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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30일 오후 11시 35분]

28일 제일 마지막으로 증언한 F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토끼 인형을 안은 채 선생님과 함께 법정에 들어왔다. 그는 정신적 고통을 묻는 질문에 "조금…"이라고 답했지만, 증언 내내 다른 학생들보다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도드라졌다.

이날 나머지 학생들과 F학생의 다른 점은 사고 당시 위치였다. 증언에 나선 6명은 모두 4층 좌현 선미 쪽 다인실인 SP-1번방을 배정받은 학생들이었다. 나머지 5명은 사고 당시 모두 이 방에 있었다. 하지만 F학생은 당시 이 방이 아니라 친구 방인 B-22번방에 있었다.

B-22번방은 탈출하기에 매우 불리한 위치였다. 그 방은 4층 좌현 중앙부에 있었다. 선미 쪽 선실은 뒤쪽 비상구로 나갈 수 있었지만, 중앙 쪽 선실은 그게 쉽지 않았다. 좌우에 갑판으로 나가는 비상구가 있었지만, 왼쪽이 이미 침수된 상황이어서 실제로는 우측으로 탈출해야 했다. 하지만 배가 왼쪽으로 급격히 기운 상태에서 우측 출입문은 가파른 꼭대기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F학생은 살아남았다.

그의 생존은 친구들과 용감한 어른들 덕분이었다. 그를 방에서 끌어올린 것은 친구들이었고, 좌현 복도에서 우현 복도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우현 쪽 성인 승객들이 커튼을 여러 개 연결해 내려줬기 때문이며, 우현 쪽 복도에서 마지막 갑판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파란바지 아저씨' 김동수씨가 내려준 고무호스에 몸을 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생존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고 당시 같은 방에 있던 7명 중 생존자는 F학생을 포함해 단 2명이었다. 법정에서 변호사가 당시 복도에 있던 친구들이 다 나왔냐고 묻자 그는 "아뇨… 내가 마지막이었는데 물이 차서.…"라고 답했다. 이 말을 할 때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옆에 앉은 교사가 손을 꼭 잡아줬다.

다음은 F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어떤 아저씨들이 커튼을 묶어서 내려줬다"

[검찰 측 신문]

"SP-1번방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옷 갈아입고 하다가, 잠깐 친구 방(B-22번방)에 놀러갔을 때 배가 기울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복도 밖에 있는 아이들도 보지 못했다. 배가 기울 때 쿵 소리나 쇠가 긁히는 소리는 못 들었다."

"안내방송은 그냥…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대기하라고. 계속 똑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구명조끼 입으라는 방송은 못 들었는데, 복도 쪽에 있던 친구들이 전달해줘서 입었다. 곧 있으면 해경이 오니까 그냥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서 선실에 있었다."

"어떤 아저씨들이 커튼을 묶어서 내려줬다. 친구가 밖에서 끌어올려줘서 방에서 올라왔다. 나온 다음에 B-28번방 근처까지는 그걸 잡고 갔고, B-28번방 쪽에서부터는 고무호스에 몸을 묶은 다음에 갑판으로 나왔다. 해경은 배 안에서 말고 밖에서, 계단 올라갈 때 도와줬다."

"('파란바지 아저씨' 김동수씨 사진을 제시한 뒤 이 사람을 봤냐고 묻자) 봤다(고개를 끄덕임). 이분이 선원인지는 모르겠다(기자 주 - 김동수씨는 선원이 아니라 세월호에 탑승한 화물기사 승객이었다)."

"(계속 대기하다 탈출을 시작한 이유는) 헬기가 왔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즈음) 어떤 남자애가 '일단 선실 안에서 복도로 나가자'고 했다. 그 전까지는 금방 배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들어서…. 애들이 (선실) 밖에서 그럴 거라고 얘기했다."

"탈출하면서 다치진 않았다. (정신적 고통은 없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조금. 나도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줬으면 한다."

"같은 방 7명 중 몇 명이 나왔나" - "나까지 두 명..."

[변호인 측 신문]

"B-22번방에는 나까지 7명 있었다. 당시 복도에 친구들이 많이 나와 있었는데, 몇 명 정도였는지는 모르겠다."

"(복도에 있던 친구들도 많이 빠져나왔냐는 물음에) 아뇨… 내가 마지막이었는데 물이 차서…(목소리가 점점 작아지자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손을 꼭 잡아줌)."

- (재판장) 같은 방에 모두 7명 있었다고 했는데, 몇 명이나 나왔는가.
"저까지 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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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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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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