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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고시촌 거리 예전의 명성에 비해, 고시생 유입이 많이 줄어 낮에도 비교적 한산하다. 그대신 요즘은 싼 방값과 물가를 찾는 직장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 신림동 고시촌 거리 예전의 명성에 비해, 고시생 유입이 많이 줄어 낮에도 비교적 한산하다. 그대신 요즘은 싼 방값과 물가를 찾는 직장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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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 잠시 머물게 된 것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넘어갈 때쯤이었다.

지난 학기 동안, 인간 존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비만 지출했으나 돈이 거의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아끼기 위해 웬만해서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사람이 싫은 것이 아니라 평소보다 많이 지출하게 될, 약간의 밥값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어려웠고, 외로웠다.

학교 근처에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방을 부모님 도움으로 얻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형편에 따라 기숙사와 고시원을 수없이 전전했는데, 이혼한 부모님 모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셨다. 장학금을 받든 알바를 하든 모든 문제는 스스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내가 신림동 고시촌까지 왔을 때는 훨씬 더 상황이 심각했다. 두 달 뒤, 한국장학재단에 신청한 생활비 대출이 나오면 '150만원'이라는 목돈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까지 버텨야 했고, 방값이 싸기로 유명한 신림동 고시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방값 '13만 원' 고시원... 고시촌 맨 꼭대기에 있었다

신림동 고시촌 윗동네 신림동 고시촌은 일명 '아랫동네'와 '윗동네'로 나뉜다. 아랫동네는 학원, 음식점, 서점, 복사집 등 학업 및 편의시설이 번화한 곳이다. 한편, 윗동네는 상당히 높고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올라가야 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방값이 싸진다.
▲ 신림동 고시촌 윗동네 신림동 고시촌은 일명 '아랫동네'와 '윗동네'로 나뉜다. 아랫동네는 학원, 음식점, 서점, 복사집 등 학업 및 편의시설이 번화한 곳이다. 한편, 윗동네는 상당히 높고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올라가야 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방값이 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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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고시촌 풍경 과거 서울대 인근에 고시문화가 발달하면서, 관련 학원과 서점 등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고시원 및 원룸 등이 생겨난 게 바로 고시촌이다. 수험정보를 발 빠르게 교환하려는 전국의 고시생들이 문전 성시를 이루면서, 한때 고시촌은 고위 공무원과 법조인력의 산실로 여겨지기도 했다.
▲ 신림동 고시촌 풍경 과거 서울대 인근에 고시문화가 발달하면서, 관련 학원과 서점 등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고시원 및 원룸 등이 생겨난 게 바로 고시촌이다. 수험정보를 발 빠르게 교환하려는 전국의 고시생들이 문전 성시를 이루면서, 한때 고시촌은 고위 공무원과 법조인력의 산실로 여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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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고시촌(考試村)'은 서울대 인근 관악구 신림9동(대학동) 일대를 말한다. 초입은 일반 주택가 같지만, 깊이 올라갈수록 '1인 가구'인 고시원 밀집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주민센터 추산 약 800여 개에 이르는 원룸과 고시원이 있고, 주민등록상 집계되지 않는 1인 거주자는 약 1만 6000여 명 정도에 이른다(관련 기사: "잊을 만하면 하나씩 죽어나가").

이곳은 비교적 방값이 비싼 대신 번화하고 편리한 '아랫동네'와 비탈진 골목을 올라갈수록 방값이 싸지는 '윗동네'로 나뉜다. 윗동네로 갈수록 주로 고시 '장수생'들이나 빈민들이 거주한다. 고시 합격이 늦어지면 지원을 받기 어렵고 가족관계 단절이 일어나기 때문에, 장수생들이 점점 방값이 싼 윗동네 고시원을 찾는다.

나이가 먹어서 취업은 어렵고 이제까지 공부한 것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아, 불합격의 좌절을 연달아 겪으며 장수생들은 세상과에서 점점 배제된다. 더 멀어질 곳도 없는 이들은 고시촌 맨 꼭대기 공원 인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기자가 머물렀던 고시원. 방값이 13만원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작은 방에 침대는 없이 책상과 의자가 있다. 냉난방은 비교적 잘되지만, 화장실은 계단으로 내려와 반지하로 들어가서 공용으로 써야 해 불편하다. 물온도나 수압은 상당히 열악하다. 밥은 밖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기자가 머물렀던 고시원. 방값이 13만원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작은 방에 침대는 없이 책상과 의자가 있다. 냉난방은 비교적 잘되지만, 화장실은 계단으로 내려와 반지하로 들어가서 공용으로 써야 해 불편하다. 물온도나 수압은 상당히 열악하다. 밥은 밖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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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시 장수생이 아니라 외국어와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지만, 당시 경제적 상황은 그들만큼 힘들었다. 고시촌 맨 꼭대기에 보증금 없는 13만 원짜리 방을 구했다. 공용화장실은 수압도 낮고 온수가 오락가락하며 나왔다. 하나 있는 변기는 그나마도 기마 자세로 앉아서 일을(?) 봐야 했다. 방안에 침대는 없었고, 책상과 의자만 있었다.

그래도 추운 겨울 얼어죽지 않고, 불편하게나마 몸 뉘일 공간이 있다는 건 위안이었다. 문제는 굶어 죽지 않는 문제였다. 대출금이 나오려면 60일 정도 남았고, 생동성 알바를 통해 매혈(賣血)로 번 30만 원 정도가 잔고로 있었다.

배고픈 인문학도... 동네꼬마 막대사탕 뺏어먹고 싶었다

신림동 고시촌 저가 음식점 신림동 고시촌에는 싸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어서, 고시생들이 애용한다.
▲ 신림동 고시촌 저가 음식점 신림동 고시촌에는 싸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어서, 고시생들이 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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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끼를 5000원으로 빠듯하게 해결한다 치더라도, 사람이 씻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위생용품까지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대출이자와 휴대폰비는 당연히 연체됐다. 고시촌 주위는 알바 경쟁이 치열한 데다가 나처럼 단기간 머무는 사람이 일하긴 쉽지 않았다.

아침은 주로 시리얼로 해결했다. 영양이 비교적 좋아, 적은 비용으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다만, 쉽게 꺼져서 금방 배가 고팠다). 고시촌 밖 단기 알바를 틈틈이 알아봤는데, 연회장 서빙이나 택배 소화물 분류 같은 걸 하며 버틸 수 있었다. 일이 있는 날엔 근처 저가 식당에서 국물 있는 찌개류에 밥 두 공기를 챙겨먹고 나갔다.

그래도 난 꿈이 있었다. 평생 하고 싶은 철학 연구를 하며 사는 것. 굶어 죽지 않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처지가 되려면, 멀리 내다보고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해 장학금을 받는 수밖에 없다. 방학이라고 책을 멀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방학 때 알바만 할 수는 없었고, 옆방의 고시생들이 법전 책장을 넘길 때 나는 <논어>나 <파이돈> 같은 철학 고전을 읽고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졸업하고 사업을 하다던, 아는 선배였다.

"형. 오래간만이네요. 무슨 일이세요?"
"어, 저기 미안한데... 내가 결제대금을 급히 막아야 하는데, 돈있으면 좀 빌려줄 수 있니?"

나도 돈이 없는 상태라고 했지만, 10만원이라도 빌려달라고 통사정을 하기에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 때 이것저것 도움을 준 선배였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준다고 해 밥값 중 10만 원을 빼서 주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신림동의 한 고시, 중고서적 전문 서점. 보던 책을 직접 들고가거나, 택배로 보내면 가격을 책정해서 매입한다.
 신림동의 한 고시, 중고서적 전문 서점. 보던 책을 직접 들고가거나, 택배로 보내면 가격을 책정해서 매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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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금 입금 2주 전, 지갑에 2만 원 정도가 남았다. 이걸로 2주를 버티기란 불가능했다. 단기 알바를 또 구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랫동네에서 컵라면과 빵 몇 개를 사서 올라오는 길에, 중고책을 매입한다는 한 서점을 보았다. 순간 멈칫 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고 중얼거리며 힘겹게 비탈길을 걸어올라갔다.

대출금 입금 1주 전, 마침내 먹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배가 너무 고파 일할 힘도 나지 않았다. 삶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고,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다. 잠깐 찬바람을 맞고 정신을 차리려고 나왔는데, 동네 꼬마가 막대사탕을 먹고 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뺏어서 도망갈까, 나쁜 마음도 들었다.

정신 차리고 "내가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싶어서 방으로 들어왔다. 책장을 둘러보며, 손으로 책들을 쓸어넘겼다. 나는 침울하게 고민에 잠기다가,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등 몇 권을 책장에서 뽑았다. 모두 비싸게 정가로 힘들게 사서 아껴보던 신판들이었고 대부분 하드커버였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책들인데... 팔면 아까우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랑 맞지 않는 책들이에요."

무릇 고귀한 것은 드물고도 어렵다

 신림동 고시촌 전경.
 신림동 고시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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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예수를 세 번 부정한 베드로의 기분으로 윗동네로 올라가는 비탈길을 올랐다. 손에는 아끼던 책들을 판 돈으로 산 음식들이 들려 있었다. 책이야 위기만 넘기고 다시 새로 사면 되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게 너무 속상했다. 심경이 복잡해 잊으려고 평소보다 걸음을 서둘렀다. 그때였다.

"철퍼덕!"

서두르다가, 그만 가파른 얼음 비탈길에 미끄러져 넘어진 것이다. 단단히 굳은 2월 얼음에 넘어져 부딪힌 팔이 아려왔다. 시커먼 흙탕물이 옷에 잔뜩 묻었고, 나는 그런 내 꼴이 너무 어이가 없어 멍하게 있다가 실성한 듯 낄낄거렸다. 그러다가 웃음은 곧 히끅히끅 거리는 울음으로 바뀌었다.

"아 XX.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정말 죽고 싶을 만큼 더러운 기분이었다. 청승맞게도 고시원 방의 불을 켜지 않았다. 그냥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었다. 그러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이윽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타고 내 눈가를 때렸고, 나는 몸을 일으켜 의자에 기댔다. 책상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가 놓여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책장을 넘겼다. 정말 더럽게 어려운 책이었지만, 관련 자료를 열심히 찾아가며 평소보다 더욱 열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에티카>의 구절들을 고민하는 데만 열중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마지막 구절에 도달했다.

"무릇 고귀한 것은 드물고도 어렵다"

내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얼마 뒤 장학재단 사이트의 생활비 대출 '지급신청' 버튼이 활성화됐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버튼을 클릭했다. 그리고 휴대폰 메시지가 울렸다.

"하지율님의 2013-1학기 생활비 대출이 우리은행 계좌에 입금처리됐습니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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