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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케시 작은 마을에서 만난 요기. 그는 수염을 땅에 닿을 만큼 기르고 있었다.
 리시케시 작은 마을에서 만난 요기. 그는 수염을 땅에 닿을 만큼 기르고 있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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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수행자, 요기나 구루(스승)들을 만나보기 위해 좀 더 후미진 곳을 찾아 나서려 했지만 나 혼자만의 여행길이 아니다. 내 옆에는 줄곧 바라나시에서 만난 여행 동반자, 그녀가 있다. 내 여행길에 기꺼이 동참하긴 했지만, 그녀는 요기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 요기들보다는 낯선 먹거리와 낯선 풍경들을 보고 즐기는데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질 않던가. 요기들을 만나기 전 먼저 요깃거리를 찾아 나섰다. 어제 아침부터 열차를 타고 오면서 거의 24시간 동안 오렌지와 바나나 몇 개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갠지스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한 카페를 찾아갔다. 그녀가 인도 안내서에서 찾아낸 곳,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카페였다.

눈 맑은 요기는 어디에 있을까

리쉬케시, 강가(갠지스 강) 사이에 놓여져 있는 구름 다리에도 여지없이 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아예 누워 있기도 한다.
 리쉬케시, 강가(갠지스 강) 사이에 놓여져 있는 구름 다리에도 여지없이 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아예 누워 있기도 한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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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케시 강가 주변에는 아쉬람과 요가 센터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리시케시 강가 주변에는 아쉬람과 요가 센터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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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줄기가 보기 좋게 펼쳐진 창가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뒤편에서 한국말이 들려온다. 한국인 아줌마와 일본인 여자다. 한국인 중년 여성은 패키지 여행을 왔는데 비수기라서 혼자라고 한다. 젊은 일본인 여자는 여행 가이드라는데 한국말을 곧잘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국 아줌마를 마주 대하는 시선이 자꾸만 움츠려들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인도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 풍경 좋은 카페에서 단둘이 앉아 식사를 하는 일이 편치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인도 땅이었지만, 여자와 단둘이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손 한 번 잡아 본 사이도 아니었지만, 공연히 바람피우다가 들킨 놈처럼 마음 한구석이 내내 편치 않았다.

우리는 카페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와 따로 떨어져 각자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했던가, 내 눈빛이 맑지 않아서일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봐도 자비심 가득한 눈 맑은 요기는 보이지 않았다. 강기슭이나 나무 그늘서 평화롭게 명상에 잠긴 요기들의 모습조차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강가 주변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영화 제작국이기도 하다.
 강가 주변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영화 제작국이기도 하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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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요기는 보이지 않고 요가 센터와 아쉬람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아쉬람은 수행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먹고 자고 수행하는 우리의 선원이나 수도원 등에 해당하는 수련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인도 전역에 수십 만 개의 크고 작은 아쉬람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름 다리를 통해 강을 오가며 내가 기웃거린 아쉬람은 몇 군데에 불과했지만 대부분 상업화된 시설들이다. 칸칸이 들어서 있는 방들과 여럿이 함께 모여 요가를 배울 수 있는 너른 강단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쉬람과 요가 센터가 즐비한 갠지스 강 주변 전체가 명상적인 분위기로 조성돼 있을 것이라는 애초의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내가 찾고 있는 아쉬람은 초막을 짓고 무소유로 생활하는 지혜로운 구루(스승)로 부터 가르침을 받는 순수한 수행자 공동체였다. 거기서 나는 언어가 필요없는 무언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 복잡한 상가에서 벗어나 한적한 강가 마을 주변을 둘러보다가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수염을 기른 요기를 만났다. 종일 돌아다닌 끝에 처음 만나는 요기였다. 

"당신은 요기입니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영어, 이런 저런 복잡하고 가식적인 수식어를 빼고 다짜고짜 단순무식하게 묻자 그가 말없이 웃음으로 대답했다. 나는 짧은 영어로 혼자 생활하고 있다는 그의 신상 조사부터 했다.

"리시케시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습니까?"
"30년 됐습니다."

그는 리시케시에 자리를 잡고 영적 수행을 해 온 지 30년이 됐다고 했다. 그의 말을 이리저리 꿰맞춰 보면 리시케시의 아쉬람들이 대형화 되고 상업화 돼 예전과 다른 분위기라고 했다. 영적인 가르침조차 돈으로 환산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 마을에 수행자들이 얼마나 계십니까?"
"리시케시의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예전처럼 순수하게 수행에 전념하는 요기들도 많지 않습니다."

리시케시 강가 주변의 작은 마을에서 요기를 만나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나눴다. 요가의 본고장 리시케시는 이미 30여년 전부터 변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리시케시 강가 주변의 작은 마을에서 요기를 만나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나눴다. 요가의 본고장 리시케시는 이미 30여년 전부터 변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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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케시는 1960년대에 비틀즈 멤버가 그들의 영적 스승인 마하라시 마헤시 요기를 만나러 올 무렵부터 서구 세계에 널리 알려져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수많은 외국인이 몰려들었고 그에 발맞춰 요가 센터나 아쉬람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하지만 사람들이 몰려드는 만큼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그 순수성을 잃어왔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리시케시 모습의 전부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명상과 요가의 본 고장이라 일컬어 오고 있는 리시케시의 순수성이 30여 년 사이 변하고 있는 것 만큼은 사실인 듯싶다. 그 어느 곳이든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마련이다. 리시케시 강가 곳곳에서 진리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무소유의 요기들이 명상을 하고 있다고 묘사돼 있는 책, <히말라야의 성자들>(정신세계사 1989년 번역)들에 소개돼 있는 리시케시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요기들은 어디에서 수행을 하고 있나요?"
"대부분 히말라야 주변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수련을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영어가 짧아 깊이 있는 언어 소통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긴 수염의 요기와 함께 손짓 발짓으로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지나가던 몇몇 사람이 몰려 들었다. 낯선 외국인에 대한 인도 사람들의 호기심은 외국인들의 발길 잦은 리시케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의 수련 단체들에게서도 자본화되어가고 상업화돼가는 모습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어느 수련 단체에서는 돈을 많이 내는 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긴다. 수련비가 싸면 제대로 수련에 전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질을 멀리해야 마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음에도 돈과 마음 수련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 수련한 ○○○'식으로 현수막을 내거는 수련 단체도 생겨났을 정도다. 대통령이 수련하든, 거지가 수련하든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신분의 높고 낮음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 수련법을 익혔다는 대통령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고통 받는 사람을 더욱 고통에 몰아넣는 악질이었다.  그 수련법을 가르친 사람이 엉터리이거나, 그 대통령이 엉터리 수련자인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의 기본은 거짓 없는 참 마음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베푸는 마음, 자비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참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단체조차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켜 눈앞에 닥친 물질적인 이익만을 바라는 자본화, 상업화가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아쉬람 건물에서 세들어 살고 있는 네팔 부부. 수행자인 장인을 모시고 사는 남편은 운전기사 일을 하고 아내는 꽃을 팔고 있다.
 오래된 아쉬람 건물에서 세들어 살고 있는 네팔 부부. 수행자인 장인을 모시고 사는 남편은 운전기사 일을 하고 아내는 꽃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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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마음 수련법이라 하더라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그 마음 수련은 그 순간 퇴색되기 마련이다. 예로부터 제자들을 현혹시켜 먹을거리를 구걸하는 스승은 없었다. 돈을 요구하며 누군가를 가르치려 든다면 그가 어떻게 진정한 스승이라 할 수 있겠는가. 

수염 긴 요기의 집을 빠져나와 걷다가 너른 정원이 펼쳐진 낡고 오래된 건물을 만났다. 낡은 건물 뒤로는 숲이 있었고 그 너른 정원 앞에는 우뚝 솟은 고목이 있었는데 그 아래 열두어 살쯤 먹은 인도 아이가 오래된 정물화처럼 앉아 있었다.

소년은 부모와 함께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다고 한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일 나갔다는 소년의 부모는 만나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소년네와 한 건물에 세 들어 산다는 또 다른 가족을 만났다. 남자는 운전 기사, 여자는 꽃을 팔아 생활하고 있는 네팔 부부였는데 수행에 전념하고 하는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장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들이 생활하는 아주 작은 방으로 안내하더니 인도의 전통 차, 짜이를 내왔다. 그가 장인을 모시고 이 집에서 머물게 된 것은 2년도 채 안 됐다고 한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몰려 들었다는 200년 전통의 아쉬람.  지금은 이 낡은 건물에서 두 가족이 세 들어 살고 있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몰려 들었다는 200년 전통의 아쉬람. 지금은 이 낡은 건물에서 두 가족이 세 들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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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까지만 해도 이 집에 요기들은 물론이고 명상 수련을 하는 수많은 외국인이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2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아쉬람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기운을 잃고 건물조차 칙칙하게 변해 버렸지만, 20여 년 전까지 만 해도 집 앞의 너른 정원, 커다란 고목 나무를 중심으로 요기나 외국인이 명상을 했다는 것이었다.

네팔 부부가 내주는 짜이를 마셔가며 달콤한 상상을 해보았다. 지금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밝고 화사한 색을 칠한 건물, 곳곳에 꽃이 피어 있는 정원, 푸르게 그늘진 고목 나무 아래 평화로운 얼굴로 명상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더러는 꽃향기를 맡아가며 너른 정원과 집 뒤 숲을 한가롭게 걸었을 것이다. 얼마간의 수련 기간을 마치고 나면 고국으로 돌아가 명상을 통해 얻어진 평화로운 자비심을 주변 사람에게 베풀었을 것이다.

"이 마을에 그 많던 수행자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 마을 곳곳에는 이런 작은 아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수행자가 편의 시설이 갖춰진 큰 아쉬람에 머물고 있지요."

그 많던 사람이 방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욕실이 갖춰진 시설 좋은 아쉬람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돈만 있으면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요가 시설들이 늘어나면서 이 마을에 점점 외부 사람의 발길이 사라져 갔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요가 아쉬람을 소개해 드릴까요?."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마음가는 데로 떠나시게나"

강가에 띄울 꽃등 앞에두고 기도하는 인도 아낙네.
 강가에 띄울 꽃등 앞에두고 기도하는 인도 아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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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맑은 요가 수행자를 만날 수 있다면 이 마을에서 한 달 이상을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업화된 아쉬람이나 요가 센터에서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듯 사나흘 길게는 일주일가량 요가를 배운들 무엇하겠는가 싶었다. 마음 자리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요가나 그 어떤 수련법을 배우게 된다면 기계 체조를 배우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이것저것 볼 것 많고, 경험해 보고 싶은 거 많은 그녀는 나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리시케시에 오기 전부터 며칠 동안만이라도 요가를 배우고 싶어 했다.

"원하시면 여기 남아서 요가를 며칠 배우고 가시죠. 나는 강고뜨리로 가야 할 것 같네요."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마을을 빠져나와 그녀와 잠시 헤어져 상가에 자리 잡은 여행사를 찾아갔다. 나는 그 어떤 목적도 없이 단순히 눈 맑은 요가 수행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히말라야 설산이 인접해 있는, 강가(갠지스 강)의 발원지 강고뜨리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강고뜨리로 향하는 버스길이 끊겼다고 했다. 4월 초순임에도 히말라야 기슭으로 들어가는 길은 눈길로 막혀 있다는 것이었다. 4월 말이나 5월 초순이 돼야 버스길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히말라야 설산과 눈 맑은 요기들을 만날 수 있는 강고뜨리를 오가며 리시케시에서 최소한 일주일 이상 머물고자 했던 계획이 어긋났다. 가는 길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그녀,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더할수록 단순한 여행 동반자가 아닌 존재로 다가오는 그녀와 헤어져 단독 여행길에 오르려 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그녀에 대한 갈등으로 오락가락했다. 그녀에게 집착할수록 한시라도 빨리 그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저녁 무렵 그녀를 다시 만났다. 저녁 요기할 빵 몇 개를 사 들고 숙소로 들어서기 전에 강가로 나섰다. 외국인과 인도 사람이 한데 어울려 모래 사장에 누워 있거나 편한 자세로 앉아 고즈넉한 강줄기를 바라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옆에서는 강기슭의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던져 주고 있었다. 연못도 아닌 이 너른 강가에 물고기들이 푸드득 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또 한옆에서는 각자의 염원을 담아 꽃등을 피워 강물에 띄우기도 했다.

모래 사장 주변에 개들도 누워 있다. 우리는 개들과 사람들 사이에 앉아 묵묵히 흘러가는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평화 그 자체였다. 강줄기를 앞에 둔 저녁 풍경, 그 자체가 평화로움이 담긴 눈 맑은 요기처럼 다가왔다.

내 옆으로 개 한 마리가 다가왔다. 녀석은 내게 몸을 부벼댔다. 녀석을 어루만지고 있는 사이에 하늘은 시나브로 어둠으로 바뀌어 가고 하나 둘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어지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간다.

별빛 박힌 어둠을 이불 삼아 이 평화로운 공간에 내내 누워 있고 싶었지만 함께 여행길에 나선 그녀가 문제였다. 그녀는 낯선 곳에서의 어둠이 두려울 것이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개를 만지고 눈병으로 고생했던 바라나시가 떠올라 차가운 강물에 손을 씻었다. 손을 씻고 있는데 어머니의 강, 강가(갠지스 강)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별빛 아래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게나, 이 평화로운 강가 자체가 그대가 만나고 싶어 하는 눈 맑은 요기가 아닌가. 그동안 그대가 만난 사람들, 그대에게 미소를 건넨 모든 사람이 그대의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요기였다네. 하물며 그대에게 눈병을 옮겨 준 개들조차 요기였다네. 그대 발걸음 마다 눈 맑은 요기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마음 가는 데로 떠나시게나."

저녁무렵 리시케시 강가, 모래사장에 몰려 나온 사람들
 저녁무렵 리시케시 강가, 모래사장에 몰려 나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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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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