 음악이 꺼지니 춤판은 끝났지만 노래는 끝날 줄을 몰랐다. 배에서 내릴 때까지 사람들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야말로 고성방가였다. 어떤 사람은 아예 귀마개를 하는 사람도 있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도 시비가 붙을까봐 그런지 모두 혼잣말이었다.

그렇게 복잡다단한 하루가 지나가고 오후 7시에 집에 도착했다. 소풍이 즐거웠나를 뒤돌아봤다. 소풍의 목적에 따라 해석을 달리해야 될 것 같다.

관광과 같은 소풍이었다면 별로 본 게 없다. 크루즈라는 이름의 여객선을 타고 여수 앞바다를 1시간 반가량 돈 것과 해양 과학관에 들른 게 전부였다.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중점으로 둔다면? 꽤 괜찮은 소풍이었다.

소풍은 무사히 잘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승선 당시의 일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20일 통화한 선박회사 관계자는 "단체 발권을 하게 되면 짦은 시간 안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한다, 많은 수를 입력하다 보면 오기가 날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흔치는 않다"라면서 "당시 문제제기가 있어서 승선표 속 정보를 수정해 다시 출력해줬다, 내용 표기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은 3~5명으로 기억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승선표 속 정보를 바로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수정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존 발권 업무가 끝난 뒤에야 수정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여수에서 크루즈에 탑승하려다 겪은 일을 돌이켜보니 관광버스회사 그리고 선박회사가 앞으로는 조금 더 탑승객 명단 관리에 신경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버스회사는 1차적으로 탑승객 명단을 꼼꼼하게 확인해 작성하고, 이를 받아 발권하는 선박회사 역시 확실하게 명단을 확인하고 표를 나눠주면 좋겠다(이름과 생년월일은 바르게 표기됐는데 성별이 다르게 표기되는 등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업체들만 문제라는 건 아니다. 승객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탑승객들은 자신이 명단에 쓴 이름 등 개인정보들을 꼼꼼하게 확인해서 제출해야 할 것이다.

안전이란 늘 조심하고 예방해야 지켜지는 것이니까.


태그:#봄 소풍, #크루즈, #유람선, #여수 앞 바다,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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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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