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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인 채로 누워있는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타들어가고 있는데, 분노마저 담고 있으려니까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으로 용서하고 싶어 당시 담당 의사를 찾아갔던 거예요."

우미향씨는 2007년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손영준의 엄마이다. 영준의 의료사고는 마취가 문제였다. 마취를 진행했던 사람은 당시 레지던트 1년차. 부모의 입장에서 미움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교통사고라고는 하지만 겨우 몇 군데 골절만 됐던 19살 아들이 의식이 100일된 아이가 되어 돌아왔는데 어느 부모가 평온한 마음을 갖겠는가. 그러나 우씨는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 의사가 기억하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들으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놓을 작정이었다.

손영준 군은 마취과 선택진료의사가 아닌 레지던트 1년차가 수술 중 혼자서 부분마취를 하다 마취가 잘 안 되어 전신마취를 하는 중에 심정지가 왔다. 심폐소생술로 생명은 구했지만 갓 100일을 넘긴 아이의 지능에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눈으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반식물인간 상태로 8년째 병원 침상에 누워있다.
 손영준 군은 마취과 선택진료의사가 아닌 레지던트 1년차가 수술 중 혼자서 부분마취를 하다 마취가 잘 안 되어 전신마취를 하는 중에 심정지가 왔다. 심폐소생술로 생명은 구했지만 갓 100일을 넘긴 아이의 지능에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눈으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반식물인간 상태로 8년째 병원 침상에 누워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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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우씨는 의료인 폭행으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 레지던트가 개업한 J병원을 찾아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 담당의사는 대화할 생각도 안하고 팔짝팔짝 뛰며 소리부터 고래고래 질렀다. 우씨는 그런 의사의 손을 잡으려고 한 것뿐이었지만 그 담당의는 강하게 밀쳐냈다. 그리고 폭행죄로 우씨를 고소해 버렸다.

아무리 억울한 환자라고 할지라도 의료인에게 폭행하거나 협박을 가하는 것은 공감을 얻을 수 없는 행위이다. 그러나 하나 짚고 갈 것이 있다. 왜 말로 하면 될 것을 환자나 환자가족들은 꼭 언성을 높이거나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의료기관 폭행과 관련해서 피해자는 늘 의료인들만 있는 것일까.

기억을 더듬어보자. 우리가 병원에 갔을 때를 말이다. 특히 대학병원에서 의사와 환자 간의 대화시간이 너무 짧다. 면담을 회피하기도 하고 설명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환자 입장에서 마음이 갑갑한데 불성실한 의료인들의 태도에 화가 나다 못해 분노가 치솟기도 한다. '욱'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씨의 경우도 담당의사가 환자 가족의 이야기만 들어줬으면 될 일이었다. 우씨는 4년 동안 그 레지던트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영준이를 간호했다. 오가면서 마주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서로 불편은 했지만, 눈인사 정도는 하고 다녔다. 그간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던 환자 가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혹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면 4년이란 긴 시간동안 가만히 있었을 리 만무했다.

▲ 영준이 마취를 담당했던 레지던트가 개원한 의사를 찾아갔다가 전과자가 됐다. 영준의 부모는 의료사고를 낸 당시 마취과 의사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 개원한 의원을 찾아갔다가 의사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형사고소를 당해 전과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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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협박자이자 폭언자 경우 있어

50대 여자가 30대 남자를 힘으로 제압한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증거로 내 놓은 4주 진단서도 자신이 운영하는 J병원에서 발급한 것이다. 솔직히 그날 오히려 우씨가 더 위험했다. 당시에는 몰라서 그냥 지나가 버렸지만, 의사가 밀치자 뒤로 넘어지면서 갈비뼈에 살짝 금이 갔다. 

게다가 억장이 무너지는 아들의 상태에 결국 공황장애라는 병을 얻었다. 그날도 J 병원에서 공황장애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헐떡거리는 우씨를 보고 "쇼하고 있네!" 하면서 팔짱을 끼고 구경만 했다. 주차를 하고 늦게 올라왔던 남편이 비닐을 구해 와서야 겨우 호흡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우씨는 "혹시나 그 의사가 마음의 짐을 갖고 있다면 내려놓으시라고 말하며 용서를 해드리고 싶었고, 나도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해서 찾아갔던 일이 그렇게 잘못된 것이었냐?"며 "10분만 내 이야기를 들어만 줬더라면 더 골이 깊어지지 않았고 더한 분노도 쌓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중요한 것은 우씨가 겪은 일들이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환자들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병원 내에서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가끔 있기 때문이다.

김포에 사는 박 아무개(42)씨가 이에 해당된다. 백혈병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진료비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던 그는 퇴원을 하고 진료비 확인 요청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병원 원무과에서 박씨를 설득하고자 전화가 왔다. 직접 면담도 이루어졌지만, 서로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이후 박씨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급여를 비급여로 바꿔서 비용을 청구한 부분에 대해서 1400여 만 원을 환급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외래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담당 교수가 "당신이 진료비 확인 요청을 한 사람이야? 내 동료가 그러는데 자기 환자라면 다음에 아파서 오게 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더라"며 돌려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던데, 기껏 살려줬더니"라고 한마디를 더 거들기까지 했다.

박씨는 "내 생명을 살려주신 고마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데 너무 충격을 먹었다"면서 "'혹시 이제부터 진료를 제대로 안 해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며 당시 불안했던 마음을 말했다.

박씨의 충격은 두달 간 정신과 치료와 약을 복용할 만큼 꽤나 컸다.  담당의사의 그 한마디가 뇌리에 박혀 협박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이러다가 잘못될 수 있으니 병원을 옮겨볼까?' 하는 생각하기까지 했다.

병원 내에서는 모두가 안전해야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작년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의료인 폭행협박시 가중처벌'하는 그것이다. 이 법안에 대해 환자단체와 시민단체가 강력히 반대했다. '의사특권법'이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웠다고 가정하면 바로 이해가 된다. 

이 법에 의하면 의사는 2년 이하, 환자는 5년 이하로 형량이 3년이나 더 높다. 더 웃긴 것은 화해를 한 경우이다. 의사는 처벌을 받지 않지만 환자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의료인 범위를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의료기사, 조산사 등으로 확장시킨 이 법안의 수정안이 작년 말에 거의 통과될 뻔했다.
[웹툰] 의료인특권법 NO, 진료실안전법 YES
 [웹툰] 의료인특권법 NO, 진료실안전법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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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덕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의료기관은 진료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의료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법 상식에 어긋난 것은 아니지만 만취자나 조폭 두목 등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병원 내 다툼이라는 것이 의료인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치료나 진료과정에서 충분한 안내나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박 정책위원은 "환자들이 폭행이나 협박을 하는 원인들이 거의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의료인 폭행협박시 가중처벌'은 아주 적절치 못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의료인을 폭행한 환자와 환자가족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신들의 입장이 정당화되지는 못한다. 반대로 환자들이 대화나 설명을 요청해도 거부하는 의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환자들 폭행을 유도하는 행위조차 용납 받을 수는 없다.

병원은 그 어느 곳보다 '폭행과 협박의 청정지역'이 되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병원 내에서는 그 누구든지 안전이 동등해야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보다는 의료기관 내 진료중인 장소에서 폭행 또는 협박하는 사람 모두 가중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맞다. 국민들 역시 병원 내에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에 공감을 보내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 내 진료실은 그 어느 곳보다 ‘폭행과 협박의 청정지역’이 되어야 하다. 따라서 진료실에서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뿐만 아니라 환자나 환자가족 등 모든 사람이 폭행과 협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 내 진료실은 그 어느 곳보다 ‘폭행과 협박의 청정지역’이 되어야 하다. 따라서 진료실에서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뿐만 아니라 환자나 환자가족 등 모든 사람이 폭행과 협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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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폭행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의료기관 내 진료중인 장소에서 사람을 폭행협박시 환자나 환자가족 뿐만 아니라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면 진료중인 공간에서 폭행협박에 대한 일반적 예방 효과는 훨씬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안 대표는 "폭행, 협박이 대부분 순간적인 감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처벌보다는 화해를 유도하는 지혜 역시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환자리포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환자단체연합회, #의료인폭행가중처벌법, #병원 내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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