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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녹슬어 있는 시골버스. 녹슨 부분에 흰 페인트를 칠한 이 버스와 장장 10시간 동안 함께 했다. 달렸다. 열차에서보다 좀 더 가까이에서 인도를 만날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녹슬어 있는 시골버스. 녹슨 부분에 흰 페인트를 칠한 이 버스와 장장 10시간 동안 함께 했다. 달렸다. 열차에서보다 좀 더 가까이에서 인도를 만날수 있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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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그녀가 방문을 두드렸다. 버스길이 막힌 강고뜨리 대신 알모라(Almora)로 가기 위해 이른 아침 버스를 타기로 했던 것이다. 그녀는 리시케시에 남아 요가를 배우는 일을 포기하고 나와 함께 며칠 더 동행하기로 했다. 혼자 남아 있기에는 무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알모라로 향하는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 어디든 히말라야 설산 가까이로 가고 싶었고 히말라야 설산이 보인다는 그곳이 알모라였던 것이다. 북인도 우타란찰 주에 속해 있는 알모라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알모라를 거쳐 들어가는 코사니(Kausani)였다.

히말라야 설산을 사시사철 눈앞에 펼쳐놓고 있다는 코사니는 인도에 오기 전에 내가 묵고 있던 토굴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던 소설가 송기원 선생이 적극 추천해 준 곳이었다. 20여 년 전 선생의 인도 여행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곳 중에 하나가 바로 간디 아쉬람이 자리한 코사니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알모라와 코사니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형편없이 낡은 버스,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폐차 직전의 시골버스. 좌석 시트가 죄다 떨어져 나가 있고 판대기로 등받이를 한 곳도 보인다.
 폐차 직전의 시골버스. 좌석 시트가 죄다 떨어져 나가 있고 판대기로 등받이를 한 곳도 보인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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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로컬버스라 부르고 있는 시골버스는 형편없이 낡아 있었다. 외형은 접촉사고로 여기저기 찌그러져 녹슬어 있었고, 그 녹슨 부분을 하얀 페인트로 조악하게 감추고 있었다. 거기다 좌석 시트는 죄 뜯겨져 있었고, 나무 판때기로 마감한 등받이도 보였다.

폐차장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인 낡은 시골 버스였지만 심장은 끄떡 없이 살아있다는 것을 시위하듯,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순간 나는 숙소에 타월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세탁한 지 오래된 숙소 침대 시트 위에 깔거나 명상할 때 숄처럼 어께에 두르기 위해 어제 구입했다. 거금 400루피(8000원 정도)에 구입한 것이라서 아쉬웠다. 아침부터 서두른 탓이다. 느려터진 내가 서두르게 되면 꼭 후회할 일이 생기곤 한다.

장거리 버스라고는 하지만 시내버스나 다름없었다. 시골 곳곳을 돌면서 중간 중간에 수없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버스 종점에서 자리를 잡았기에 망정이지 중간에 탔다면 서서 가는 시간들이 더 많았을 것이었다. 아침부터 반나절을 달려 온 버스는 주변에 집 한 채 없는 허허 벌판, 외떨어진 식당 앞에 멈춰 섰다.

민가 한 채 없는 허허벌판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거의 한 시간만에 다시 출발했다.
 민가 한 채 없는 허허벌판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거의 한 시간만에 다시 출발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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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릴 때는 그나마 차창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는데 멈춰 서 있는 버스 안은 후덥지근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부른다.

"헤이!"

나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인도 청년이었다. 인도 안내서에는 시골버스에서 내리고 탈 때 분실한 사례가 많으니 소지품 잘 챙기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버스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환한 미소로 나를 부르고 있는 그 청년 손에는 내가 깜빡하고 좌석에 놓고 온 모자와 사진기 보호집이 들려있었다.

식당을 찾는 버스 손님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버스 승객들 대부분 한 푼 두 푼이 아쉬운 시골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싶다. 파리 떼가 들끓는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펩시콜라 간판만큼은 번듯했다.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버스길에서 만난 시골 곳곳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간판이 화려하게 점령해 있었다.

나와 좌석을 따로 잡고 앉아 있던 여행 동행자인 그녀는 버스 안에 내내 앉아 있었다. 시설이 형편없는 다 낡은 버스, 쉬다가다를 반복하는 장거리 여행길이 고단한 모양이었다. 나무 그늘 밑에서 바나나와 어제 저녁 먹다 남은 빵으로 대충 허기를 때우고 앉아 있는데 열 살 쯤 돼 보이는 아이가 내 주변에서 머뭇거리며 히죽히죽 거린다.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손님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식사 메뉴를 큰 소리로 외쳐댔던 식당 아이였다. 그 큰 눈망울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외국인을 처음 보는 모양이다.

"나마스테."
"나마스테…."

내가 공손히 합장을 하며 인사말을 건네자 녀석이 해맑게 웃는다. 웃음은 어느 장소에서건 기분 좋게 만드는 묘약이다. 도무지 출발할 생각조차 하지 않던 버스가 요란하게 시동을 건다. 식당 앞에 멈춰 선 지 1시간쯤 지나서였다.

"종점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노 프라블럼."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젊은 차장이 '문제없다'며 배시시 웃는다. 동문서답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이 맞다. 비록 폐차 일보직전의 버스지만 도착지점을 향해 아무런 문제없이 잘 달리고 있는데 걱정할 게 무엇인가. 5시간이 걸리든 10시간이 걸리든 사고가 없는 한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버스 도착 시간을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알모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하지만 우리가 탄 시골 버스는 알모라가 최종 종착점이 아니라 내니딸(Nainital)이라는 곳이었다. 거기서 다시 알모라로 향하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내가 버스 안에서 조급한 마음을 내든, 여유로운 마음을 내든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 내니딸에 도착한다 해도, 딱히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둘러 볼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조급하게 서두를 것이 없다. 조급한 마음은 내 자신만 불편하게 할 따름이다. 버스 도착 시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와 상관없이 버스가 알아서 갈 것이다.

시간은 존재가 없다. 텅 빈 공간이나 다름없다. 한정된 공간에서 이유 없이 시간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그 시간의 공간속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시골 버스는 두 가락의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와 또 다르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서고 가기를 반복한다. 장거리 시골버스를 내리고 타는 다양한 인도 사람들과 눈빛을 마주쳐 가며 미소를 주고받을 수 있다. 열차보다 좀 더 가까이에서 인도를 읽을 수 있다. 인도를 보다 가까이에서 만나게 해주는 수단이 흔히 말하는 로컬버스, 바로 이 시골버스인 것이다.

물 뿌리니까 바로 올라오는 수증기, '열 받은' 버스

시골 도로변 곳곳에 겨우 비바람 피할수 있는 움막들이 들어서 있다.
 시골 도로변 곳곳에 겨우 비바람 피할수 있는 움막들이 들어서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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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사탕수수와 보리수확이 한창인 4월 초순의 들판을 내달린다. 어느 지점에서는 울창한 숲이 보이고, 어딘가에는 너른 평원에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한쪽에서는 모내기를 하고 한쪽에서는 보리를 수확하는 곳도 보인다. 하르드와르행 열차에서 보았듯이 논 밭 주변에는 어김없이 농부들에게 푸른 그늘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고목이 서 있다. 소달구지가 지나가는 길 한 옆에는 거적때기로 엮어 비바람을 겨우 가린 움막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 한국 같으면 미관을 해친다고 산속 깊은 곳으로 내쫓았을 것이다.

도로공사가 한창인 먼지 풀풀 날리는 울퉁불퉁한 신작로를 달릴 때, 버스 안은 온통 먼지구덩이가 되고 엉덩이가 텅텅 튀어 오른다. 이제 비로소 인도에 깊숙이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리딸 가는 길목 '하리드와니'라는 곳에서 약과 목걸이를 팔고 있는 잡상인.
 내리딸 가는 길목 '하리드와니'라는 곳에서 약과 목걸이를 팔고 있는 잡상인.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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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니딸로 들어서는 길목, '하리드와니'(Haidwani) 라는 곳에서 버스가 멈춰 섰다. 수많은 버스들이 무질서 하게 얽혀 있는 주차장을 견주어 본다면, 하리드와니는 제법 큰 도시인 듯하다. 버스 승객들을 물갈이 하듯 함께 달려 왔던 승객들 대부분이 내리고 다시 올라탄 사람들이 좌석을 얼추 메웠다.

버스가 잠깐 멈춰 서 있는 사이에 오래 전 우리네 시골 버스에서처럼 약장사가 올라와 힌두어로 뭐라 뭐라 큰 소리로 말한다. 그의 양손에는 약통과 목걸이가 각각 들려 있었는데 그 목걸이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아무데나 대고 후려쳐 보고 칼로 긁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목걸이는 말짱하다.

하리드와니의 도심을 벗어나자 버스는 가파르고 고불고불한 산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 비좁은 산길에 접어들자 앞차가 조금이라도 해찰을 부리면 너나 할 것 없이 귀가 따갑도록 경적을 울려가며 추월을 감행한다. 추월할 때마다 자동차와 자동차가 아슬아슬 비껴간다.

정신없이 내달리던 버스는 산악도로 중간쯤에서 멈춰 섰다. 트렁크를 열어 엔진 부위에 물을 부어댄다. 얼마나 열이 받았을까. 장작불에 물을 부을 때처럼 수증기가 솟구친다.

산길로 접어들면서 버스 트렁크를 열어 물을 부었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수증기가 올라왔다.
 산길로 접어들면서 버스 트렁크를 열어 물을 부었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수증기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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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지저분한 간이 화장실에서 오줌을 뽑아내고 나오는데 하리드와니에서 올라 탄 녀석들이 내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요구한다. 고등학교 과정을 밟고 있다는 녀석들은 단체 사진을 찍더니 다시 한 놈 한 놈 차례로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한다.

"좋다. 한 사람 당 10루피씩만 내라."
"좋아요. 좋아요."

졸지에 사진 모델이 된 내가 녀석들에게 10루피씩 내라고 농담을 건네자 환하게 웃는다. 녀석들의 웃음이 장기간의 고된 시골버스 여행길을 가볍게 해주었다.

고등학교 과정을 밟고 있다는 인도 청소년들. 나는 버스를 함께 타고 온 녀석들의 사진 모델이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과정을 밟고 있다는 인도 청소년들. 나는 버스를 함께 타고 온 녀석들의 사진 모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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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다시 고불고불한 산비탈을 달린다. 버스 승객들의 운명은 운전기사에게 달려 있다. 생사여탈권을 거머쥔 염라대왕의 든든한 '백'이라도 있는 것처럼 사정없이 핸들을 잡아 돌려가며 마구마구 달린다. 가끔씩 추월하다가 앞에서 달려오는 차와 간발의 차이로 빗겨나기도 한다. 한국이었다면 멱살잡이와 욕설이 난무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다들 무덤덤하다. 인도 운전자들은 이런 상황들이 일반화 되어 있는 듯 보인다.

무질서 속에 나름 질서가 있어 보인다. 경적을 울려가며 추월하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서 나름의 질서인 것이다. 그 '추월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질서와 무질서 모두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아침 8시 무렵에 리시케시를 출발하여 거의 10시간 만인 오후 5시 30분쯤에 지리산 천왕봉 높이의 고지대에 자리한 내니딸(해발 1938m)에 도착했다. 흉폭한 운전이었지만 폐차 직전의 낡은 버스를 사고 없이 용케 몰고 와 준 운전기사가 고맙다. 운전기사에게 고맙다며 '나마스테' 인사를 했더니 환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유럽풍 호반도시 내니딸, 그곳에서 만난 '치느님'

해발 2000m에 가까운 내니딸 한가운데 호수가 들어서 있다,  호수를 끼고 있는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놀이용 물오리 몇 마리가 떠 있는 호수 주변 산비탈에는 크고 작은 숙소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어딘지 모르게 사진에서 본 유럽 분위기다. 나중에 자료를 통해 알게 된 것인데 내니딸이 유럽 분위기를 갖추게 된 것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영국인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영국의 캠브리아 지방의 호수를 떠올리며 꾸민 도시라는 것이다.

이곳 내리딸에 비해 그 규모는 작지만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유럽식 풍경을 보기 위해 인도에 온 것이 아니었다. 주차장이 들어서 있는 호수 앞 좁은 광장에 서 있는 간디 동상을 제외하고는 '여기는 놀고먹고 즐기는 관광지'라는 딱지를 곳곳에 붙여 놓은 듯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알모라 가는 버스 편을 알아봤다. 오후 6시도 채 안됐는데 알모라 가는 버스 편이 뚝 끊겼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호반의 도시, 내니딸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화덕에 굽는 인도의 전통 닭구이 '탄두리 치킨'
 화덕에 굽는 인도의 전통 닭구이 '탄두리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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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숙소를 잡아 놓고 식당부터 찾았다. 사흘 동안 밥 한 끼 사먹고 나머지는 과일과 빵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사흘 동안 20시간의 장거리 열차에 10시간 동안 시골버스를 타고 왔기에 다소 지쳐 있었다. 먹고 자는 것을 가벼이 여기는 내 방식에 동참하고 있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저녁을 닭고기로 해결하기로 했다.

내리딸이 유럽풍의 도시라 하지만 식당이 들어서 있는 골목길은 혼잡한 인도풍이었다. 우리는 허름한 식당에 찾아들어 인도식 전통 닭구이라 할 수 있는 '탄두리 치킨'를 주문했다. 카레 등의 양념을 바른 닭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화덕에 구워 내는 탄두리 치킨의 맛은 일품이었다.

사흘 내내 한 끼 식사를 사 먹고 나머지는 바나나와 빵으로 해결했다. 내니딸의 식당에서 영양 보충을 위해 '탄두리 치킨'을 먹었다.
 사흘 내내 한 끼 식사를 사 먹고 나머지는 바나나와 빵으로 해결했다. 내니딸의 식당에서 영양 보충을 위해 '탄두리 치킨'을 먹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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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그녀와 할 일 없이 베란다에서 주변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앞서 구령을 붙이면 뒤이어 기합소리를 일제히 쏟아내고 있었다.

"잠깐 내려갔다 올게요."
"어딜 가시는데요?"
"어딘가에서 태권도를 하는 거 같아서."

그 익숙한 기합 소리는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도복과 운동복 차림으로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의 우렁찬 기합소리였다. 30여 년 전 군 입대 전에 태권도 사범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거의 같은 구령과 기합소리였던 것이다.

낯선 인도 땅, 그것도 그 이름조차 인도에 와서 처음 접했던 내리딸이라는 곳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을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반가운 나머지 사범으로 보이는 젊은 인도 청년에게 불쑥 다가갔다.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이제 운동을 시작했어요. 기다려 주셔야겠네요."

사범의 구령에 맞춰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북인도 내니딸 아이들.
 사범의 구령에 맞춰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북인도 내니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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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청년은 태권도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 저만치에 앉아 있는 아줌마들의 눈치를 보며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휙휙 허공을 가르는 아이들의 멋진 발차기를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 아줌마들은 자식들을 따라나선 듯했다. 한국에서처럼 자식들 챙기는 극성 아줌마들은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모양이다. 

숙소에서 나와 태권도를 보러 온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 때문이었다. 초저녁부터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낯선 장소에서 유일하게 아는 그녀, 그녀와 베란다에서 마주 앉아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각각 방을 따로 쓰고 있지만 한 지붕 밑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내내 거북했다. 나의 탐욕스러운 속마음이 튀어 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그녀와 바라나시에서 처음 만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을 이웃해서 지낸 지 벌써 일주일이 넘어 서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는 점점 그녀에게 집착하면서 '불온한 로맨스'를 꿈꾸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불온한 로맨스'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태권도 수업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내 손에는 어느새 술병이 들려 있었다. '그녀와 미리 이별주를 나누기 위한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놓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녀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베란다에서 술잔을 앞에 놓고 그녀와 마주 보고 앉았다. 그녀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술잔을 놓고 단 둘이 마주 앉은 것이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야경이 반사되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여신의 에메랄드 눈빛을 닮은 호수, 그리고 그녀

호반의 도시 북인도 내니딸. 알모라로 가는 버스가 끊겨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호반의 도시 북인도 내니딸. 알모라로 가는 버스가 끊겨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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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와서 손전화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내니딸의 '내니'는 힌두어로 눈을 의미하는 나인(nain)에서 유래 되었단다. 내니딸 호수는 시바 신의 첫 번째 부인인 사티의 에메랄드빛 눈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산기슭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문명의 불빛이 시바 신의 부인 사티의 눈에 반사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마주 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질 못했다.

"야경이 좋네요."
"예, 밤 풍경이 참 좋네요."
"먹는 것도 시원찮고, 숙소도 싼 곳만 찾아다니고... 괜히 나를 따라나서서 고생만 하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걱정 없이 여행하고 좋은 데요 뭘. 저 때문에 신경 많이 쓰이시죠?"
"아뇨, 혼자 다니는 것 보다 좋죠 뭐."

나는 손사래를 쳐가며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제 따로 따로 제 갈 길을 가자고 말하고 싶었던 자리였는데 자꾸만 엉뚱한 말이 튀어 나오고 있었다. 내 속마음은 다중인격자처럼 오락가락 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저 황홀한 야경처럼 그녀를 아름답게 바라보며 순간을 즐기자'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고 다른 한 편에서는 고행 수도승처럼 스스로를 질타하고 있었다.

'이런 화려한 밤 풍경이나 감상하러 인도까지 온 것인가. 욕정을 품어가며 여자의 환심이나 사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나는 애초에 몸과 마음이 걸림 없는 자유로운 수행자가 되고 싶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처럼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는 조르바가 되어 거침없이 떠돌고 싶었다.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나 자신을 훌훌 던져버리고 끈 풀린 개처럼 자유롭게 떠돌며 집착 없는 사랑도 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욕망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는 돼지처럼 자유를 누리자는 것은 아니었다. 자본으로 뒤룩뒤룩 살찌운 돼지들 또한 자유분방한 '조르바'를 추종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르바의 자유분방은 분명 자본으로 살찌운 돼지들이 생각하는 그런 자유분방과 다르다.

자본의 돼지들은 조르바의 자유분방, 그 이면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인연 닿는 대로 사랑을 나누는 '조르바'의 자유분방함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 사선을 넘나들었던 피의 혁명이 있었고 생사를 초월한 삶의 여정이 있었다. 하지만 자본의 돼지들에게는 그런 조르바의 삶은 불필요하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본능에 충실한 자유분방함만을 추구한다. 내 마음 한편에도 그런 겉만 번지르르한 자유를 내세워 욕정에 집착하고 있는 돼지 한마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고행승처럼 '탐욕스런 돼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 나갔다.

두어 잔의 술잔을 비운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먼저 들어가겠노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 그러시라' 하면서 홀로 남아 술병을 마저 비운다. 내 머릿속에서는 '내일 아침 일찍 알모라 행 버스를 타야 한다'며 7시 첫차 시간이 맴 돌고 있었다. 그렇게 인도에서의 또 다른 하룻밤이 시간의 관념에 사로잡혀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처럼 맥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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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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