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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디어는 말할 것도 없이 영어도 못하는 수염 허연 놈이 홀로 배낭 메고 인도·네팔·티베트의 옛땅 라다크를 헤매고 다녔다.

인도여행 경고장이나 다름없는 안내서를 어느 순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한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조차 만나기 힘든 작은 농촌 마을을 찾아다녔다. 거기서 힌두교·시크교·이슬람교·티베트 불교인들과 순례자, 수행자, 농부, 노동자, 수많은 아이를 만났다.

그들을 만나면서 영어를 못 한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론 말과 언어에 스스로 갇히는 경우가 많다. 입과 귀를 닫고 있으면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인도·네팔을 끈 풀린 개처럼 떠돌아다니며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 - 기자 말

해외여행객으로 붐비는 인천공항 출국장 모습.
 해외여행객으로 붐비는 인천공항 출국장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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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4일. 인천공항. 촌놈, 어리바리한 모습을 감추려고 탑승 수속 대기실 앞에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폼잡고 앉아 있다. 묵직한 배낭에 비스듬히 기대서 턱 하니 다리까지 꼬고 있다. 불과 며칠 전, 산에 처박혀 있던 촌놈에게는 수많은 사람의 온갖 표정과 형형색색 옷차림조차 낯설게 다가온다.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점검에 들어간다. 6개월 인도 비자로 5개월 동안 인도와 네팔을 헤매고 다닐 작정이다. 본래 6개월을 꽉 채울 예정이었는데 미리 비자를 받아 놓아 한 달 정도를 까먹었다.

비자 발급 절차가 2014년 3월 3일부터 바뀐다고 해(한남동 인도대사관에 직접 방문해 지문날인과 안면 사진을 찍어야 됨) 그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여행사를 통해 2월 중순경에 비자를 신청했던 것이다. 떠나기 전에 아쉬움이 있다면 그게 전부였다.

여행 영어? 인천공항에서 간단하게 테스트

인도행을 결심했을 때 사전 지식 없이 무작정 나설까 하다가 주변 사람들이 소개해 준 이런저런 인도 관련 인터넷 카페를 기웃거렸다. 당장 비행기 탑승 수속을 어떻게 할 것이며 그와 함께 이어지는 복잡한 절차에 따른 탑승하기까지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인도여행 관련 인터넷 카페는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알려주고 있었지만, 그 온갖 자료들이 머릿속에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지난 2006년 12월 15일 오후 4시경 김포공항에서. 이 털고무신의 주인공이 바로 나다. 일본에 놀러가면서 이렇게 마실 가듯 폼을 부릴 수 있었던 것도 다 동료 시민기자들 덕분이었다.
 지난 2006년 12월 15일 오후 4시경 김포공항에서. 이 털고무신의 주인공이 바로 나다. 일본에 놀러가면서 이렇게 마실 가듯 폼을 부릴 수 있었던 것도 다 동료 시민기자들 덕분이었다.
ⓒ 윤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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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은 오래 전 일본에 며칠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한일 시민기자 교류 행사에 곁다리로 따라나선 것.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동료 시민기자들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녔기에 별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전혀 다르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단독 비행'이다.

낯선 땅 인도를 돌아다니는 것은 둘째 치고 당장 인천 공항에서의 비행기 탑승조차 까마득했다. 하여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몇몇 친구를 사귀었다. 생면부지,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 그 친구들과 카카오톡(아래 카톡)을 통해 문자를 주고받으며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자꾸만 길이 어긋나고 있었다.

카톡도 이번에 인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불과 일 주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기에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속으로는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겉모습은 생판 달랐다.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마을 산책 나서는 평소 옷차림, 대충 차려입은 차림새만 봐서는 외국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완전 베테랑 해외여행자처럼 생겨 먹었다.

수속 절차를 밟기 위해 무한정 카톡 친구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 자리 바로 옆에 스물 댓 살 먹어 보이는 인도 청년이 그 큰 눈을 때굴때굴 굴리며 배시시 앉는다. 이번 여행길에서 사용해야 할 언어 영어, 실험 삼아 아주 간단한 영어 몇 마디를 던졌다.

"인도 사람이냐? 1시 50분 비행기를 탈 예정인가? 나도 그렇다."

영문법과 전혀 상관없는 단어 몇 개를 나열하는 괴발개발 영어다. 그래도 대충 알아듣는 눈치다. 인도 청년은 나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한 번 알아 맞춰보라는 식으로 여유를 부리며 슬쩍 웃기만 했더니 다시 묻는다.

"혹시 네팔 사람 아닙니까?"
"아니요, 한국 사람입니다."
"인도에 얼마나 많이 다녀왔습니까?"
"처음 가는 길입니다."

초행길이라고 하자, 그는 내 차림새와 생김새를 슬쩍 훑어본다. 그렇게 이런저런 아주 기초적인 영어회화를 나누면서 대충 그의 신상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델리에 있는 삼성전자에서 일하고 있는데 경북 구미로 출장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향이 델리 근처에 있는 어느 작은 도시라고 한다.

저 친구 집에 놀러 가 볼까 싶었는데 그 이상의 깊이 있는 대화는 할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영어를 거의 모른다고 말하면 그냥 겸손한 말로 그러겠지 여긴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영어회화를 구사한 것은 거의 30여 년 만에 처음이고 그 까마득히 오래된 영어 실력은 중학교 초급 수준에 불과하다. 요즘 아이들 영어 실력으로 따지자면 초등학교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거기에 나이만큼 달라 붙어 있는 '눈치코치'가 큰 몫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인도 청년과 대화의 막다른 벽 앞에 다다를 무렵 나는 멋쩍은 웃음을 던지며 아주 아주 오랜 만에 구사하는 영어며 내가 가장 잘하는 대화는 '미소'와 '침묵'이라고 말해줬다. 이 말에 그가 검은 피부에 흰 치아를 들어내며 환하게 웃는다.

인도 청년과의 아주 짧은 대화였지만, 인도사람과 대충 '말이 통한다'는 것이 내게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입국 수속장으로 나서는 인도 청년의 뒤를 묵직한 배낭을 짊어지고, 자신만만하게 따라 나섰다.

해외여행 '까짓것'... 호기롭게 출국장을 찾아 나섰다

그때 만나기로 약속했던 카톡 친구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입국 수속을 밟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내 위치를 알려 줬지만, 카톡 친구 역시 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출국장을 찾아 줄을 섰다. 카톡을 통해 세 명이 함께 있다는 문자를 따라 대충 눈을 굴렸는데 찾아낼 수 없었다. 다시 문자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자신들은 수화물 검사소에 있는데 비행시간이 20여 분 앞당겨진다니 서둘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수화물 검사소는 또 뭐란 말인가? 거기다가 완행버스도 아닌 것이, 비행시간을 앞으로 당기다니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입국 수속 절차에 따라 비행기 표를 받아 들고 서둘러 수화물 검사소를 찾았다. 대체 어디가 수화물 검사소인가?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혼잡스러운 시장바닥처럼 줄이 이어져 있는 수화물 검사소를 찾았다. 수화물 검사를 마칠 무렵 다시 문자가 날아왔다. 그 친구들은 이미 수화물 검사를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한참을 헤매다가 안내소를 찾아 거기서 일러준 번호를 따라 출국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어림짐작으로 찾아간 곳은 '에어인디아' 비행기를 타는 출국장이 아닌 듯싶었다.

혹시나 싶어 카톡 친구들을 찾아 두 눈을 이리저리 굴렸지만 내가 앉아 있던 출국장에는 몇몇 사람이 전부였다. "여기가 아닌개벼~" 싶어 다시 안내소를 찾아가 물었더니 10여 분 넘게 엉뚱한 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안내원은 내가 앉아 있던 바로 앞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라 한다. 다시 그 장소 앞으로 다가왔다. 낯선 장소 낯선 건물들 낯선 상점들, 오가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 아,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다.

평소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일이 거의 없는 나는 잠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중간 지점에 서서 그 두 자동 기계의 차이점을 혼동하고 있었다. 심호흡하고 나서 내가 알고자 하는 그 두 자동 기계의 차이점을 포기하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프리카인가 아마존인가 아무튼 어느 원주민들이 선교사의 짐을 지고 세월아 내월아 쉬엄쉬엄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자 선교사가 물었다.

"왜 계속 가지 않고 자꾸만 쉬어 가는가?"
"내 지친 영혼이 쉬어가자 한다."

나는 길게 심호흡하고 자동기계에서 빠져나와 무지막지하게 내 영혼을 뒤흔들고 있는 혼돈을 즐기기로 작정했다. 어느 순간 자동기계 시스템이 멈추고 사람들이 내 주변을 슬로 모션으로 지나가고 있는 듯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대략 3층 아래로 내려가 전철처럼 생긴 기차를 떠밀리듯 타고 내려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걷고 또 걸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거대한 자동기계의 부속품처럼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다.

국내 항공에서도 이렇게 헤매고 있는데 말귀조차 못 알아듣는 그 복잡하고 낯선 인도 땅을 어찌 가겠다는 것인가. 또다시 현기증이 몰려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서 또다시 길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만치 에어 인디아 출국장 번호가 보였다.

낯선 세계, 물질과 물질로 이루어진 본래의 모든 것들이 단순하게 정리되어 다가왔고 나는 그렇게 자동시스템의 부속품이 되어 그 복잡한 세계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다시 카톡 친구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그 친구 역시 나를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모양이다. 그 친구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은 출국장 부근 핫도그 가게 뒤편이라고 한다. 비행기 타는 공항에서도 핫도그를 파는 구나 싶어 신기했지만, 핫도그는 대체 어디서 팔고 있는지 도무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 인상착의를 문자로 날리고 핫도그 가게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자그마한 여학생 하나가 손짓하다가 잠시 멈칫 하더니 고개를 꾸벅 숙인다. 반갑다. 하지만 아주 어린 여학생들이다. 셋 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대학생이거나 최소한 20대 중반은 넘어 보이지 않는다.

아들과 동갑... 당황스러운 인도여행 동행들

인천국제공항에서 해외로 여행가는 관광객의 모습.
 인천국제공항에서 해외로 여행가는 관광객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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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도 당황스런 모양이다. 설마 했나 보다. 혹시 젊은 청년으로 오해할까봐 부러 내 아이디를 '아저씨'라고 했는데 저렇게까지 수염이 허연 아저씨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들이다. 비로소 내 나이를 떠올렸다. 오십 넷인가, 갑자기 나이조차 헷갈렸다. 넷이든 셋이든 다섯이든 무슨 상관있겠는가. 하지만 홀로 배낭 여행자의 나이로는 분명 적은 나이가 아니다. 대부분 내 나이쯤 되면 안내자가 따라 붙는 여행사를 통해 일정을 잡곤 할 것이다.

이들 중에 제일 나이가 어려 보이는 녀석이 까르르 웃으며 당돌하게 말한다. 아직 얼굴에 여드름조차 채 가시지 않은 어린 여학생이다.

"가장 어린 저하고, 가장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만났네요."
"나는 오십댄가? 거기는 몇 살여?"
"이번에 고등학교 졸업했어요."
"잉? 우리 아들하고 같네. 너 참 대단하다."

이번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 거기다가 한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가 열아홉 살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한 명은 대학을 갓 졸업했고 나머지 한 명은 같은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계를 냈다고 한다. 두 명은 오랜 친구이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는 나처럼 인도여행 관련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났다고 한다.

"근디, 인도 여행 경험 있는 사람?"

그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없는데요?"
"아이구 나두 처음인디....."
"정말요!"
"나는 그 쪽 일행들만 단단히 믿고 있었는디......"
"저희들도요."

모두가 초행길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들도 공항 대합실에서 만난 인도 청년처럼 당황한 눈치였다. 내 겉모습과는 생판 다르게 '인도여행 초짜라니'하는 표정들이었다.

"일단 뱅기부터 타고 보자. 어떻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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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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