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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 권력' 3인방 중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좌)과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우)
 '문고리 권력' 3인방 중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좌)과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우)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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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참모진들은 대통령의 은둔형 스타일과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수석비서관은 언론과의 접촉을 한사코 피하고 있습니다. 수석비서관들뿐만 아니라 김기춘 비서실장,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라 하더라도 일부 수석들은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 속 인물로만 접했을 뿐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최측근 '가신 그룹'인데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립니다. 이들이 박 대통령을 16년간 보좌하면서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물쇠'라고 불릴 정도로 입이 무거웠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3인방이 박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4월 대구 달성 보궐선거가 끝난 후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 입성하면서 이들은 보좌진으로 합류했습니다. 당시부터 이재만 비서관은 공약과 정책 분야를, 정호성 비서관은 정무와 메시지 기획을, 안봉근 비서관은 수행과 경호를 맡아왔습니다. 이재만 비서관이 맏형격이었고, 이들을 박 대통령 곁에 끌어들인 인물은 현재 국정개입 의혹의 중심에 선 정윤회씨였습니다.

2012년, 코미디 같았던 '문고리 3인방' 퇴진 요구

박 대통령이 국회에 입성한 이후 줄곧 곁을 지킨 이들 '3인방'은 정치권에서 '3선 의원급' 보좌진으로 불렸습니다. 이들을 '3선 의원급'으로 만든 것은 박 대통령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측근 및 동료 의원들과 직접 소통하기보다 이들을 통로로 활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을 보좌진을 통해 파악하려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그럴수록 이들에게 정보와 힘이 집중됐고 이 때문에 늘 '환관 권력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뒤따랐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박 대통령 주변의 '환관 권력' 문제가 처음 겉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2012년 대선 때였습니다. 대선 캠프에서도 이들은 박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선거대책위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이들과 달리 이들은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만 움직였습니다. 공개 활동이 없으니 내부 견제도, 검증도 불가능했고 당내에서는 이들이 책임 없이 과도한 권한만 행사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당시 박근혜 후보의 정수장학회 회견 파동을 계기로 '문고리 3인방'의 2선 후퇴 주장이 터져 나왔습니다. 당시 당과 대선캠프에서는 선대위 공식라인을 철저히 배제한 채 소수 측근그룹이 기자회견문을 작성했고, 결국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는 과거사 발언 실수가 나오고 말았다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리는 등 후폭풍이 일자 '3인방'이 새누리당 쇄신의 표적이 된 것이죠. 당내 의원들은 물론 전직 비상대책위원들까지 '문고리 권력' 2선 후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당 대표나 중진 의원 등 당내 권력자들이 아니라 4급 보좌관들을 상대로 거물급 정치인들이 퇴진을 요구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겁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끝내 이들을 지켰습니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측근 정치인들에게 배신 당한 것을 직접 봤다, 의원들보다 더 믿는 3인방을 내칠 수 있었겠느냐"라며 "인적 쇄신 요구에도 재신임을 받은 3인방의 힘은 더 세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하더군요.

청와대 입성 후 명실상부해진 '문고리 권력'

청와대 입성 후에도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국회와 대선캠프에서처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곳에 포진해 명실상부한 '문고리 권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안살림을 도맡고 있고 비서실장이 주관하는 인사위원회의 고정 멤버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인사위 내부에서 사실상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역할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문고리 권력'인 데다가 장·차관 및 정부 산하기관장, 공기업 기관장 인사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왕비서관'인 셈입니다.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은 대통령과 각 수석실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역할하고 있습니다. 정 비서관은 대통령에게 올라오는 보고서를 모두 취합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합니다. 또 대통령의 일정과 메시지도 최종 조율합니다.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출근할 때 동행하는 등 수행을 맡고 있습니다. 그만큼 관저 출입도 잦고 박 대통령과 거리가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힘은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최고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호가호위'나 '완장' 역할을 극도로 싫어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이들 3인방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맡겨진 업무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라고 말해 왔는데요.

채동욱 찍어내기・실세 권력암투설

그동안 이들 3인방을 둘러싼 구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론에 3인방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는데요. 대부분 과거 유신시대의 정치공작 냄새가 나는 음습한 사건들과 관련해서였습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아무개군의 개인정보를 불법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조오영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이 기소된 사건입니다. 처음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 청와대는 조 전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행위"라고 했지만, 그의 직속상관이 이재만 비서관이라는 점에서 '청와대 배후설'로 번졌습니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미행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현재 진위를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당시 미행 의혹의 배경으로 정윤회씨를 중심으로 한 문고리 3인방과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간 권력암투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이들 3인방은 집권 3년차를 앞두고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됐습니다.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박아무개 경정은 <시사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정윤회가 이재만과 안봉근을 통해 그림자 권력 행세를 한다고 들었다", "박지만 회장이 전면에 나서 문고리 권력들을 견제해야 한다", "(문고리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라고 말하는 등 3인방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나섰는데요.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고 있습니다.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정호성 비서관은 30일 보도된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문건 정확도는 0%다. 정윤회씨를 (청와대 들어온 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언론과 거리를 둬온 정 비서관이 인터뷰를 했다는 것 자체도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억울한 것일 수도, 아니면 그만큼 악화되는 여론 진화가 급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역대 정권의 발목 잡은 문고리 권력들

검찰 수사가 시작되긴 했지만 앞으로 청와대 문건의 진위가 가려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데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문고리 권력'들의 불투명한 권력 행사는 모두 끝이 좋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설 제1부속 비서관이었던 장학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양길승 제1부속 비서관, 이명박 정부 시절 김희중 제1부속 비서관은 모두 뇌물사건 등으로 사법처리됐습니다. 정권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비서관급은 아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수행을 담당했던 이재만 제1부속실 행정관은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수사선상에 올랐고 역시 옷을 벗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동명이인이네요.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고리 권력 주변에 어두운 그림자가 아른거립니다. 이미 지난 해 7월에는 한 교회 장로가 '이재만이 보낸 사람'을 사칭해 대우건설에 취직했는가 하면 또 다시 KT 회장까지 속이려다 사기행각이 들통나기도 했습니다. '환관 권력'의 폐쇄적 성격을 이용한 사기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검찰은 내용의 진위를 포함해서 이 모든 사안에 대해 한 점 의혹도 없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명명백백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 주길 바란다"라며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검찰에 가이드라인 제시한 박 대통령

하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보면 이미 '정윤회 문건'을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하기 전 "조금만 확인해 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 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 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처럼 비칩니다. 검찰 수사의 초점이 문건의 진위보다는 문건 유출에 맞춰질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태그:#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정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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