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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에 따라서 사람 만나는 일을 쉽게도 생각하고, 그 무엇보다 어렵게 생각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성격의 차이일 수도 있고 환경의 차이일 수도 있다. 평소에 까칠한 성격으로 인해 사람 만나기가 무척 힘들었던 내가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하고부터 사람 냄새를 좋아하게 됐다.

2015년 여름, '나의 암 극복기' 연재가 끝나고 '귀촌일기' 연재를 막 시작했을 무렵 쪽지 하나를 받았다. 장성 삼계면에 살고 있는 애독자인데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행여나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봐 쪽지에는 자신의 소개를 소상히 하고 산 아래 첫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남겨둔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고, 그녀는 우리 집을 방문했다. 2년 전만 해도 덜렁 쪽지 하나에 집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었을 터였다.

정말로 우리 집을 방문한 것 만해도 놀라운 일인데 피크닉 바구니에 오밀조밀 이것저것 한가득 채워 온 그녀의 선물은 감동이었다. 선물 중에는 40년 된 씨간장도 있었다. 서로 수인사를 건네고 서너 시간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현직 교사이며 이름은 최아무개씨였다. 최 선생은 돌아가면서 자기 집에도 오라고 초대했다. 며칠 후에 나는 남편과 함께 최 선생의 집을 찾아갔다.

산과 들과 계곡이 정원에 있다니

산, 들, 계곡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이 집의 정원
▲ 산 아래 첫 집 산, 들, 계곡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이 집의 정원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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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벗어나 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좁은 길을 조금 더 올라가니 정말로 산 아래 집 한 채가 있었다. 쪽지에 소개한 대로 산 아래 첫집이었다. 황토로 아담하게 지은 집은 앞뒤 양옆 할 것 없이 둘러싸고 있는 산과 들판을 정원으로 가지고 있었다.

바깥 풍경에 취해 있다가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놀라움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최 선생이 신이 나서 내게 자랑한 것이 있어서다.

그것은 여느 부잣집처럼 값진 물건도 아니고 특별한 장식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불'이었다. 방 두 개의 한쪽 벽면에 붙박이장이 있었는데 그 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모두 이불이었다.

두 개의 방 붙박이장에 이불이 가득
▲ 이불 두 개의 방 붙박이장에 이불이 가득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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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장롱 안의 이불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최 선생 부부의 행복해하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따라서 그 이불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졌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난 오늘 그 궁금증을 풀려고 최 선생 댁을 다시 방문했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최 선생이 '나의 암 극복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었다. 그녀 역시 유방암 수술을 하고 추적치료를 하는 중에 광주에서 그곳으로 귀촌을 했단다. 남편도 그녀도 아직 현직에 있었다. 남편(송명철 교수)은 광주의 한 대학교에, 그녀는 초등학교에.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최 선생의 아들이며 사창초등학교의 기간제 교사인 송바름 선생(정식 발령을 받아 놓은 상태)이 같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교사(잭 브라운)와 엄마인 최 선생 학교의 원어민 교사(?), 한국인 영어 선생(오선화), 이렇게 세 명의 손님을 초대해놓은 상태였다.

술술술 나오는 영어... 비결은

주방에서는 지글지글, 지지고 무치는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일손이 부족하자 외출에서 돌아온 송명철 교수가 자연스레 부엌일을 거들었다. 함께 일손을 거들면서 이 가족의 표정을 잠깐 살펴보니 밝음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에는 선하고 편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손님들이 도착했다. 아들 송바름 선생이 손님을 맞았다. 반갑게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요란스럽거나 야단스럽지 않았다. 수인사들을 나눴다. 우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어민 영어교사 잭 브라운이었다. 잭은 한국에 온 지 5년이 됐다는데 한국말 구사능력이 뛰어났다. 간간이 섞는 전라도 사투리가 사람들을 재미있게 했고, 제법 어려운 말을 쓰기도 하고 알아듣기도 잘했다.

한국인 영어교사 오선화 선생은 명예퇴직을 하려고 마음먹은 다음, 7년에 걸쳐서 퇴직 후의 삶을 설계했다고 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영어와 해금이란다. 원어민 영어 교사와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그 실력이 대단한 것 같았다.

이들 중에 유독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송바름 선생. 이름 그대로 올곧고 유순해 보이는 인상도 좋았지만 원어민과 막힘없이 술술술 나오는 영어는 정말 대단했다. 영어 실력에 내가 감탄을 하자 엄마인 최 선생이 한마디 했다.

이 댁 가족들과 손님들 얼굴에는 웃음이 끊어지지 않았다.
오른쪽부터: 송명철. 송바름. 잭브라운. 오선화. 님들!
▲ 사랑 이 댁 가족들과 손님들 얼굴에는 웃음이 끊어지지 않았다. 오른쪽부터: 송명철. 송바름. 잭브라운. 오선화. 님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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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 바름 선생님 영어 정말 잘하네요."
"쟤는 겁이 없어서 영어가 금방 느는 것 같아요. 나는 영어 선생님이 곁에 올까봐 지레 겁을 먹는데."

언어라는 게 그런 것 같았다. 외국인은 잭처럼 한국말을 틀리더라도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계속 한국말을 하고, 한국 사람은 영어를 더 잘하고 싶어서 영어권 사람을 보면 짧은 말 한 마디라도 영어로 해야 느는 것 같았다. 그들이 그랬다. 그러니 서로의 언어를 몰라도 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

곧이어 잘 차린 점심상이 나왔다. 황토집처럼 수더분하지만 영양과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이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이불에 대한 질문을 먼저 했다.

한밤중에 차 마시러 부산에서 장성까지

"저는 가정집에 이불이 저렇게 많은 건 처음 봐요. 숙박업을 하는 영업집처럼 많네요. 저 이불은 다 어디에 쓰시나요?"
"저희 집에 연평균 손님이 200명 정도 다녀가셔요. 한참에 손님이 많이 오실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거예요."
"손님이라면 친척이나 친구들인가요?"
"친척이 오실 때도 있지만 주로 친구들이에요."

최 선생의 얘기는 이랬다. 다음 카페에 '금자네 사랑방'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을 통해서 전국에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또래나 성격, 취미 등이 비슷하거나 같은 사람들은 더 친해진다. 친해지다 보면 같이 여행도 하고, 집으로 초대도 한단다. 전국 각지에서 하는 일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마음도 이야깃거리도 먹거리도 풍요로워진단다. 어떤 때는 부산에 사는 사람이 한밤중에 향기 좋은 차 한 봉지나 술 한 병을 들고 같이 나누자고 전남 장성까지 일부러 오기도 한단다.

몇 집은 가족 단위로 함께 여행을 하고, 집으로 가서 며칠씩 묵기도 한단다. 댁으로 찾아가서 며칠을 묵으면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럴 때는 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가지고 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미있단다. 최 선생 내외의 얘기를 듣노라니 나눔이 무엇인지, 사람을 믿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를 실천하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텃밭에서 거둬들인 것들로 만든 신선한 먹거리들
▲ 건강한 먹거리 텃밭에서 거둬들인 것들로 만든 신선한 먹거리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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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쪽에 있는 커다란 독에는 된장과 간장, 장아찌들이 그득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직접 담근 것이라고 했다. 2012년에 황토집을 지어서 귀촌했단다. 집 주변은 자급자족하기에 좋은 환경이기도 하지만, 부지런하지 않으면 상추 한 잎도 거저 얻을 수 없는 것이 시골살이이기에 이 댁의 가족들의 부지런함을 보는 것 같았다. 사람 좋아하는 마음 또한 세 가족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세속의 때가 묻을 대로 묻은 내게는 먼 얘기로 들리기도 했다. 재미난 이야기, 들으면 덕이 되는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손님들이 계셔서 먼저 일어서는 내게 기어이 직접 쑨 도토리묵을 들려준다. 손님들에게도 간단한 인사를 하고 현관을 나서는데 미국 사람인 잭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인사말이 들려왔다.

잭을 비롯한 이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이 이토록 거리낌 없이 예전부터 아는 사이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이 세 식구의 밝은 에너지 덕분이 아닌가 한다. 하늘 높고 바람 서늘한 계절이 되면 나도 저 장롱 속의 이불 하나 차지하고 싶었다.


태그:#귀촌, #친구, #사랑, #믿음,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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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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