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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전화 히스테리가 있습니다. 전화만 울리면 깜짝 깜짝 놀랍니다. 무슨 죄지은 것도 아닌데 전화만 오면 떨립니다.
▲ 위기의 순간들 아직도 전화 히스테리가 있습니다. 전화만 울리면 깜짝 깜짝 놀랍니다. 무슨 죄지은 것도 아닌데 전화만 오면 떨립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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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전화가 울립니다. 이어 다른 전화도 울리기 시작합니다.

"따르릉 따르릉!"
"어떻게 해요? 받아야 돼요?"

여직원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나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담배 연기가 사무실을 자욱하게 채우고 그 사이를 찢어지는 듯한 전화벨 소리가 연거푸 휘저어놓습니다. 그러는 사이 주머니 안에서도 삐삐와 아날로그 휴대폰이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나도 울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20대 후반, 사건에 휘말리다

새로운 천년을 앞둔 1998년, 대한민국 모든 국민과 기업들은 IMF 사태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학시절 학점과 스펙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나는 졸업과 함께 IMF를 맞았습니다. 취직할 엄두도 못 내고 지인들과 함께 뭐라도 해보려 힘을 모았습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서류를 만들어 금융권에 접수해주는, 즉 대출을 알선해주는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IMF 시절이라 돈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처음엔 그럭저럭 버텼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는 현금이 오가는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관련돼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채업자나 자격 없는 대출알선 딜러들이 활개를 치는 곳이었습니다.

종합금융사들이 연쇄적으로 부도 처리되면서 금융권의 돈줄이 막히게 되고, 우리는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가 사채업자와 결탁하여 일부 자금을 편취하여 돌려막기 하던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금을 신청했던 고객으로부터 거친 항의전화는 물론 고소까지 당했습니다.

부모님이 살던 집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사무실로 쓰던 오피스텔에서도 세를 내지 못해 쫓겨났습니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인생이지만 경찰서 문턱이라고는 밟아본 적도 없었는데 어느 날 형사로부터 소환통보를 받았습니다. ​

"형! 경찰서에서 소환장 왔어. 그리고 형사한테도 전화가 오구. ○○일 ○○시까지 동부경찰서로 출두하라는데!"
"△△아, 도대체 무슨 일이냐? 경찰 소환장이라니,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냐?"

동생이 전화로 경찰서 소환장이 도착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걱정에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내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내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경찰 조사를 앞두고 저는 초주검이 됐습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연락이 되지 않아 고소인들이 제출한 고소장에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습니다.

경찰서를 내 집 드나들 듯

이때부터 경찰서 순례가 시작되었죠. 동부, 서부, 북부 경찰서 할 것 없이 고소장이 접수되었고,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경찰서로 소환되어 조서를 꾸며야 했습니다. 때론 대질심문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동료가 잠적하는 바람에 수사는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 덕에 모든 화살은 내게 쏟아졌고 채권자들은 내게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실에 잠시 감금되어 협박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생활은 지탱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채권자들이 그곳까지 찾아와 난리치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당시 일하며 받던 월급은 100만 원 가량. 월급날이면 채권자들에게 10만 원, 20만 원씩 부쳐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어, 1시간이 걸리는 아르바이트 장소까지 매일 걸어다녔습니다. 점심식사도 건너 뛰었습니다. 당시 내가 갚아야 할 돈은 5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게다가 사랑했던 연인과도 헤어지게 되며 내 삶은 점점 피폐해져갔습니다. 과거 두 번의 이별 끝에 다시 만난 그녀! 결혼을 약속했지만 상황이 안 좋아 매일 근심에 찬 내 얼굴을 보아야만 했던 그녀는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집안의 반대 또한 엄청났습니다. 나도 그녀를 놓았고 그녀도 내 손을 놓았습니다. 그렇게 헤어진 나는 밤낮 정신 나간 생활을 했습니다.

20대 후반, 기억나는 건 술 밖에 없을 정도로 밤낮 취해 살았습니다.
▲ <위기의 순간들> 20대 후반, 기억나는 건 술 밖에 없을 정도로 밤낮 취해 살았습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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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하며 밤낮 할 것 없이 매일 술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벽까지 취해 있다가 차를 몰고 대전 도심을 마구 돌아다녔습니다. 함께 취한 친구들 데려다준다고 운전하고는 접촉사고도 수차례 일으켰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목숨을 끊으려 작정하고 차를 끌고는 한적한 시골길에서 광란의 질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때문에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너무 죄송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그분들에겐 사기꾼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내가 고생하는 것은 다 내가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 내 자취방에는 매일 빈 소주병 수십 개가 지친 내 몸뚱이처럼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난 음주운전 사고로 한 번 더 경찰의 조사를 받고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습니다. 집안에서도 폐인이 되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시름이 깊어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내 소원은 직장인이 되어 출근해보는 것

백수시절, 내 하루의 시작은 버스에 몸을 싣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구경하는 것이었습니다. 콩나물 버스를 타며 인상을 찌푸리는 그들의 얼굴은 내게 가장 갖고 싶은 일상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일하러 갈 직장이 있다는 것!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아침에 직장인들 틈에 섞여 출근 흉내내는 것도 잠시, 난 생활정보지를 종류별로 주워다가 구인란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독하며 읽었습니다. 가끔 몇 개월씩 운전직이나 매장 직원, 책방 아르바이트 등을 했지만, 채권자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가야 하는 형편이어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함께 일했던 동료는 끝내 연락이 없었습니다. 검찰에서도 기소중지가 내려졌고, 찾았다는 연락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내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구인정보를 보고 찾아간 문구 대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나름 성실히 일한 나를 ​사장님이 계열사에 추천해준 겁니다. 난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급여가 많고 적음을 떠나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장인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물론 당시에 진 빚은 10년 이상 나를 따라다니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은 내게 기쁨이었고 더할 나위 없는 감사였습니다.

15년이 흘렀습니다. 2015년 4월, 지금도 난 아침마다 출근함에 감사합니다. 관리자가 되어 대전을 떠나 서울에서 몇 년을 보내고 다시 울산으로 발령받아 바닷가에 살고 있습니다. 가끔 직장에서 해고되는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그러다 깨고 나면 호흡을 크게 하고 오늘 회사에서 할 일을 머리에 그려봅니다. 지난 금요일(24일)​, 마트에서 아들 둘과 함께 있는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여보 사랑해."
"응 그래. 바쁘니까 끊어."

헐~ 이건 뭘까요? 참으로 냉정한 아내입니다. 내가 고3, 그녀는 중3으로 처음 만나 긴 이별과 짧은 만남을 반복한 그녀. 대학 졸업 후 결혼을 약속했지만 가슴에 짓무른 상처만 남기고 헤어진 바로 그녀입니다!

"사랑한다는데 전화를 끊으면 어떡해?"
"아, 미안. 지금 애들 잡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따 몇 시에 데리러 올 거야?"
"8시는 넘을 것 같아."
"알았어. 그리고 나 내일 낮에 영화 보러 갈 테니까 애들 좀 봐줘."
"알았어. 나도 저녁에 영화 볼 거야."
"그래? 뭐 볼 건데? 예매해줄게."

난 오늘 저녁도 그녀를 데리러 갑니다. 두 아들과 함께 남편을 기다리는 그녀에게로.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IMF, #위기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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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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